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30
집밥을 너무 잘함 30화
아브아, 마시써, 웅, 시러. 정도는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웅?”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봄이었다.
“봄아, 한 번 언니라고 해봐, 언니.”
“……엉니?”
갸웃.
또다시 고개를 기우뚱하는 봄이의 모습에 슬기가 소리를 질렀다.
“꺄아악! 영상 찍었어야 됐는데. 유채한테 자랑해야겠어요!”
슬기는 한참을 그렇게 봄이의 사진을 찍었다.
우빈은 슬쩍 지난번 어버이날 행사 때 찍었던 합창 동영상도 슬기에게 보여주었다. 보자마자 슬기는 이런 게 있으면 두 눈으로 봐야 했다며 또다시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딸기 케이크가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사라질 때 즈음.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한 모습으로 슬기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응?”
“너튜브 채널 콘텐츠로 음식 영상을 찍어보려고 하는데요. 혹시 사장님이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레시피는 당연히 안 나오게 찍을 거고요, 중간중간 조리 과정 몇 개만 찍고, 나머지는 거의 음식 사진으로 하려고요.”
“나야 좋긴 하지만.”
생글 웃는 강슬기를 보고 우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영상 사람들이 많이 봐?”
“그럼요! 사장님 영상 엄청 인기예요.”
홍보도 될 테니 우빈의 입장에서는 특별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우빈이 잠시 고민했다.
“오늘 저녁 메뉴, 바로 촬영할래?”
“저야 감사하죠!”
오늘 우빈이 만들 음식은 카레였다.
양파와 돼지고기를 구입하고 슈퍼에서 뭘 만들지 고민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런 우빈과 같이 카레가루를 살피던 슬기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는 향신료 종류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강황과 큐민, 클로브 등의 다양한 향신료를 준비해 두고 자신만의 비율로 완성하기 때문에, 가게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었다.
“응. 인도 카레 전문점 가보면 마살라라는 단어 본 적 있지?”
“네, 봤어요! 무슨무슨 마살라 같은 거 말하는 거죠?”
“맞아. 그게 힌디어로 혼합한 향신료라는 뜻이래.”
“와, 신기해요. 먹어보고 싶다. 다음에 해 주시면 안 돼요?”
반짝거리는 눈빛의 슬기를 보고 우빈이 웃었다.
“그러게. 다음에 재료 좀 준비해 볼게.”
우빈의 시선이 다시 카레가루에 닿았다.
‘카레는 종류가 늘 많아서 고민이 된단 말이지.’
태국의 그린 카레. 일식 카레라이스. 난과 곁들여 먹는 정통 인도 카레까지.
카레에도 종류가 다양했지만 우빈은 모든 카레를 좋아했다.
그럼에도 선호를 묻는다면.
잠시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같을 터였다.
‘역시 이거지.’
우빈이 노란색 카레를 집어들었다.
우빈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그는 수요일을 가장 기다려 왔다.
수요일에는 맛있는 메뉴가 나오는 날이었고, 2주에 한 번은 카레라이스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먹음직스럽게 썬 큼지막한 감자와 고기가 잔뜩 들어있는 카레가 나오는 날이면, 우빈은 한 그릇으로는 부족했다.
‘집에 와서 부모님께 카레 해달라고 졸랐었는데.’
나중에는 그가 직접 카레를 만들어 먹을 정도로 카레를 좋아했다.
먼저 마늘을 다졌다.
기름을 둘러주고는 다진마늘을 볶아 향을 냈다.
“사장님, 다 됐어요!”
슬기가 당근과 감자 껍질을 필러로 벗겨서는 우빈에게 건넸다.
“고마워.”
우빈이 당근과 감자를 큼직하게 썰었다.
다음에는 아까 사온 돼지고기를 볶았다.
그렇게 볶아 어느 정도 익었다 싶었을 즈음에 우빈이 냄비에 물을 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름에 지글지글 볶던 채소들은 물이 들어가자 조용해졌다.
다음에는 카레가루를 넣어주었다.
노란 카레가루와 함께 카레가 노란색으로 순식간에 물들어갔다.
우빈은 덩어리가 남지 않도록 가루를 잘 개어주었다.
그렇게 이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우빈이 그릇 위에 새하얀 쌀밥을 올려놓고, 그 위에 카레를 올렸다.
‘흠. 무언가 부족한데.’
잠시 생각하던 우빈이 슬기에게 물었다.
“슬기야. 많이 먹을 수 있어?”
카메라를 들고 있던 슬기가 생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완전요! 안 그래도 지금 배고파서 엄청 잘 먹을 것 같거든요.”
‘그럼 이것도 같이 해야겠다.’
차르르르.
우빈이 기름에 돈가스를 튀겼다.
기름에 지글지글 돈가스가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었고, 슬기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카메라를 들이댔다.
시간이 지난 후에 우빈이 돈가스를 꺼냈다.
새하얀 쌀밥 위에 완성한 카레를 주륵 부어주었고, 그 위에 방금 튀긴 돈가스를 올려주었다.
“카레 돈가스 완성.”
“대바아악! 엄청 맛있어 보여요!”
“이건 촬영 안 해도 돼?”
순간 슬기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너튜브를 위해서는 촬영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면 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돈가스가 금방이라도 식어버릴 것 같았다.
“……빨리 끝낼게요.”
슬기가 굳은 표정으로 얼른 카메라를 촬영했다.
확대된 카메라 화면 속 카레돈가스. 튀김이 살아있어 바삭바삭해 보였고, 큼직하게 썰었던 감자는 열에 의해 뭉근하게 모서리가 다듬어진 상태였다.
꿀꺽.
슬기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살짝 매울지도 몰라.”
“괜찮아요. 저 매운 거 진짜 좋아해요.”
“맞다. 저번에 보니까 떡볶이 잘 먹더라.”
“헤헤. 사실 저는 떡볶이보다는 마라탕 파이긴 한데. 사장님이 그날 만들어주신 떡볶이는 엄청 맛있더라고요.”
우빈이 지난번 슬기와 유채가 떡볶이를 잔뜩 먹던 모습을 떠올렸다.
질겅질겅.
슬기가 크게 썰어진 고기를 씹었다. 고기에서 흐르는 육즙과 알싸한 카레맛이 제법 잘 어울렸다.
“으음, 진짜 맛있다. 살짝 매콤해서 더 맛있는 것 같아요.”
슬기가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냠, 냠.
봄이가 열심히 숟가락으로 카레를 떠먹고 있었다.
“먹을 만해?”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봄이를 보고 우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정작 봄이의 입맛은 맞추지 못했나?
오물오물.
카레를 꿀꺽 삼키고는 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마시써.”
‘휴.’
우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뭐야, 맛없다는 줄 알고 놀랐잖아.”
봄이는 우빈이 머리를 만지건 말건, 계속해서 ??거리며 카레를 먹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거면 다음에도 카레를 또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우빈이었다.
‘아니면 다음에 짜장밥을 만들까? 만드는 건 비슷하니까.’
짜장밥에 들어가는 재료 자체는 비슷하니까. 우빈이 다음에 한 번 시도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가 큰 여자가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영상 보고 왔어요. 여기, 매번 메뉴가 달라진다면서요? 오늘은 뭐 파세요?”
여자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웃었다.
여자의 얼굴을 보고 우빈은 생각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오늘은 카레랑 돈가스 중에 고르실 수 있어요.”
“둘 다 맛있어 보이는데 어쩌죠?”
“사실 카레돈가스도 있습니다.”
여자가 픽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 카레돈가스로 주세요.”
“네, 금방 튀겨드릴게요.”
지글지글. 돈가스를 기름에 튀겼다.
그리고 돈가스를 썰어서, 밥 옆에 올려놓았다. 그다음에 카레를 부으면 끝이었다.
고기도 양파도 가득 든 카레. 그리고 튀겨있는 돈가스까지.
“주문하신 카레 돈가스 나왔습니다.”
딱 봐도 푸짐해 보이는 카레 돈가스를 보고 여자가 감탄사를 냈다.
먼저 카레를 끼얹은 돈가스를 먹었다.
바삭!
튀김이 입안에서 바삭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우물우물.
카레와 밥을 숟가락으로 크게 퍼서는 여자가 입안에 떠넣었다.
오래 익어 부드럽게 부서지는 감자. 그리고 알싸한 카레의 향과 갓지은 쌀밥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약간 매콤한 맛의 카레가 음식맛을 더 당겼다.
그리고 그 안에 슬며시 숨겨져 있는 달콤한 냄새에 여자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과가 든 거예요?”
“오, 맞아요!”
‘맛있다.’
집에서 먹는 듯한 카레였다.
밥을 먹고는 여자가 같이 내놓은 둥굴레차를 들이켰다.
“맛있다, 우빈아.”
우빈이 깜짝 놀랐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그런 우빈의 반응을 보고는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나 기억 안 나? 이소현.”
분명 머리가 짧은 선머슴 같은 여자아이였는데.
그러고 보니 눈매가 똑 닮아있었다.
“……이소현? 어, 어어?! 신풍초등학교 2학년 3반?”
“3반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응. 신풍초등학교 맞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잘 지냈어. 오랜만에 보니까 정말 반갑다.”
이소현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비가 오는 날.
이소현은 아무도 데리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 모두 일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우산 없으면 이거 써.
“……그때는 그냥 비 맞는 게 좋아서 그런 거였는데.”
“풉. 그랬어?”
진상을 알고 나서도 이소현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말고도 고마운 일이 더 많은데.”
이소현이 우빈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에 또 올게, 우빈아. 맛있게 잘 먹었어.”
이소현은 생긋 웃고는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가게를 떠났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 이소현은 다시 오늘밥집에 찾아왔다.
이번에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차림이었다.
후드티를 입은 모습이 편해 보였다.
“혹시 간단하게 먹을 만한 음식도 있을까?”
“그럼 김밥은 어때?”
‘하필 김밥?’
이소현이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새벽부터 연 음식점은 거의 분식점밖에 없어서, 늘 김밥을 먹고는 했다.
“김밥은 자주 먹긴 하는데.”
“조금 다른 거로 해줄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무슨 김밥일까?
이소현이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김밥을 기다렸다.
메밀 김밥.
밥 대신 메밀국수를 넣는 김밥이었다.
메밀김밥을 만들기 위해 우선은 당근을 채를 썰어서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볶았다.
그다음에는 계란 지단을 만들 차례였다.
계란을 먼저 깨뜨리고는 그 위에 맛술과 소금을 넣고 잘 섞어주었다.
그다음에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구웠다.
그러고는 만들어낸 동그란 계란을 채를 썰어서 계란 지단을 완성했다.
신선한 오이도 얇게 채 썰었다.
그다음에는 메밀을 삶았다.
끓는 물에 메밀을 넣고는 물이 끓어올릴 때마다 찬물을 부어주었다.
들기름과 간장으로 메밀에 조금씩 간을 했다.
다음에는 일반 김밥과 똑같았다. 김 위에 그대로 메밀면을 먼저 올리면 완성.
김 위에 계란 지단, 채 썬 당근과 오이를 올려주었다.
그다음에는 김밥을 둘둘 말아서 완성했다.
“메밀로 만든 김밥이야. 먹어봐.”
‘맛있을까?’
이소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이소현이 메밀 김밥에 손을 가져다댔다.
“으음, 맛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엄청 건강한 맛이네! 당근이랑 오이가 아삭아삭 씹히는 게 싱싱하다는 느낌이 마구 드는데?”
김밥이 더 맛있어 보일 수 있도록, 김 위에는 고소한 참기름을 붓으로 발라주었다.
“이거 기억 안 나?”
우빈이 씩 웃었다.
“……이게 뭔데?”
“우리 옛날에 소풍 갔을 때 먹었던 김밥인데.”
“어, 설마……. 이게 그 김밥이야?!”
* * *
소풍 전날.
“엄마, 김밥 하나 사야 하는데 나 용돈 좀 줄 수 있어?”
“돈 아깝게. 엄마가 내일 만들어줄 테니까 기다려 봐.”
그러나 다음 날 테이블 위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역시나.’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한숨이 나왔다.
바쁜 부모님이었기에 음식을 챙겨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조차 않고 있었다.
이럴 줄 알고 김밥집에서 사먹게 용돈이라도 달라는 거였는데.
급한 대로 엄마 방에 있는 서랍도 뒤져보았지만 천 원 한 장 나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공원으로 이동했다.
꼬르륵.
배가 점점 고파왔다.
밥을 안 먹는 이소현을 보고 남자아이들이 짓궂게 놀려댔다.
“거지라 밥 못 먹냐?”
“그런 거 아니거든!”
“으악! 이소현이 화났다!”
남자아이가 달아났고, 이소현이 털썩 자리에 앉아있을 때였다.
우빈이 이소현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도시락 안 가져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