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2
집밥을 너무 잘함 2화
‘흐음. 먹을 걸 주면 좋아할까?’
고양이는 키워본 적 없었지만, 워낙 색이 예쁜 고양이라 자꾸 생각이 났다. 그리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하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람이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었다.
“그래, 사람이든 동물이든 친해지려면 역시 먹을 걸 나눠 먹어야지.”
고양이도 먹어야 살 테니.
우빈은 돼지고기 앞다리살이 든 비닐봉지를 왼손에 낀 채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혹시 고양이한테 줄 만한 음식도 있을까요?”
“고양이 사료는 오른쪽 끝으로 가시면 있어요.”
에어팟을 귀에 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쪽, 오른쪽…… 아, 여기 있다.”
연어? 치킨? 종류가 꽤 많아서 어떤 걸 사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쪼그려 앉아 한참을 고민하던 우빈이 결국은 캔을 두 개 챙겼다.
역시 고양이니까 생선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연어를 우선으로, 그리고 치킨을 플랜B로 남겨두었다.
우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게로 돌아왔다.
제육볶음을 만들기 위해 우선 양파를 채 썰었다.
이후에는 양념장을 만들어야 했다. 고춧가루와 간장, 그리고 잘게 다진 마늘을 듬뿍 넣었다. 이른 아침에 정육점에서 사 온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먹기 좋게 한입거리로 큼직하게 썰었다.
메뉴를 준비하는 우빈의 머릿속에는 온통 고양이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일은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으니,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어!’
새벽 다섯 시. 이른 아침부터 시장을 들른 우빈이 반가움에 손을 마구 흔들었다. 어제 본 갈색 고양이가 있었다.
“안녕, 야옹아.”
반가워하는 우빈과 달리 고양이는 또다시 고개를 홱 돌렸지만 오늘은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챙겨왔지.”
우빈은 준비해 둔 고양이 캔 사료를 주섬주섬 꺼내왔다.
사람이 먹는 캔 참치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다가왔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기뻐하던 와중에, 고양이는 킁킁 냄새를 맡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다시 가 버렸다.
“……안 먹네.”
우빈이 시무룩한 얼굴로 캔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 비닐에 넣었다.
아무래도 연어 취향이 아닌 고양이인 것 같았다. 다음에는 치킨 캔을 가져와야겠다고 우빈이 결심했다.
“그거 말고 츄르를 줘, 츄르. 고양이 간식. 그리고 핫팩도 주면 좋아.”
옆에서 누군가 혀를 끌끌거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때 도망간 할머니였다.
“핫팩은 왜요?”
“고양이들이 사막에서 온 거 알아?”
“정말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우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씨 할머니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래서 겨울을 엄청 싫어한다나 뭐라나. 핫팩 같은 거 놓아주면 그 위에 따끈하게 있는다고 하더라고.”
“우와, 그런 건 다 어떻게 아셨어요? 대단하세요!”
순수하게 칭찬하며 반짝거리는 우빈의 눈을 보고는 할머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칭찬에는 영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테레비에서 봤어. 테레비!”
우빈은 그 말을 듣고는 이번에는 핫팩을 잔뜩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갈색 고양이 말고도 다른 고양이들도 모두, 이번 겨울은 따뜻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게는 그럼 1월에 언제 여는 거야?”
“가게요?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오픈할 것 같아요. 이제 거의 다 준비했거든요.”
“……그래, 알았어.”
김씨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홱 돌렸다.
혹시 할머니도 가게에 관심이 있는 걸까? 한번 들러준다면 꼭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고양이도, 할머니도. 다 친해지고 싶은데.’
* * *
오늘 연습할 메뉴는 보쌈이었다.
우빈이 대파의 뿌리 부분을 깨끗하게 씻었다. 사과는 깍둑 썰어서, 마늘과 통후추는 통째로 가득 넣어주었다.
그다음에는 된장과 인스턴트커피를 넣어주었다.
된장은 수육의 누린내를 가라앉히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인스턴트커피는 향도 그렇지만, 수육의 색을 더 먹음직스러운 어두운 갈색으로 변화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둘 중에 하나만 넣어도 되지만, 어차피 둘 다 가지고 있으니까.’
돼지고기 누린내를 잡기 위한 재료를 모두 넣고 센 불로 바꾸었다. 곧이어 물이 부르르 끓는 모습을 우빈이 잠자코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사실 보쌈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기다림이 아닐까 우빈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눈이 많이 오네.”
우빈이 중얼거렸다. 마치 스노우볼 안에 있는 것처럼 눈이 마구 내리고 있었다.
가게는 웃풍이 심한 편이었다. 잔뜩 껴입었는데도 우빈이 벌벌 떨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우빈은 긴 나무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고기를 찔러보았다. 젓가락은 부드럽게 돼지고기 속살을 파고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오늘의 식사가 차려졌다.
쌀밥, 그리고 돼지고기 보쌈과 새우젓, 무말랭이와 배추김치였다. 쌈으로 같이 먹을 깻잎도 준비했다.
살코기 밑에 비계가 2:1 정도의 비율을 하고 있었는데, 오래 삶아서인지 입에 들어가자마자 입안에서 녹듯이 부드럽게 살이 흩어졌다.
우빈이 깻잎과 배추김치 위에 고기 한 점을 올렸다. 그리고 옆에는 얇게 썬 생마늘 하나를 넣었다.
깻잎 특유의 향과 잘 익은 배추김치, 그리고 보쌈이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비계를 씹어 조금 느끼해질 때면 생마늘 슬라이스의 매운맛이 얼른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와아. 너무 잘 먹었다.’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난 이후에, 우빈은 빗자루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으, 추워!”
우빈이 외마디 소리를 내며 벌벌 떨었다. 배도 부르고 기분 좋게 자고 싶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눈은 쌓이기 전에 미리 치워두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짝 녹은 눈이 얼어붙어 금방 스케이트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좋았어. 빨리 끝내고 빨리 들어가자고!’
다행히 방금 먹은 보쌈 덕분에 기운은 펄펄 넘치는 듯했다.
큰 빗자루를 들고 가게 앞을 쓱쓱 쓸어가는 우빈 앞에 무언가가 보였다. 그리고, 눈에 파묻혀 있는 한 생명체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다급한 마음으로 우빈이 다가갔다.
주먹 하나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의 작은 고양이였다. 서둘러 고양이를 꺼냈다. 그리고 고양이를 본 우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 고양이잖아.”
우빈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요 며칠 동안 정육점 근처에서 새침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고양이였다. 털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설마 얼어 죽은 건 아니겠지. 급한 마음에 손을 고양이 몸에 가져다 대어 보니 미약하게나마 숨이 붙어있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검색해 보았지만 열려있는 동물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새벽 여섯 시. 동물병원이 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대로 두면 위험할 텐데.’
더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우빈이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서는, 일단은 동물병원이 열리기 전까지라도 자신이 돌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밥집은 이층짜리 건물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우빈이 사는 다락방이 있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고양이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빈이 이불 위에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올려놓고는 얼른 보일러를 켜 방을 따뜻하게 했다.
옷장에서 연녹색 목도리를 꺼내어 고양이의 몸에 칭칭 둘러감아 주었다. 그래도 고양이는 추운지 벌벌 떨어댔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누군가 키우던 고양이인 것 같았다.
이런 한겨울에 고양이를 길거리로 내쫓다니. 누군지 몰라도 큰 벌을 받을 거라고 우빈은 생각했다. 그런 내용의 동화도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고.
“많이 추워? 조금만 기다려 봐. 아침이 되면 병원에 데려가 줄게.”
그렇게 걱정스럽게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고양이가 눈을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고양이는 우빈을 보고 흠칫거렸다.
“더 자도 되는데 왜 일어났…… 으아악!”
애오오옹!
고양이는 우빈에게 달려들어 그를 맹렬히 공격했다. 날카롭게 달려드는 발톱으로 우빈의 어깨를 잡았고,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어댔다.
“아, 아파! 야! 구해준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이게 은혜도 모르고!”
그러자 머리를 잡아뜯던 고양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치 우빈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우빈이 머리를 잡고는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우아한 몸짓으로 우빈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일단 공격은 멈추었으나, 고양이는 여전히 의심쩍은 눈길로 우빈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우빈이 말을 이어갔다.
“쓰러져 있길래 다칠까 봐 안으로 데려온 거야. 갑자기 너를 납치한 게 아니고!”
아픈 줄 알았는데 멀쩡하기만 했다.
씩씩거리는 우빈을 보고는 고양이가 눈을 깜빡였다. 연녹색 눈이었다. 의도치는 않았는데 연녹색 눈과 목도리가 잘 어울렸다.
“애오오.”
고양이의 배가 홀쭉해 보였다.
은혜를 몰라보고 일어나자마자 공격한 건 섭섭했지만, 일단 일어났으니 먹을 걸 주어야 했다. 저번에 편의점에서 샀던 고양이 캔 사료라도 줘야겠다 싶어 우빈이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려고 하자 고양이도 같이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우빈이 입을 열었다.
“넌 잠깐 여기에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 거야.”
고양이는 자꾸만 나가고 싶어 하는지 문을 열심히 긁어댔다.
“애오옹!”
문에서 고양이를 떨어뜨리자 고양이가 격렬하게 반항했다.
“지금은 안 돼. 조금만 참아. 나가고 싶을 때 나가게 해 줄게.”
애오오 하고 우는 소리는 영 불만족스러워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일 층에 같이 내려갔다가 갑자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우빈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 올려 다시 이불 위에 올려두고는 문을 닫았다.
날카로운 발톱이 문을 긁는 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황급히 내려와 선반을 뒤져 치킨 캔을 찾아왔다.
연어는 별로 반응이 없었는데, 치킨은 좋아하려나. 조금 걱정이 들었지만 일단은 캔을 들고 계단으로 올라왔다.
“자, 치킨 맛이래. 먹어 봐.”
우빈은 고양이 캔사료를 가지고 돌아왔다.
캉!
고양이 사료캔을 열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연갈색 고양이가 우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캔 사료의 냄새를 킁킁 맡아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다시 얼굴을 몸에 파묻었다.
고양이는 우빈을 여전히 경계하는 듯, 먹이를 보고도 쉽게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너 해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배는 그렇게 홀쭉해서는…… 빨리 먹어 봐.”
하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앞발로 캔을 툭툭 건들 뿐, 사료 캔을 입 가까이 가져다 대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계를 해서 그런가? 우빈은 멀찌감치 떨어져 사료와 거리를 두었다.
“……애오옹.”
그러자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왔다.
‘오오, 이제 먹는다.’
고양이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너튜브에서 봤던 고양이들은 조금 더 밝은 표정으로 사료를 먹는 것 같았는데.
그러던 잠시 후.
고양이는 캑캑거리더니 먹었던 음식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놀란 우빈이 고양이의 등을 살짝 문질러 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경계가 가득하던 고양이는, 이제 아파서 경계할 힘도 없는 듯이 추욱 늘어져 있었다.
우빈은 얼른 욕실로 가서 적당히 따뜻한 물로 수건을 적셨다. 그리고 적신 수건을 가져와 고양이의 입을 천천히 닦아주었다.
“미안, 억지로 먹이는 게 아니었는데.”
우빈이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또 화가 나서 할퀴어 올 거로 생각했지만 고양이는 의외로 수건으로 입가를 닦아주는 우빈의 손길에도 얌전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