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27
집밥을 너무 잘함 27화
그러고는 동그란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그리고 다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햄버그 스테이크를 치대는 이유는 공기를 빼주기 위한 것이었다. 치대는 것을 많이 반복할수록 공기가 빠지고 찰기가 생긴다. 그래야만 구울 때 고기가 부서지지 않았다.
그런 동작을 반복하는 우빈을 보고 봄이가 아주 흥미로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빈을 지켜보았다. 이내 조리대로 다가와서는 손을 휘저었다.
“뺘아, 뺘.”
“봄이도 만들고 싶어? 으음, 그럼 봄이가 이걸 반죽해 줄래? 저녁은 이걸로 먹자.”
우빈이 햄버그 반죽 두 개를 봄이에게 내밀었다. 봄이는 좋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이 봄이에게 장갑을 내밀었지만 봄이에게는 역시나 컸다. 손가락의 반도 안 되어 헐렁거리는 장갑을 보고는, 봄이가 장갑 손가락을 흔들며 꺄르륵 웃었다.
우빈도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봄이의 손가락에 맞도록 장갑을 봄이의 손목 아래로 끌어내렸다.
몇 번 하고는 지루해할 줄 알았는데 봄이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반죽을 치대는 것에 진심이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반죽을 치대는 봄이를 보고 우빈이 픽 웃었다.
두 개의 반죽을 끝내고 더 달라는 듯이 말하는 봄이를 보고 우빈이 말했다.
“힘들지 않아? 나머지는 내가 할게.”
처음부터 맡긴 두 개의 반죽 말고는 봄이에게 더 할당할 생각이 없었다.
“뺘, 뺘아!”
봄이가 의젓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정도로는 지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본 우빈은 고민하다가 반죽 한 개를 봄이의 손에 올려주었다.
‘그나저나, 양이 좀 많기는 하네.’
앞으로 남은 반죽은 이십여 개. 한 반죽당 최소 오십 번은 치댈 계획이었기에 적어도 천 번은 치대어야 했다.
계속 반죽하면서 우빈이 뻐근했는지 손날을 세워 목 부근을 톡톡 쳤다.
“뺘아아?”
“아, 목이 조금 뻐근해서. 괜찮아. 이미 많이 도와주었으니까 봄이는 가서 쉬고 있어.”
그런 우빈을 보던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섰다.
“봄이야?”
“뺘아아.”
‘어, 인어들이랑 같이 만드려 그러나?’
늘 봄이가 설거지를 도와주듯이 인어들을 부르는 줄 알았다.
한데 평소와는 무언가 달랐다. 봄이의 손짓과 함께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점점 커지더니 우빈의 키만큼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뭐, 뭐야!”
우빈이 황급히 봄이를 소용돌이로부터 감쌌다.
그리고 잠시 후. 소용돌이 안에서는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우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전히 봄이를 품에 껴안은 채였다.
“사, 사람……?”
꿀꺽. 우빈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라라?’
저번에 보았던 인어가 아니었다. 이번에 봄이의 손동작과 함께 나타난 건 한 여자아이였다. 검은 긴머리에 호수처럼 맑아 보이는 푸른 눈이 봄이를 응시했다.
“부름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 이 친구도 요정인가? 그런데 말을 하네?’
봄이가 부르지 않았다면 그저 예쁘장한 여자아이로 생각했을 것처럼, 사람과 똑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놀라서 얼어붙은 우빈을 보고는, 봄이가 툭툭 우빈의 팔을 쳤다. 그러자 우빈이 팔에서 스르르 힘을 풀었고 봄이가 품안에서 쏙 빠져나왔다.
봄이는 아장거리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뺘아아, 뺘! 뺘아아.”
봄이가 손짓으로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던지는 동작을 했다. 그걸 본 여자아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동그란 반죽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반복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봄이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이런 요청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여자아이의 입가가 미묘하게 씰룩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은 그녀를 우빈이 빤히 쳐다보았다. 찌릿. 곧바로 시선이 되돌아왔다.
“왜 그렇게 쳐다보시는 거죠?”
우빈이 무언가를 가지고 와서는 손을 내밀었다. 우빈의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건 고무줄이었다.
“받아요. 음식 만드는 거라서 머리는 묶어야 해요.”
“…….”
여자아이는 말없이 고무줄을 받아들고는 한참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질끈 묶었다.
그 이후로는 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셋이 앉아서 반죽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작업장 같기도 했다.
“동그란 반죽을 제게 건네주시겠습니까?”
“어, 어어. 이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탁해요.”
여자아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조금 살짝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다.
철푸덕. 척.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햄버그 반죽을 치대었다.
우빈이 그녀의 옆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꽤나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동안 작은 인어를 보아왔지만, 단 한 번도 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우빈이 신기해서 쳐다보았다.
힐끗,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십니까?”
“아, 말을 하는 게 신기해서요. 저번에 봤던 인어들은 말을 할 줄 몰랐거든요.”
우빈의 말에 여자아이가 픽 웃었다.
“신기해하는 것치고는 별로 놀라시지는 않던데요.”
“하하……. 그런가요?”
‘하긴, 봄이를 만나고 나서 놀랄 일이 한두 번이었어야 말이지. 그래도 방금도 꽤 놀라기는 했는데.’
처음에 인어들을 보고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는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기로 했다.
여자아이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인어들이라면 운디네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일부 정령은 말을 할 수 있답니다.”
“정령이라고요?”
우빈이 눈을 깜빡거렸다. 게임에서나 들어봤던 정령이라는 말.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우빈을 보고는 정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번에 운디네를 보았으면서, 정령인 줄 몰랐던 건가?
“계약자이시면서 그것도 모르셨습니까? 지금 계약자님과 함께하시는…….”
순간 정령의 시야에 봄이가 들어왔다. 봄이는 생글 웃는 얼굴로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에다 살며시 가져다 대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우빈은 맞은편에 앉아있던 정령을 보고 있던 차라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 봄이를 본 정령이 입을 다물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물의 정령 셀레스티아입니다. 계약자님, 부디 말을 편하게 놓아주시길.”
“어어…… 그럴까? 나도 잘 부탁해, 셀레스티아. 그…… 나는 편하게 우빈이라고 불러줘.”
셀레스티아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 만들었다!”
햄버그 스테이크가 완성되자 기지개를 켰다.
“끝난 겁니까? 그럼, 더 시키실 일이 없다면 저는 이만 그만 가보겠습니다.”
“어? 지금 간다고?”
“네. 작업은 이걸로 끝이 난 게 아닙니까?”
당황한 우빈의 표정을 보며 셀레스티아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기껏 고생해서 같이 만들었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먹고 가라고요?”
“응! 혹시 정령이면 못 먹는 건가? 설마 물만 먹어야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요.”
정령이 말을 마치고는 봄이를 흘깃거렸다. 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글지글.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으로 가득 썬 햄버그 스테이크.
“뭐, 뭐죠? 이 냄새는…….”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는 맛있는 냄새에 셀레스티아와 봄이가 꿀꺽 침을 삼키면서 우빈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프라이팬 뚫리겠다, 얘들아.’
우빈이 등 뒤의 뜨거운 시선을 뒤로 하며 햄버그를 마저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소스를 만들 차례였다.
먼저 채썰은 양파를 넣어 프라이팬에 달달 볶아주었다. 양파가 갈색으로 녹아 흐물흐물하게 변했을 즈음에, 양송이버섯을 잘게 썰어 넣었다.
프라이팬에 먼저 구워준 다음에 버터를 넣었다.
버터가 순식간에 거품을 내며 양파와 버섯 사이로 녹아 들어가며 고소한 향을 풍겼다.
그다음에는 돈가스 소스와 우스터소스, 케첩과 설탕을 섞어서는 프라이팬에 부어주었다. 설탕을 넣어 달달한 맛을 더한다.
“이, 이제 먹을 수 있는 건가요?”
“거의 다 했어.”
셀레스티아는 처음 나타났을 때 차분한 모습과는 다르게,
거기에 계란 노른자를 반숙으로 만들었다.
“뺘아아!”
봄이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어련하시겠어.’
우빈이 픽 웃었다. 봄이는 뭐든 잘 먹는 편이었지만, 고기는 특히 더 좋아했다.
“잘라줄게, 잠깐만.”
우빈이 햄버그 스테이크를 조심스럽게 반으로 가르자, 탱글탱글한 노른자 반숙이 주룩 흘렀다.
“……잘 먹겠습니다.”
정령도 눈치를 보다가 고기를 입에 물었다.
‘으음!’
계속 얌전하게 있던 정령의 눈이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맛이?”
정령은 허둥지둥거리며 햄버그 스테이크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맛있어, 맛있어!’
햄버그 스테이크가 가득 머금고 있던 육즙.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반반씩 섞어놓아 둘의 장점만을 합친 맛이었다.
배부르게 먹어 봄이가 자신의 배를 손으로 통통 두드렸다.
“그럼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계약자시여.”
“또 만날 수 있는 거야?”
“정, 아니, 봄이 님이 저를 불러주신다면요. 그, 그리고.”
정령이 입을 열려 하다가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리고 가급적이면 햄버그 스테이크를 만드는 날에 불러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휘리릭! 작은 소용돌이와 함께 셀레스티아가 사라졌다.
봄이가 아장거리며 우빈에게 다가와 안겼다.
“봄이 네가 데려오던 친구들이 정령이었구나.”
대답 대신 봄이는 생글 웃었다.
봄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 괜히 기뻤다.
‘잠깐, 그럼 봄이도 정령인가? 혹시 그 거대 브로콜리도 어쩌면…….’
우빈이 팔짱을 꼈다.
“혹시 봄이, 너 정체가…….”
우빈의 말에 봄이가 살짝 움찔거렸다.
“브로콜리의 정령?! 맞지.”
“……뺘아.”
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이후로도 인어 정령들이 와서 종종 설거지를 해주었다.
오늘도 뽀득뽀득하게 잘 닦인 접시를 보고 우빈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고, 고마워. 운……디네?”
‘이거 생각보다 부끄럽네.’
우빈의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인어들은 우빈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놀라면서도 까르르 웃으면서 좋아했다.
‘만약 또 셀레스티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으으음.’
가게일을 돕는 모습을 보면, 시장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수도 있었다.
우빈이 잠시 셀레스티아를 궁금해하는 동네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봄이가 불러낸 정령이에요, 하하!
-아이고, 강 사장이 가게 일이 그렇게 바쁘더니 미쳐 버렸나 봐. 쯧쯧.
…….
역시 안 되겠다.
우빈은 결국 다음에 셀레스티아가 찾아오면, 외국에서 온 사촌 누나의 딸이라고 둘러대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다 보니 숨기는 것만 느는 것 같아서 우빈이 조금 울적해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사장님!”
김성훈이었다.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자원봉사를 하려고 하는데요. 어르신들 대상으로 어버이날 이벤트를 열려고 해요. 그래서 도시락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혹시 오늘밥집에 부탁하는 것은 어떻겠냐면서……. 헤헤.”
김성훈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오늘밥집에 같이 방문했던 회사 동료들이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오늘밥집을 추천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루 정도 같이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물론 보수는 넉넉히 드릴 거예요. 재료비도 당연히 저희 쪽에서 모두 부담할 거고요. 바쁘신 건 알지만, 혹시 괜찮으시면 참가 가능하실까요?”
우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몇 인분 정도 필요하죠?”
“과일이나 간식거리는 저희 쪽에서 사오려고 해서요. 메인 메뉴로 두 개 정도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 넉넉하게 60인분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아요. 40인분은 어르신들 드실 거고, 20인분은 아이들이랑 저희 봉사자들이요.”
복지관에서 지원하는 어르신들이 주로 올 예정이지만, 수량을 넉넉하게 잡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동네 어르신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시락이라.’
우빈이 턱을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