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147
집밥을 너무 잘함 147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마지막 손님을 배웅하고 가게를 정리하는 우빈.
벚꽃 나들이를 다녀온 후에 가게에는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카운터 근처에는 슬기한테서 받은 폴라로이드 사진 여러 장이 나무집게로 줄에 걸려있었다.
맨 왼쪽 사진에는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새근새근 자고있는 봄이가 보였다. 그리고 우빈이 봄이에게 목마를 태워주는 모습, 그리고 벚꽃을 손에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이 차례차례로 걸렸다.
옆에 있는 액자에는 봄이가 어버이날에 만들어준 종이 카네이션이 들어있었다.
우빈은 액자를 닦고 있었는데, 문득 옆을 보니 봄이가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봄아?”
“우움.”
분명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봄이는 알 수 있었다.
요즘 따라 우빈이 지쳐있다는 걸.
점점 많아지는 손님에 우빈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그런 우빈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던 봄이가 물었다.
“아빠. 내가 어깨 주무러주까?”
고사리 같은 손이 꼼지락거리면서 안마하는 시늉을 하자, 우빈이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봄이 힘들어. 마음만 받을게.”
“웅……. 알아써요.”
봄이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빈에게는 정말 마음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봄이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아빠.
매일 맛있는 밥도 만들어주고, 머리도 빗겨준다. 또 일로 피곤할 텐데 언제나 자기 전에는 동화책을 읽어주기까지.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훔.”
봄이가 팔짱을 낀 채로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뭔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봄이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다음 날.
“웬일로 일찍 일어났어? 더 자도 되는데.”
우빈은 부스스한 머리와 함께 내려오는 봄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일어나써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지는 못했는지 계속 하품을 하고 있었다.
봄이는 후다닥 빗자루로 다가갔다.
“오눌은 내가 청소하께.”
“응?”
봄이는 그렇게 자신의 몸만큼이나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끙끙거렸다.
우빈이 할 때는 너무나 가볍고 쉬워보였는데. 빗자루로 바닥을 쓸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빗자루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켈록, 켈록!
기껏 쓸어놓은 바닥에 빗자루가 떨어지고, 먼지가 흩날려 기침이 났다.
“괜찮아? 여기, 물 마셔.”
봄이는 우빈한테서 받은 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푸햐아.”
결국 봄이는 빗자루를 빼앗기고 터덜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왔다.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없다니.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렇게 기운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오늘밥집 앞에 놓여있는 입간판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고다!”
봄이는 매번 우빈이 입간판 앞에서 끙끙거리며 고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었다.
이걸 도와주면 우빈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잠시 후, 봄이의 양손에는 분필이 여러 개 꽂혀있었다.
“후훗.”
봄이가 웃었다.
오늘밥집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줄 입간판 꾸미기!
야심찬 표정과 함께 분필을 들고 입간판 앞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
입간판을 앞에 둔 봄이의 몸이 흠칫 굳었다. 미처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직 글씨를 쓸 줄 몰랐다.
또다시 봄이의 어깨가 추욱 내려왔다.
한편, 우빈은 오늘 내놓을 반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진미채.
긴 진미채는 가위로 한입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냈다.
다음에는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렸다.
고추장과 황설탕과 고춧가루를 준비해 준다. 달달한 맛을 더해줄 물엿과 물도 함께 섞어주면 붉은 고추장 양념이 완성된다.
팬에 양념을 우선 끓인다. 바글바글 양념이 끓으면 잠시 팬을 꺼두고, 아까 미리 잘라둔 진미채를 가져왔다.
진미채가 담겨있는 볼에 고추장 양념을 넣어주고 뒤섞어주면 된다.
“그런 다음에 통깨를 뿌리면 완성이야.”
“맛있습니다! 양념도 딱 제가 좋아하는 맛이에요. 엄청 꼬들꼬들해서 씹는 재미가 있네요.”
한입 먹어본 이수호가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진미채는 중독성이 있어 계속 손이 가는 반찬 중 하나였다. 오독오독 씹히는 진미채의 식감에 손님의 반응도 무척이나 좋았는데.
어쩐지 봄이가 영 기운이 없었다.
‘왜 그러지?’
걱정이 되어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봄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장사가 끝난 후.
봄이는 우빈이 가지고 있는 행주를 가져가려 했다.
“아까부터 수상한데? 갑자기 안 하던 일을 하고. 무슨 일 있어?”
봄이는 한참을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우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구, 구게요.”
“응.”
“아빠한테 도움이 되고 시퍼서요. 군데 빗자루도 어렵고, 아직 글씨도 못 쓰고…….”
그렇게 말하는 봄이의 어깨가 축 내려왔다.
동시에 우빈의 눈이 커졌다.
“아빠 도와주려고 그런 거였어? 심심해서 그런 게 아니고?”
설마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 거였다니.
‘좀 기쁜데.’
우빈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사실 요즘 몸은 좀 피곤하기는 했다. 그래도 일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는데.
“고마워, 봄아.”
“나 아무것도 안 했눈데…….”
“아무것도 안 하기는. 봄이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걸?”
“정말요?”
그제야 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웃는 모습이 얼마나 맑은지.
보는 것만으로도 그간 쌓여있던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 * *
“크앙, 크아앙!”
봄이는 펭귄 인형과 티라노 인형을 양쪽에 안아들고 놀았다.
그렇게 한참을 인형과 놀던 봄이는 우빈에게 다가왔다.
“아빠. 배고파요오.”
“배고파?”
끄덕끄덕.
배가 고프다기에는 방금 점심을 먹었는데. 잠시 생각하던 우빈이 손가락을 튕겼다.
“입이 심심하구나.”
“웅? 심심 안 해요!”
“배가 엄청 고픈 건 아닌데, 무언가 군것질을 하고 싶을 때 입이 심심하다고 하거든.”
“아하아. 그럼 심시매요.”
곧장 수긍하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푸흡 웃었다.
‘어디 보자, 오늘은 뭐를 만들어주면 좋을까?’
“그럼 아빠랑 도넛 만들까?”
“도넛? 죠아요!”
도넛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케이크 도넛, 하나는 이스트 도넛.
이스트 도넛은 말 그대로 이스트를 넣어 발효한 도넛으로, 통통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케이크 도넛은 바삭하면서도 풍부한 질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우빈이 오늘 만들 도넛은 케이크 도넛에 속하는 올드패션 도넛.
흔히 집에서 만들어서 황설탕과 함께 찍어먹는, 집에서도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빠삭한 도넛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이랑 같이 만들 수 있어서 더 즐거울 것 같았다.
소매를 걷은 봄이는 의욕이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 계란부터 깨볼까?”
“웅!”
봄이는 계란을 책상에 톡톡 두드렸다. 쩌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란이 반으로 갈라졌다.
작은 껍질 하나 없이 야무지게 계란을 깬 봄이에게 우빈이 칭찬을 건넸다.
“잘했어, 봄아!”
볼에 계란을 넣고 잘 저어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설탕과 버터, 그리고 바닐라 페이스트를 넣는다.
박력분과 베이킹 파우더를 넣고는 거품기로 잘 저어주었다.
그렇게 만든 도넛 반죽을 넓게 펼쳤다.
오랜만에 주방에 들어온 봄이. 어느덧 길어진 머리는 하나로 단정하게 묶었다. 그리고 봄이는 열심히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박력분과 버터를 준비하고, 반죽을 하나하나 빚어 나갔다.
‘오? 꽤 그럴싸한데?’
몇 번 반죽을 하는 걸 돕기도 했고, 우빈이 반죽하는 모습도 그동안 몇 번 본 적이 있던 봄이었기 때문에 반죽은 꽤 전문적인 모습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였기 때문에 힘이 조금 부족한 걸 제외하고는 아주 완벽한 모습에 가까웠다.
다음에는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기다릴 시간이었다.
“심시매. 입도 심심하고, 심시매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서서 티라노 인형과 펭귄 인형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우빈에게 티라노 인형을 안겼다.
“아빠가 공뇽.”
“어? 그래, 알겠어.”
“공뇽은 말 모태요!”
“……크앙.”
봄이가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크앙크앙.”
“꾸악꾸악.”
무언가 계속 말이 이어졌다.
봄이의 펭귄 인형은 회색빛 털을 가지고있는 아기 펭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기 펭귄은 팔을 파닥거리다가, 배를 쓰다듬고는 뒤로 쓰러졌다. 아마도 배가 고파서 쓰러진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둘이 뭐해?”
박길복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오셨어요?”
박길복은 한참을 웃었다. 너무 웃어 눈가가 그렁그렁할 정도였다.
우빈은 홧홧해진 얼굴로 도망치듯이 주방으로 들어섰다.
‘틀이 어디 있더라.’
도넛틀이 안보이면 대충 컵으로 찍어내려고 했는데. 다행히 틀은 선반 위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우빈은 틀을 봄이에게 건넸다.
“그럼 봄이가 이걸로 반죽 찍어줄래?”
“웅!”
봄이는 우빈의 말을 듣고는 틀로 반죽을 열심히 찍어나갔다. 봄이가 쿡쿡 틀을 반죽에 누를 때마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커다란 원이 만들어졌다.
다음에는 도넛 만들기의 꽃, 바로 도넛을 튀길 차례였다.
‘기름은 위험하니까.’
여전히 웃음기가 남아있는 박길복에게 봄이를 맡겼다.
기름을 잔뜩 붓고, 기름의 온도가 적당해졌다고 생각이 될 때즈음에. 우빈은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다.
치이이이!
기름에 반죽을 넣자 지글거리는 소리가 났다.
봄이가 찍어낸 동그란 도넛 반죽. 그리고 동그란 도넛도 기름 안에 지글거리며 튀겨졌다.
우빈은 둥둥거리며 기름에 떠 있는 도넛을 건져냈다. 키친타올 위에 올려둔 도넛은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졌다.
살짝 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갈색인 도넛. 원래 튀김 도넛은 이 정도로 바싹 구워주는 게 더 맛이 있었다.
그렇게 건져낸 도넛을 하나둘 접시에 쌓으니 산처럼 도넛이 쌓였다.
“완성!”
“와아아!”
봄이가 열심히 손뼉을 쳤다.
“지나가던 길에 잠깐 놀러온 거였는데.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나?”
“그럼요. 저번에 붕어빵도 다 주셨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많이 튀겨서 많아요.”
“크크, 그런가. 그럼 더 사양 않고.”
박길복이 도넛을 크게 한입 물었다.
기름에 튀겨 겉은 바삭하면서도 안은 촉촉했다. 밀가루 냄새가 조금 나는데, 그게 또 기름도넛의 별미였다.
“이야, 진짜 맛있는데?”
박길복의 얼굴에 저절로 화색이 돌았다.
이번에는 황설탕을 듬뿍 찍었다.
달콤한 설탕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데.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과 퍽 잘 어울렸다.
도넛 안에는 팥 같은 앙금이 하나도 없었지만, 바싹 튀겨 기름기를 싹 뺀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손이 가는 도넛이었다.
“마시써요.”
셋은 한참을 그렇게 도넛을 먹었다.
그리고 우빈은 곧 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시럽을 가지고 나왔다.
도넛 윗부분에 시럽을 발라주었더니, 윗부분이 초콜릿으로 코팅된 초코 도넛이 완성되었다.
안 그래도 맛있는 도넛과 초콜릿. 따로 먹어도 맛있는데,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봄이는 초콜릿 도넛을 보고는 어쩔 줄을 몰라 입을 떡하니 벌렸다.
“머, 머거도 대요?”
“그럼. 먹으라고 만든 건데.”
봄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초콜릿 도넛을 조심스레 집었다.
그리고, 냠하고 도넛을 한입 크게 물었다.
“……!”
겉은 바삭하면서도 안은 촉촉했다.
초콜릿의 풍부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도넛이 합쳐지니 황홀한 맛이 났다. 너무 맛있던 나머지 차마 말도 못한 채로 그저 발을 동동 굴렀다.
눈이 휘둥그레진 봄이의 모습을 보고 우빈은 하하 웃었다.
“그렇게 맛있냐, 꼬맹이?”
옆에서 박길복이 물었고, 봄이는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우물우물 삼키던 봄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 엄청 마시떠요. 징짜, 징짜요!”
“잔뜩 튀겨놓았으니까 많이 먹어.”
우빈의 말에 신이 난 봄이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입가에는 초코 시럽이 잔뜩 묻어 우빈이 휴지로 닦아주었다.
‘맛있네.’
같이 만든 도넛이라 그런지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가게에는 달콤한 도넛 냄새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