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39
집밥을 너무 잘함 39화
“혹시 내일부터 출근하실 수 있습니까? 어려우시면, 다음 주부터-”
“내일, 됩니다! 아니, 오늘부터 바로 일할 수 있어요!”
“오늘은……. 아직 준비할 게 있어서요.”
가게에 있는 앞치마는 이수호에게는 조금 작을 것 같았다.
“예. 그럼 앞으로 같이 잘해봐요.”
허리를 몇 번씩이나 숙여가는 이수호를 보고 우빈이 손을 흔들었다.
* * *
“주문하신 김밥, 으, 으아악! 죄, 죄송합니다!”
다행히 김밥은 바닥에 흘리지는 않았지만 모양이 조금 뭉개졌다.
이수호가 얼른 고개를 꾸벅였다.
“허허, 새로 들어온 분이신가보네요? 느긋하게 해요, 느긋하게.”
한태호의 말에 이수호가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고는 돌아왔다.
‘잘해야 해.’
이수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수호는 이제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정말로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오늘밥집에 오게 된 것도 단순히 일이 쉬워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빈의 요리 실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의 옆에서 요리를 보조함으로써 언젠가는 자신의 식당을 차리고 싶기 때문이었다.
고작 세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우빈이 벌써 식당을 운영하고, 너튜브에까지 소개되는 것이 부러웠다.
다른 레스토랑의 사람들은 그저 운일 뿐이라며, 너튜브에 잠깐 반짝 올라간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이수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 누군가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던 기회의 순간을, 우빈이 실력으로 잡은 것이라고. 실력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그걸 잡지 못할 테니까.
아르바이트로 온 이수호.
이수호는 봄이와 눈을 마주쳤다.
“이쪽은 내 딸 봄이야. 그리고 봄아, 여기는 이수호라고 해.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될 거야.”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던 소개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와아, 봄이라고 하는구나. 안녕? 나는 이수호라고 해.”
연갈색 머리카락에 커다랗고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
우빈이랑은 닮지 않았지만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수호를 보고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우빈의 등 뒤로 가서 숨었다.
‘봄이가 낯가림이 있는 편은 아닌데.’
비록 실수투성이였지만, 싹싹하고 언제나 미소 가득한 이수호를 보고는 손님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주문 이거 아닌데요?”
“앗,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가끔 까칠한 말투로 하는 손님도 맑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이수호를 보고는 봄날의 얼음처럼 살살 녹아내렸다.
‘확실히 편해졌다.’
이수호가 저녁 피크 타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우빈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바쁜 저녁 시간에 서빙을 하자, 우빈은 요리를 더 맛있게 만드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호야, 여기 달래된장찌개.”
“넵!”
씩씩하게 대답하는 이수호.
“어서 오십시오!”
우렁차게 인사하는 이수호를 보고는 손님들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서 오세요도 아니라 어서 오십시오래.”
“주문하시겠습니까?”
비록 자잘한 실수는 많았지만 이수호는 밝고 싹싹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뭐가 들어간 거예요?”
“아, 그건 달래인데요. 마침 봄이 제철이라 아주 맛있을 겁니다.”
응대도 싹싹해서 우빈은 마음을 조금 놓았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게 되어서 긴장했는데, 이렇게라면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수호야.”
“네, 사장님!”
“옷 거꾸로 입었다.”
뒤에 있는 택이 보였다.
“시정하겠습니다!”
‘……말투만 조금 고쳐주면 좋을 텐데.’
각이 제대로 잡혀있는 이수호를 보고는 우빈이 머쓱하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밥집입니다!”
한 여자 손님이 가게로 들어오다가 이수호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어?! 혹시 새로 오신 분이세요?”
“네, 맞아요. 오늘부터 새로 오늘밥집에서 일하게 된 이수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생글 웃는 이수호를 보고는 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쪼르르 물을 따르다가 그만 물을 엎지르기도 했다.
“제가 닦아드릴게요. 옷에 흘리지는 않으셨어요?”
이수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빠르게 테이블을 닦았다.
“잔치국수 나왔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걱정이 된 우빈은 봄이에게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봄아, 이제 수호가 매일 가게로 올 건데. 앞에서는 마법을 쓰면 안 돼.”
우빈은 봄이가 곤란에 처하지 않았으면 했다. 봄이도 그런 우빈의 마음을 알기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은 그날 오후 벌어졌다.
* * *
“형, 안녕!”
“잘 가.”
이수호가 양손을 흔들었다.
가게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고, 서글서글하게 웃는 이수호는 인기가 많았다.
싹싹하다며 어른들에게도 인기만점이었고, 아이들에게도 인기였다.
“어머, 젓가락이-”
한 여자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여자가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허리를 숙여 젓가락을 주우려고 할 때였다.
이수호가 잽싸게 새로운 젓가락을 내밀며 웃었다.
“여기 젓가락 새로 있습니다! 떨어진 건 제가 주울 테니 몸 숙이지 마세요.”
“어머! 고마워요.”
젓가락을 새로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젓가락을 내미는 모습이 제법 민첩했다.
“저희 이거 안 시켰는데요?”
“앗, 죄송합니다! 바지락 된장찌개로 주문하셨군요!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실수를 했지만 공손하게 대답하자 손님들의 불만도 금방 가라앉았다.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 장사가 끝난 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곧바로 저녁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오늘은 잔치국수를 메뉴로 할 예정이었기에, 이십 리터짜리 육수통 안에 국물이 꽉 차 있었다.
“이거 다 끓여진 것 같은데, 옆으로 옮기면 될까요?”
“응, 옆에다 놓아줘. 무거우니까 조심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이수호가 씩씩하게 말하고는 먼저 주방 장갑을 꼈다.
‘조심조심.’
가뜩이나 자신의 덜렁거리는 성격을 알기 때문에, 혹시 손이 다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이수호가 장갑을 끼고는 조심스레 육수통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였다.
육수통에 달린 손잡이에 있던 나사가 풀어졌다.
“어어, 어?!”
이수호는 황급히 통을 잡으려고 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커다란 통이 엎지르기 직전이었다.
“수호-”
우빈이 황급히 돌아섰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수호가 눈을 질끈 감았을 때였다.
“뺘아.”
봄이가 나타났다.
봄이의 손짓과 함께 운디네들이 나타나 흐르던 통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엎질러서 물을 쏟으려던 통이 공중에 그대로 멈추었다.
“이, 이건……?”
이수호가 그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뺘아.”
이윽고 봄이가 손바닥을 오른쪽으로 넓게 뻗었다.
그러자 그대로 둥실거리며 멈추어있던 통은 천천히 기울어지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곧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육수통은 다시 화구 위로 올라갔다.
이수호가 주저앉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덜덜 떨고 있는 채였다.
우빈이 급하게 수호에게 달려갔다.
“수호아, 괜찮아?! 어디 국물이 튀고 그러지는 않았어? 손은? 손 줘봐.”
침착한 편인 우빈도 놀라서 급하게 이수호의 손을 살폈다. 다행히 손은 아주 깨끗했다. 육수가 튀거나 그런 흔적은 전혀 없어보였다.
통 안에 있던 음식물은 전혀 쏟아지지 않았다. 수호의 몸은커녕, 옷에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것을 보고는 우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네, 네……. 사장님. 저는 괜찮습니다.”
“바로 퇴근해, 수호야. 마무리는 나 혼자 할 테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너무 힘드실 텐데…… 그것보다, 방금, 육수통이…… 방금, 보셨어요?”
이수호는 덜덜 떨면서 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빈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에 이수호가 다쳤을까봐 놀랐고, 이수호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자 그다음으로는 봄이의 걱정이 들었다.
‘정령들, 다 보았겠지.’
일단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럼 일단 이층에서 쉬고 있을래? 준비는 나 혼자 해도 되니까.”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채로 이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일하기에는 몸이 화들짝 놀랐는지 심장이 너무 쿵쿵 뛰고 있었다.
“네, 네. 그럼 잠시 쉬고 있겠습니다.”
* * *
우빈이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손잡이에 나사가 풀어지다니.
안 그래도 불이나 가스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요리사였다.
심지어 이 육수통은 구입한지 몇 달 되지도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봄이가 정령의 힘을 쓰는 것까지.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이제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분명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우빈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한편, 이수호는 오늘밥집 이층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만약 육수통이 그대로 손에 떨어졌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공중에서 멈춘 육수통 덕에 다치지는 않았다.
다시 생각해도 기묘한 일이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만약 육수통이 멈추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크게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무언가 비밀이 있는 걸까.
이수호는 자신을 도와준 은인에게 꼬치꼬치 비밀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수호를 바라보았다.
“갠챠나?”
봄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봄아.”
봄이는 그 말에 기쁜 듯이 환하게 웃었다.
“웅!”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변에 말해봤자 정신 나간 소리 취급을 받을 것이다.
“젤리 사줄까? 아, 아빠한테 물어봐야지.”
“아쁘아 졔리 죠아해!”
“……그래?”
이수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봄이는 지난번에 젤리를 너무 많이 먹어 금지당했던 것을 애써 모른척했다.
“선배, 봄이랑 같이 슈퍼 좀 다녀오려 하는데 괜찮을까요? 뭐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어? 그래? 뭐 살 거 있어?”
“봄이 젤리 좀 사주려고요.”
젤리라는 말에 우빈이 봄이를 쳐다보았지만, 봄이는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불었다.
‘수호도 구해줬고, 그 정도는 괜찮겠지.’
우빈이 알았다고 허락을 했다.
이수호는 얼른 슈퍼마켓으로 가서 봄이가 제일 좋아하는 젤리는 곰 모양의 알록달록한 젤리를 샀다.
봄이는 젤리를 맛있게 먹었다.
“선배, 저 이제 괜찮습니다. 저녁 장사는 같이 해요.”
“놀랐을 텐데 오늘은 가만히 있어. 정 마음에 걸리면 봄이나 돌봐줘.”
“……알겠습니다.”
저녁 장사가 끝난 뒤. 우빈은 이수호와 마주 보고 앉았다.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평소 이수호는 시끌벅적했기 때문에 이런 침묵이 많이 어색했다.
정적을 먼저 깬 건 우빈이었다.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게요. 제가 부주의했습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우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니까 나사가 헐거워졌더라고. 제조사에 전화는 해놓았어. 혹시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으니까.”
“그, 사장님은 말입니다.”
잠시 망설이던 이수호가 입을 열었다.
“마법사이신 거죠?!”
물을 마시던 우빈이 사레가 들렷다.
“뭐, 뭐라고?”
“저, 육수통이 공중으로 뜬 걸 봤습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왜 혼자 일하시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런 사정이 있으셨다니…….”
우빈이 입을 벙긋거렸다.
“혼자 공중으로 떴다고?”
분명 물의 정령 운디네들이 육수통을 들어올렸는데. 그 모습은 수호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오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착각하다니.
‘아니, 차라리 잘된 건가?’
우빈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괜히 봄이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을 오해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큼, 어쩔 수 없지.”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우빈이 입을 열었다.
거짓말에는 영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수호는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그랬군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절대, 절대 다른 곳에는 말하지 않을 거니까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수호가 거의 테이블에 머리를 박을 것처럼 고개를 조아렸다.
‘일단은, 이걸로 된 건가.’
우빈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