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3
집밥을 너무 잘함 3화
고양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숨소리가 나아진 것 같아 우빈은 안심이 되었다.
다른 큰 수건 하나를 더 가져와서는 덮어주었다.
꾸벅꾸벅.
우빈의 고개가 자꾸만 밑으로 내려갔다. 고양이 옆에서 잘까 했지만, 너무 작아서 혹시 자다가 자신이 팔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다칠 것 같아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면 바로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가야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아직 자면 안 되는데. 하지만 너무 피곤했던 까닭에 우빈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빈의 방은 남향으로, 아침부터 해가 환하게 들어오는 방이었다.
‘벌써 아침인가.’
우빈은 어제 자세 그대로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햇빛이 느껴져서, 우빈은 다시 눈을 꽈악 감았다. 빨리 암막 커튼을 사러 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우빈 옆에 자고 있던 우빈의 귀에 맑은소리가 울렸다.
뭐지? 우빈이 눈을 감은 채로 미간을 찌푸렸다.
“뺘아.”
무언가 이상한 소리에 우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응? 새가 저렇게 우나?’
“뺘.”
아, 아니다. 고양이다.
우빈이 눈을 번쩍 떴다. 언제부터 자고 있었지? 분명 고양이를 돌보고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맞다, 고양이. 고양이 어디 있……?!”
우빈은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황급히 일어났다.
고양이 대신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우빈의 눈앞에는 세네 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연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아이였다.
“뺘아, 뺘.”
아이를 보고 우빈이 깜짝 놀랐다. 아이는 큰 수건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누구……?”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아이를 향해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 없이 생글 웃을 뿐이었다.
왜, 고양이한테 주었던 큰 수건을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거지?
적당한 옷이 없어 우선 아이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티셔츠를 입혔다. 제일 작은 옷을 입혔는데도 아이의 몸에는 그저 거대했다.
‘침착하자, 침착.’
우빈이 애써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아이를 앉히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무섭지 않게, 너무 놀라지 않게. 헛기침을 하고는 우빈이 물었다.
“꼬마야. 어디서 온 거야?”
아이는 생글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뺘!”
아이가 손가락으로 꾹꾹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쥐고 흔들었다. 연갈색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그게 무슨 뜻이지?
우빈이 고민하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 아이는 답답해했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흉내를 내더니, 폴짝 일어나서 두 팔로 걸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우빈이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 야옹이?”
말을 내뱉은 우빈이 곧 헛웃음을 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자신이 말하고도 황당했다.
하지만 우빈의 말이 끝나자 아이가 세상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뺘아!”
음. 우빈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보았다.
당연히 꿈이니까 하나도 안 아프겠지? 하지만 아팠다.
“뺘아?”
우빈이 세게 볼을 꼬집는 것을 보며 여자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꿈이 안 깨지? 빨리, 꿈에서, 깨라!”
우빈이 벽에 다가가 머리를 벽에 박았다. 혹이 날 만큼 세게 머리를 쳤지만 아이는 그대였다. 도저히 꿈에서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뺘아…….”
아이가 우빈의 옷깃을 작은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우빈의 머리에 다가가 호오, 하고 입김을 불어주었다.
정말 그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 건가? 그런데, 갑자기 왜?
꼬르르륵.
아이의 뱃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이는 손으로 배를 문질렀다. 그리고 아이와 우빈의 시선이 마주쳤다.
“……일단 밥부터 먹을까?”
* * *
“금방 만들어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김치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대파와 김치를 잘게 썰어주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른 다음에, 잘게 썬 대파와 김치를 넣어주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김치가 노릇한 색깔로 변했다.
김치를 주걱으로 볶는 동안 다음 재료를 준비한다. 우빈은 비닐봉지를 뒤적거려 통조림 햄을 꺼냈다.
냄비에 물을 끓여 햄을 살짝 데치고, 집게로 햄을 꺼내서 칼로 썰었다. 그리고 그 햄을 다시 프라이팬에 넣어 굽기 시작했다.
진간장을 한 큰술 넣고 살짝 볶은 다음에 밥을 넣어 골고루 볶는다.
깨는 빠지더라도 김치볶음밥에 계란후라이가 없어서야 서운하다.
그릇에 김치볶음밥을 옮긴 다음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계란 두 알을 깨뜨려 넣었다.
흰자만 살짝 익혀 여전히 탱글탱글한 노른자. 서니 사이드 업이라는 말 그대로 꼭 해님 같았다.
반숙과 완숙 중에 고민하던 우빈. 옆에서 구경하는 아이에게 선호를 물었지만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며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럼 둘 다 만들지 뭐.’
이윽고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렸다. 하나는 반숙, 하나는 안까지 푹 익은 완숙 계란후라이였다.
“자, 다 됐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윤기가 도는 김치볶음밥이 놓였다.
아이가 고른 건 반숙 계란후라이가 올려진 김치볶음밥이었다.
우빈이 보기에도 그쪽이 모양이 예뻐 보였기에 흔쾌히 접시를 내밀었다. 아이가 기분이 좋은지 헤헤거리며 웃고 있었다.
“노른자 가운데를 터뜨리면 돼, 이렇게.”
아이는 망설임 없이 노른자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푹 눌렀고, 주륵 흐른 노른자가 김치볶음밥 사이사이를 황금빛으로 감쌌다.
그리고 김치볶음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었지만, 아이는 잠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이용으로 맵지 않게 평소와는 달리 고춧가루를 넣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계속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뺘아!”
입꼬리를 잔뜩 올리며 활짝 웃었다.
“……입에 밥풀 묻었다.”
우빈이 아이의 입가에 묻은 밥풀을 손으로 뗐다. 김치볶음밥에다 삼매경이었다. 와구와구 음식을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우빈이 턱을 괴었다.
정말 눈앞에 있는 아이가 고양이일까? 처음 아이를 발견했을 때 아이가 두르고 있던 수건은 분명 고양이에게 건네주었던 수건이었다.
‘하…… 모르겠다.’
머릿속에 실타래 하나가 단단히 엉켜있는 듯했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우선 설거지를 하러 몸을 일으켰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그릇을 닦는 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더러운 그릇을 뽀득뽀득 소리가 나게 닦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도 정리되기 때문이었다.
우빈이 고무장갑을 끼자 아이가 쫄래쫄래 따라왔다.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을 틀고 수세미에 세제를 짜내었다. 수세미로 접시를 닦고 뜨거운 물로 다시 접시를 닦을 때였다.
아이가 우빈의 뒤에서 빤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빈은 설거지에 집중하느라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순간 그릇이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세미와 세제도 함께 움직여서 그릇과 물로 닦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뺘아, 뺘.”
우빈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릇이 혼자 저절로 공중에 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옆에 무언가가 있었다. 뾰족한 귀를 가진 작은 인어들이었다.
푸른빛이 나는 인어였다. 하나가 그릇을 붙잡자, 다른 하나가 물대포를 꺼내 그릇에 물을 쏘았다. 시원스럽게 물줄기가 나아갔다.
또 다른 인어는 수세미를 가지고 까르르 웃으며 그릇을 닦아냈다.
“이게 도대체…….”
믿기지 않는 광경에 우빈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끝내는 주저앉았다. 시선은 작은 인어들에 고정되어 있었고 입은 다물 줄을 몰랐다.
“마, 마법? 너 마법도 쓸 줄 아는 거야?”
“뺘아!”
아이가 활짝 웃었다.
수고했다는 듯이 손을 흔들자 인어들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주저앉은 우빈을 보고는 아이가 팔을 붙잡아 이끌었다.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며 칭찬해 달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우빈은 얼떨결에 그 손에 이끌려 깔끔하게 정리된 선반으로 다가갔다.
우빈이 접시를 하나 꺼내어 확인했다.
‘엄청 깨끗해.’
우빈이 접시의 앞뒤를 번갈아 살펴보았다. 접시는 마치 방금 산 물건처럼 반짝반짝했다.
“뺘아.”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팔을 허리에 두었다.
“어…… 잘했어?”
“뺘아아.”
중얼거리는 우빈을 보고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우빈을 보고 아이가 우빈의 손목을 잡아끌어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아.’
우빈이 그제야 무얼 해야 할지 깨달았다.
“고마워.”
손으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그제야 아이는 만족한 듯 활짝 웃었다.
* * *
그렇게 아이와 함께하는 일주일이 흘렀다.
생각보다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같이 밥을 먹고, 우빈이 장사를 하는 동안은 이 층에 있는 방에서 머물렀다.
힐끔 보았을 때는, 저번에 봤던 작은 인어들과 놀거나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혹시 시간이 다시 흐르면 고양이로 돌아가는 걸까 생각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계속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뺘!”
아이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날씨가 꽤 추웠기에 계속 우빈의 티셔츠만 입힐 수도 없어 시장에서 부랴부랴 사 온 옷이었다.
“너는 원래 살던 곳이 어디야?”
우빈의 물음에 아이가 뺘뺘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속 방에서 나가고 싶어 했잖아. 어디인지 알려주면 내가 그곳까지 데려다줄게.”
“뺘아…….”
아이는 힘없이 손으로 세모를 만들어 지붕 모양을 만들더니,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다음에 벌벌 떠는 모습을 하고는 철퍼덕 쓰러졌다.
그리고 힘차게 일어나서는 주방에서 접시를 가져왔다. 반짝이는 접시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키며 뺘뺘거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우빈은 아이를 달래기 위해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집이 없다고? 쓸모 있으니까 버리지 말라고? 아니, 아니. 무언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너를 내쫓으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우빈의 말에 아이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앙다문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아이는 슬그머니 우빈에게로 다가와 그의 옷깃을 꼭 잡았다. 그러고는 우빈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혹시 여기에 있고 싶은 거야?”
“뺘아, 뺘!”
아이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솔직히 우빈도 요 일주일 동안 아이와 정이 들었다.
어느새 밥을 먹고 활짝 웃는 아이의 모습을 당장 내일부터 보지 못한다고 하면 꽤 서운할 것 같았다. 꾸벅거리며 자는 모습도.
“그래, 그러면.”
아이가 뺘뺘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네가 원하는 만큼 여기에서 머물러도 돼.”
“뺘아!!”
아이가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올리고는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우빈이 따라 빙그레 미소 지었다.
* * *
한편, 풍영시장에서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아오, 진짜. 급한 보고서도 아니었으면서.’
남자가 이를 아득거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야근이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와서 하겠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팀장은 기어이 남자를 붙잡아서 일을 시켰다.
금방이면 된다면서 저녁도 먹지 못하게 해놓고는, 그래프를 추가해라, 이쪽 문단은 위치를 올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 등등.
문장 하나하나 시비를 거는 통에 작업은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길어졌다.
“이놈의 회사. 내가 빨리 로또 당첨돼서 그만둬야지, 원. 그때는 팀장 머리에다가 사직서 하나 시원하게 던져주고 떠날 거다, 내가.”
투덜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던 남자가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간판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늘밥집? 이런 가게가 있었던가?’
어쩌면 배가 고파서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걸지도 몰랐다.
‘……밥이라도 먹고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