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33
집밥을 너무 잘함 33화
술을 그닥 즐기지 않는 한태호였는데도 불구하고, 절로 소주가 생각날 만큼 얼큰한 맛을 가지고 있는 김치찌개였다.
부드럽게 입안에서 으깨어지는 두부. 안에 배어있는 김치찌개의 국물이 기분 좋게 목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에는…….’
대망의 삼겹살.
한태호가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어서는 입안에 넣었다.
오랫동안 센 불에 넣어 삶았기에 삼겹살은 부드럽게 입안에서 녹듯이 흩어졌다. 물컹, 하면서 삼겹살 비계를 씹었다.
비계는 쫀득거리면서 탄성감이 있었다.
“으음, 고기 맛이 완전 제대로네요.”
한태호가 감탄하면서 고기를 계속해서 씹었다. 비계 바로 옆에 붙어있는 살코기는 아주 식감이 좋았다.
그는 더 못 참겠는지 밥공기에 들어있는 밥 전부를 모두 김치찌개에 말아먹었다.
두부와 청양고추, 그리고 하얀 쌀밥과 쫀득한 돼지고기 삼겹살. 모든 재료가 함께 찌개 안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축제 같았다.
“그러고 보니 바이올린 연습은 잘돼 가고 계세요?”
저번에 오늘밥집에서 유채가 한태호에게 건네주었던 바이올린. 우빈은 그 이후로 한태호의 실력이 늘었는지 궁금해했다.
한태호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형편없어요. 활을 그을 때마다 끼긱, 끼기긱. 어휴, 어찌나 날카로운 소리가 나던지.”
한태호의 말에 우빈은, 혹시나 한태호가 바이올린이 싫어진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러니까 연주가들이 더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까다로운 악기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는지. 뒤에서 얼마나 피를 깎는 노력을 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태호가 부드럽게 웃었다.
“뭐, 유채도 아빠가 좋아하니까 좋다고는 하는데, 끼긱 소리가 나면 방에 휙 들어가 버려요. 도저히 못 견디겠다면서요. 사준 걸 후회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전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얼마 전에도 슬기와 놀러와서는 그렇게 자랑을 하던걸요.”
“그 녀석이 그랬어요? 아이고, 참.”
“기회 되시면 나중에 저도 들려주세요.”
“예, 꼭 그러겠습니다.”
한태호가 부끄러워하면서도 밝게 웃었다.
“참, 그러고 보니 유채가 이것 좀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가게를 나서려던 한태호가 건넨 건 티켓이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록밴드 공연이었다.
“이게 뭡니까?”
“유채도 어딘가에서 받아온 티켓인데, 바쁜 일이 생겨서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저 보다야 젊은 사장님이 가시는 데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전체관람가라서 따님도 같이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제가 받아도 되나요? 감사합니다.”
한태호는 그렇게 티켓을 건네주고는 손을 흔들며 가게를 나섰다.
록밴드라.
티켓을 받아든 우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 * *
“뭐? 공연 티켓? ……어어?!”
박길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이 밴드 진짜 좋아하는데! 이 밴드도, 이 밴드도!”
이것저것 밴드 이름을 박길복이 우다다다 말했지만 우빈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티켓이 세 장이라서요. 저는 봄이랑 둘이 갈거라, 한 장은 박 사장님께 드릴게요.”
“나야 좋지! 어휴, 이 공연 엄청 비싼 건데. 자자, 가만있어 봐. 이렇게 좋은 걸 받았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야 없지. 내가 오늘 들어온 고기 중에 제일 좋은 걸로 줄게!”
“아니, 괜찮습니다.”
“에헤이, 사양 말고!”
우빈은 그렇게 잔뜩 들뜬 박길복으로부터 소고기를 잔뜩 받아왔다.
“으음.”
그것도 밝은 선홍색을 띄면서 마블링이 고르게 퍼져있는 것이 누가 봐도 좋은 퀄리티의 LA갈비였다.
좋은 고기를 받아오면서도 우빈의 마음은 어딘가 불편했다.
애초에 티켓을 준 건 한태호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 고기도 원래는 한태호의 몫일 텐데, 괜히 중간에서 자신이 뺏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빈은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한태호가 오면 LA갈비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갈비를 재우기로 했다.
우선은 찬물에 갈비 핏물을 뺐다.
설탕을 넣은 물에 담그자 갈비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간장과 설탕, 키위와 배, 양파를 모두 갈아서는 양념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만든 양념에 갈비를 재웠다.
내일은 목요일.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한태호가 가게에 들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어김없이 한태호가 찾아왔다.
우빈은 반가운 얼굴로 한태호를 맞이했다. 다행히 늦은 시각이라 한태호 말고 다른 손님도 없었다.
“오늘 메뉴는 LA갈비입니다.”
특급 비밀을 말하듯이 소곤거리는 우빈을 보고는 한태호가 깜짝 놀랐다.
“L, LA갈비요?”
직접 장을 보는 한태호였기에 LA갈비가 얼마나 비싼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우빈이 씩 웃었다.
“저번에 티켓 주셨잖아요. 그 티켓이 엄청 비싼 티켓이라던데요? 친구가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우빈은 티켓을 받는 박길복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아아, 그래요? 저 대신 더 좋아하는 사람이 가게 되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게 LA갈비랑 무슨 관련이…….”
“저쪽 옆에 정육점을 운영하거든요. 고맙다면서 제일 좋은 갈비로 골라줬다는데, 한태호 씨가 제게 준 티켓 아닙니까? 그래서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양념도 했으니 가서 따님분이랑 드세요.”
우빈은 그렇게 양념에 재워둔 LA갈비를 꺼냈다.
“사장님은 좀 드셨어요?”
“아니요, 전부 다 한태호 씨 드리려고 재워만 놨어요.”
“그럼 같이 드시죠.”
치이익.
늦은 밤이었기에 봄이는 자고 있었다.
내일 봄이에게 구워줄 고기는 따로 남겨둔 채로 우빈이 프라이팬에 LA갈비를 구웠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LA갈비와 함께 고기냄새가 솔솔 가게에 퍼졌다.
양념이 있기 때문에 타지 않도록 약불에 노릇하게 구워냈다.
번들거리는 양념과 함께 팬 위의 갈비가 치익 소리를 내면서 익어가기 시작했다.
박길복이 건네준 최상급의 신선한 갈비와 우빈이 솜씨를 발휘한 양념이 합쳐지자 더할 나위가 없었다.
진하고 달달한 양념맛에 육즙을 가득 머금은 LA갈비. 한태호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는 말했다.
“와아, 이거 정말 좋은 고기군요.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고기가 정말 맛있네요.”
우빈도 동의하면서 갈비를 뜯었다.
한태호는 역시 티켓을 우빈에게 주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공연, 재미있게 보고 오십시오.”
* * *
한편. 거리에서 한 밴드가 노래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려던 청년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태성, 괜찮겠냐? 그렇게 몸까지 덜덜 떨어가면서.”
“하, 할 수 있어.”
내뱉은 말과는 달리 심장은 쿵쿵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결국 그는 한 소절밖에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술렁였다.
“뭐야? 잘하는 줄 알았더니.”
“내 말이. 완전 실망.”
수군거리는 사람들 소리에 청년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도망치듯이 자리를 벗어났다.
“야, 이태성!”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지만 남자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야, 또.’
날카롭게 날아드는 사람들의 말보다 더 가슴이 아팠던 건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몇 주 전부터 계속 이랬다.
얼마 전 낸 앨범. 그리고 거기에 쏟아져 나온 어마어마한 혹평을 보면서 청년, 이태성은 자신의 음악에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신선함이라고는 모두 빠져나가 버린, 역대 앨범 중에 가장 지루하면서도 산만한 앨범! 끌리는 곡이 단 하나도 없는 실망스러움 그 자체.
대중들의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다른 평론가들의 평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좋은 말을 99개 듣고 나서도 1개의 악평만이 기억에 남는 것이 사람의 본능인 걸까.
유독 그 평론가의 혹평만이 새겨지듯 뇌리에 남았다.
이후로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저번에 있는 글자가 보이는 듯했다.
허억, 헉.
한참을 달리던 이태성이 숨을 골랐다.
이태성은 문자 하나를 받았다.
-일단 우리끼리 공연 마쳤어. 잘 끝났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쉬고 와라. 밥 챙겨먹고.
“……하아.”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멤버들에게 미안해도 너무 미안했다.
‘게다가…….’
버스킹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인데, 며칠 후에는 큰 공연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던 이태성의 코에 훅 냄새가 끼쳐왔다.
고소한 냄새에 이태성이 자신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렸다.
‘……맛있는 냄새.’
이태성이 침을 삼켰다.
이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 * *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온 이태성이 두리번거렸다.
“저기요.”
“네?”
“혹시 조금 든든한 음식 있을까요? 먹으면 확 기운 나는 음식 같은 거요.”
“기운이 나는 음식이요? 음, 마침 잘됐네요.”
우빈이 활짝 웃었다.
“오늘 메뉴가 추어탕이거든요.”
“추, 추어탕이요? 먹어본 적 없는데.”
‘추어탕을 먹어본 적 없다고?’
예상하지 못한 말에 오히려 우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추어탕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기는 했지만.
“그럼 한번 한입만 드셔보세요.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뜨끈하면서도 펄펄 끓는 국물을 들이켜면 몸이 절로 뜨끈해졌다.
이태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은 미꾸라지를 먼저 소금에 박박 문질러서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그런 미꾸라지의 모습을 보고는 봄이가 얼어붙은 듯이 자리에 서 있었다.
“마시써 아냐. 시러!!”
후다닥 이층으로 도망가 버리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픽 웃었다.
하긴, 보기에 식욕을 썩 돋우는 모양은 아니었다.
다음에는 냄비에 물을 가득 넣어서는 된장을 한 큰 술 넣어주었다.
팔팔 물이 끓자 미꾸라지를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다음에는 삶은 미꾸라지를 으깨주었다.
건더기가 씹히지 않도록 체에 곱게 걸렀다.
“으아아. 이것도 완전 노동이네.”
우빈이 미꾸라지를 으깨던 중에 어깨를 툭툭 쳤다.
만들기 전에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추어탕 전문집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뚝배기에 으깬 미꾸라지를 담고는 산초가루와 후춧가루, 다진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었다.
민물고기의 흙냄새를 지워주기 위해 얼얼한 맛이 나는 제피도 조금 집어넣었다.
“추어탕 나왔습니다.”
‘주, 주문하기는 했는데…….’
갈아진 미꾸라지에 그나마 형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태성이 저도 모르게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응?! 맛있잖아?’
이태성이 눈을 크게 떴다.
미꾸라지의 생김새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건.’
펄펄 끓는 뚝배기에서 부추와 우거지가 담겨 있었다.
부드럽게 익은 우거지에서는 들깨가루와 섞여 고소한 맛이 났다.
후룩.
추어탕 국물을 떠먹자 구수하면서도 진한 국물이 느껴졌다.
마치 미꾸라지가 마지막으로 온 힘을 발산하고 나간 듯한 에너지.
미칠 듯한 기운이 몸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뜨거운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었다. 쌀알 한 톨 한 톨에 배인 국물을 먹자, 이태성은 계속 자신이 고민하던 일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수족냉증 때문에 항상 손발이 차가운 이태성이었다.
하지만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으니 속이 든든하면서, 손바닥도 곧 따끈따끈해졌다.
그와 함께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더니 계속 위축되었던 자신이었지만, 추어탕을 먹으니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사람이 참, 단순하네요.”
이태성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강 사장! 오늘 메뉴가 추어탕이라며! 나를 불러줘야지, 내가 추어탕을 얼마나 좋아하…….”
뛰어 들어오던 박길복의 눈이 순간 멍해졌다.
앉아있던 이태성의 옆얼굴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추어탕을 먹고 난 이태성과 박길복의 눈이 마주쳤다.
“어, 어……!”
박길복은 벌떡 일어서더니 이태성을 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