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35
집밥을 너무 잘함 35화
신현주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닫은 방문과 함께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났다.
“너 정말. 이거 문 열어, 안 열어?!”
“여보.”
아내가 화가 나서 당장 방문을 열려고 했지만 불룩체인이 그녀를 말렸다.
안 그래도 요즘 현주가 이상했다.
매번 밝게 웃는 현주였는데 요즘 말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였다.
불룩체인과 아내는 거실에 앉았다.
“현주, 요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생일파티가 싫다는 거 보면 뭔가 따돌림을 당한다든가······.”
“현주 애들이랑 잘 지내. 저게 아빠한테 버르장머리 없게 구는 거지. 당신은 아까 왜 말렸어? 저럴 때 따끔하게 혼을 내야 하는데.”
“그러게. 당신 말이 맞아. 나쁘게 말할 때는 혼내야 하는데.”
아내는 불룩체인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 또 바로 수긍하니까 뭐라고 더 말하기도 어려웠다.
불룩체인은 딸에게 유독 약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아팠던 딸이기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흉터가 남아있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지금까지 씩씩하게 자라왔지만, 그래도 엄하게 굴기에는 아직도 병원 중환자실에 있던 모습이 선했다.
하지만 늘 버릇없게 구는 딸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현주가 학교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한번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불룩체인의 심각한 목소리에 아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어. 괜히 관심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야.”
아내의 예상은 빗나갔다.
“현주야, 여기!”
바로 다음 날.
불룩체인이 평소처럼 하교하는 현주를 불렀지만, 현주는 불안해하는 표정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어? 방금 눈이 마주치지 않았나?’
분명 시선이 마주쳤는데. 하지만 설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딸 신현주가 그렇게 자신을 무시할 리는 없었다.
“신현주! 현주야! 아빠 왔어.”
불룩체인이 크게 현주의 이름을 외쳤다.
현주는 잠시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시선이 마주쳤지만, 현주는 다시금 뛰어가 버렸다.
불룩체인이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혹시······ 내가 부끄럽나?’
불룩체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터벅터벅 걷는 걸음에서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맛있는 걸 먹어야 해.’
불룩체인이 고개를 붕붕 흔들었다.
사람은 의외로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그 기운으로 또 다른 일도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맛있는 음식, 을 생각하자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불룩체인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 * *
‘오늘은 뭔가 면이 땡기네. 으음.’
고민하던 우빈은 잔치국수를 오늘의 메뉴로 정했다.
멸치와 다시다로 육수를 만드는 동안 애호박, 표고버섯, 양파를 하나씩 채를 썰었다.
삶은 소면은 찬물에 헹구어주었다.
팬에는 계란물을 휘릭 부어주었다. 천천히 익어가는 계란을 건져내서는 잘게 썰어 계란 지단을 만들었다.
우빈은 얼마 전에 담근 김치를 살짝 맛보았다.
“딱 좋네.”
이번에는 좀 간을 세게 했는데, 그 맛이 담백한 잔치국수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움푹한 그릇에 면과 채소를 담고는 육수를 부어주고, 위에는 계란 지단을 올렸다.
‘다음에는 양념장도 만들어볼까.’
“잘 먹겠습니다!”
“뺘아!”
후루룩.
적당하게 간이 되어있는 육수는 자극적이지 않아 봄이가 꿀꺽꿀꺽 그릇을 들어 올리고는 국물을 들이켰다.
“퍄하!”
소면을 열심히 집어먹었다.
면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누군가 가게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불룩체인 님?”
우빈이 젓가락으로 집은 면을 차마 입에 다 넣지 못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불룩체인이 시야에 들어오는 잔치국수를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저도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잠시 후.
후루룩, 후룩.
불룩체인은 정말 맛깔나게 음식을 먹는 사람이었다.
후후 불면서 면을 먹는 모습이, 우빈은 이미 한 그릇을 먹었는데도 또 잔치국수를 먹고 싶게 했다.
따뜻한 국물과 면을 호로록 먹으니 몸이 따뜻해지는 것만 같았다.
잔치국수 위에 있는 계란 지단과 국물을 잔뜩 머금어 말캉거리는 표고버섯까지 모두 삼키고 나서야 불룩체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하아.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불룩체인은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으음.”
불룩체인이 목덜미를 긁적이다가 방금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늘 하는 대로 하교길에 딸을 데리러 갔지만, 어쩐지 후다닥 자신의 시선을 피했다는 이야기.
이야기를 듣던 우빈은 생각했다.
“사춘기 아닐까요?”
“사춘기요.”
“네. 저번에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했죠? 그러면 이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불룩체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신만 해도 사춘기라고 몇 번 반항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이건 그냥 제 생각이고, 불룩체인 님이 제일 잘 아실 텐데요. 따님하고 한 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어때요?”
불룩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의 말이 맞았다.
혼자서 이렇게 고민해 봤자 괜히 오해만 쌓여갈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참, 그리고 조금 있으면 딸아이 생일인데. 혹시 대관도 가능할까요? 날짜는 일주일 후입니다.”
“그럼요. 원하는 음식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우리 현주는, 음. 고구마 맛탕을 좋아해요. 그리고 면도 좋아해서 스파게티도 좋을 것 같고요. 인원수는 아마 열 명 정도 될 텐데, 정확한 인원수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빈은 얼른 받아적었다.
“두 그릇, 포장해 주시겠어요?”
아무래도 용기 내어 딸과 이야기해 보려면 무기가 필요했다.
* * *
“현주야. 아빠랑 같이 저녁 먹을까?”
불룩체인이 현주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오늘 야근으로 늦는다고 미리 톡이 와 있었다.
불룩체인은 포장해 온 잔치국수를 뜯었다.
현주는 흘끔거리더니 다가왔다.
후루룩, 후룩.
현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
아직 따뜻한 육수에 소면.
현주는 면을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역시 잔치국수를 사오길 잘했다고 불룩체인은 생각했다.
“아까 혹시 아빠 봤어?”
“······응.”
혹시라도 거부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현주는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현주야. 아빠가 학교에 가서 현주가 기분이 나빴던 거야? 부담스러웠다거나?”
현주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금방이라도 툭 치면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였다.
“그런 거 아냐.”
“그러면······.”
현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답을 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불룩체인은 현주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참, 생일파티 말이야. 미리 예약해 뒀어. 현주 친구가 몇 명 올지 미리 말해주면 돼. 열 명 정도는 넉넉할 거야.”
현주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
현주는 대답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 * *
“하아아.”
오늘따라 책가방이 무거웠다.
‘아빠, 화났겠지.’
현주는 어제 방으로 돌아가기 전에 봤던 아빠의 표정을 떠올렸다.
역시나 상처 입은 표정이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현주는 요즘 들어 학교에 가는 길이 즐겁지 않았다.
현주가 교실문으로 들어서자 킥킥거리면서 웃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애들보다 더 싫은 건 바로 저기, 앞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최다연 때문이었다.
“야. 너희 아빠 돼지라매?”
휙. 현주는 남자아이의 말에 응답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렸다.
“너도 먹방해 봐, 먹방. 돼지 아빠 딸은 돼지니까 너도 먹방 잘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안녕하세요, 여러분! 돼지체인입니다.”
남자아이가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불룩체인을 따라하는 시늉을 냈다.
현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저런 애들한테 괜히 반응하면 안 돼. 무시가 답이야.’
현주는 한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이름은 최다연.
현주는 최다연이 이 괴롭힘의 중심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최다연은 키득거리며 옆에 있던 여자애에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주는 신경 쓰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울거나 화를 내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든 최다연은 현주가 자신의 말에 반응했다는 것에 기뻐하며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러니.’
현주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행히 곧 수업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이 들어오자 남자아이는 조용해졌다.
그렇게 얌전해졌다 싶었는데, 현주의 책상 위로 한 쪽지가 날아왔다.
“······.”
쪽지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돼지와 옆에 있는 작은 돼지.
현주는 맛있는 음식을 소개해 주는 아빠가 좋았고, 그런 아빠가 너튜버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시점 이후로 현주에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런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들이 최다연의 곁으로 갔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미안, 다연이가 불러서······.
-어? 다연이가 네가 이렇게 말했다던데······ 아니야?
중간에서 최다연이 무엇이라고 말을 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친했던 아이들마저 점점 현주와 서먹해졌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 최다연과 사이가 엇갈렸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아빠가 너튜버인 건 그저 대외적인 이유일 뿐.
어느 날부터 최다연은 자신을 싫어했고, 틈틈이 트집 잡을 건수를 노리고 있었다.
미처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괜히 내가, 아빠 이야기를 꺼내서.’
현주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쪽지를 구겨서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 * *
그렇게 냉전 아닌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주의 생일날이 되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고구마 맛탕만 만들면 된다.’
우선 고구마의 껍질을 벗기고 한입거리로 잘라주었다.
찬물에 담가서는 전분을 빼주었다.
다음에는 키친타올로 고구마에 묻어있는 물기를 빼주었다.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서 고구마를 튀기듯이 익혔다.
고구마의 겉면이 바삭바삭해 보였고,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다음으로는 겉면에 달달한 시럽을 입혀줄 차례였다.
프라이팬에 올리고당과 식용유, 설탕을 녹였다.
이때 설탕을 주걱으로 저으면 설탕이 그대로 굳어버리기 때문에, 우빈은 프라이팬을 들어서 설탕이 골고루 녹도록 했다.
설탕이 녹아들자 우빈은 아까 물기를 빼주었던 고구마를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는 검은깨를 뿌려 장식하자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이 정도면 되려나? 음료수랑 과자는 불룩체인 님이 가지고 온다고 했고.’
갈비찜, 파스타, 샌드위치와 고구마 맛탕까지.
식을 수 있으니 아직은 접시에 내놓지 않고 화구 위에 뚜껑을 닫은 채로 보관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불룩체인이 호쾌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옆에서 현주는 입을 살짝 내밀고는 앉았다.
“이야, 가게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네요! 사장님, 혹시 음식은 아이들이 다 오면 그때 부탁드려도 될까요? 현주야, 괜찮지?”
현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아름 들고 온 과자와 음료수를 테이블에 세팅하고는, 불룩체인은 케이크를 품에서 꺼냈다.
불룩체인과 현주가 앉아 기다렸지만, 초대장을 받은 아이들은 좀처럼 나타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흐르자 현주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고 불룩체인은 안절부절못했다.
‘이래서 생일파티를 하기 싫다는 거였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현주를 꽉 껴안았다.
현주의 품안에도 쏙 들어올 만한 작은 크기. 봄이었다.
“엉니.”
“······.”
현주는 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봄이가 배시시 웃었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봄이를 보고는 현주가 이내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같이 먹을래?”
“웅?”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빈이 봄이를 데리러 오려고 했지만, 현주가 봄이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현주가 입을 열었다.
“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