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3
집밥을 너무 잘함 43화
“오늘밥집이라고, 지하철 역 두 칸 정도인데…….”
“내일 가자.”
단호한 최수희의 말에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 가서 먹자고? 자기 힘들잖아.”
“여기서 먹고 싶어. 아니-”
최수희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치타처럼 눈을 빛냈다.
“여기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 * *
“고생하셨습니다!”
점심 장사가 끝난 이후.
우빈은 이수호와 봄이를 위해 간단히 먹을 식사를 만들기로 했다.
“오늘은 양식으로 만들어볼까 하는데, 괜찮아?”
“헉, 저야 너무 좋습니다!”
“뺘아아!”
우빈은 빵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오늘따라 장보는 길에 빵집 앞에 놓여있던 바게트가 눈에 들어왔다.
바게트와 함께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보니 이전 레스토랑에서 자주 만들던 음식이 떠올랐다.
“뭐를 만드시려고요?”
“양파수프를 만들까 하고.”
우빈은 혹시라도 봄이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요즘 봄이가 편식을 한단 말이지.’
원래도 음식을 가리는 편이기는 했는데, 요즘 들어 편식이 더 심해졌다. 다른 음식은 그렇다고 쳐도, 특히 우빈이 고민하는 건 양파였다.
은근슬쩍 양파만 골라서 접시에 남겨놓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봄이를 보고 그래도 조금만 더 먹어보라고 권했더니, 되려 양파에 대한 인상만 나빠진 것 같았다.
알레르기나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그냥 편식이라면 우빈은 맛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봄이는 치즈를 좋아하니까, 양파의 단맛을 끌어올리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먼저 양파를 채를 썰었다.
다음에는 캐러맬라이징을 할 차례. 삼십 분 넘게 양파를 볶아주면 양파가 흐물흐물해지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같이 양파를 채 썰던 이수호가 물었다.
“그런데 닭육수는 만드는 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맞아, 그렇기는 한데, 오늘은 간단하게 만들 거야.”
원래는 이수호의 말대로 부케가르니와 클로브를 넣어 닭육수를 만드는 게 정석이지만.
“이걸로.”
우빈이 꺼낸 건 치킨스톡이었다. 허브와 치킨파우더, 그리고 치킨기름으로 만들어 낸 감칠맛을 내주는 인공조미료.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는 닭육수를 사용한 요리가 많다.
다만 문제는 닭육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나 넘게 닭을 끓여야 한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이라면 모를까, 가정집에서 매번 요리할 때마다 몇 시간씩이나 불 앞에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자연스레 치킨스톡의 인기가 많아졌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지, 만드는 방법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짧은 브레이크타임에 먹기 위해서는 보다 간단한 공정이 필요했다.
다음 휴무일에는 느긋하게 치킨스톡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우빈은 다른 냄비에 물과 함께 치킨스톡을 넣었다.
양파가 볶아지던 팬에는 레드와인을 세 큰술 정도 넣어 볶아주었다. 이렇게 하면 알코올은 휘발되고 레드와인의 향만 남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볶은 양파를 그릇에 넣어주고, 육수를 담았다.
그리고 위에 바게트를 조각내어서 그릇에 살짝 튀어나오게끔 얹어주고, 마지막으로는 모짜렐라 치즈를 듬뿍 얹어주었다.
“와, 벌써 맛있어 보입니다!”
“그래?”
“네, 엄청요! 빨리 먹고 싶을 정도로요.”
이수호는 자신이 특별히 식탐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밥집에서 일하고 나면서부터는 모든 음식이 정말 맛있어 보였다.
오븐에다가 그릇 세 개를 넣어주고는 십 분 정도 구워주었다.
치즈 끝부분이 잘 익어서 갈색으로 노르스름하게 변해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위에 파슬리를 살짝 뿌려주니 색감도 좋았다.
“잘 먹겠습니다!”
“뺘아아!”
“봄아, 먹기 전에 하나 말해줄 게 있는데. 이건 양파로 만든 거야.”
양파라는 말에 순간 봄이의 몸이 움찔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려고 하던 순간, 노릇하게 잘 익은 치즈 냄새가 솔솔 올라왔다.
“…….”
봄이는 갈팡질팡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아빠는 봄이가 양파도 맛있게 먹어줬으면 해서. 되도록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괜찮으면 한입 먹어봐 줄래? 만약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음식으로 만들어줄게.”
우빈의 말에 결국 봄이가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에 들어가지 않은 부분의 바게트 끝부분은 바삭했고, 아래쪽은 양파수프를 빨아들여 촉촉했다.
양파 건더기와 수프를 같이 숟가락으로 한입 크게 떠먹었다.
캐러맬라이징으로 한껏 단맛을 끌어올린 양파가 입에 들어오자, 봄이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마시써! 양퍄? 징쨔?”
“응, 진짜 양파. 어때, 마음에 들어?”
끄덕끄덕.
치즈가 잔뜩 녹아 짭짤한 맛과 양파의 달달한 맛이 더해지니 봄이의 숟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수호는 빵을 부드럽게 으깨서는 양파수프와 함께 먹었다.
“놀랐습니다. 치킨스톡으로 해도 이렇게 맛이 제대로 나네요.”
“닭육수로 만들면 맛이 더 섬세해지기는 하니까, 나중에 한번 연습해 봐. 주방을 써도 되니까.”
우빈의 말에 이수호가 감동받은 듯 말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
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빈 그릇을 양손으로 가지고 왔다.
“다 먹었어? 더 줄까?”
“녜!”
결국 세 그릇 정도를 알차게 먹고 난 다음에, 봄이의 배가 빵빵해졌다.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마니 머거서?”
자신의 배를 통통거리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미소지었다.
* * *
“덥긴 덥네.”
“많이 힘들지.”
신형석이 옆에서 손선풍기 바람을 아내에게 쏘여주고 있었다.
“자기가 더 힘들지. 나 괜찮으니까 자기 바람 쐐.”
최수희는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며칠 만에 집 밖으로 나오는 것만 같았다.
배가 불러오다 보니 서있기도 앉아있기도 힘들었던 탓에 계속 누워만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선한 바람을 몸으로 맞으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강렬한 태양 빛에 덥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은 오히려 좋았다.
“여기가 자기가 말한 가게야?”
아내의 눈은 설렘으로 반짝였다.
둘은 그렇게 오늘밥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테이블에 겨우 앉았다.
“어서 오세요, 두 분…… 아! 어제 오신 분 맞으시죠? 오늘은 아내분까지 같이 오셨나봐요.”
“네. 묵사발이 어찌나 맛있는지. 다른 음식도 궁금해서 같이 와 봤어요.”
“그러셨군요. 입맛에 맞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은 그럼 같은 묵사발로 드릴까요?”
“차가운 음식이면 뭐든 좋기는 해요.”
우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구마 맛탕 대신 묵사발이 입에 더 맞았다면, 역시 새콤한 쪽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던 우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침 재료도 있고.’
“그럼, 얼른 준비해서 나오겠습니다.”
잠시 우빈이 고민에 빠져있었을 때 즈음이었다.
그때 봄이가 최수희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봄이는 최수희의 부른 배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니 머거써?”
“보, 봄아!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우빈이 황급히 봄이를 최수희에게서 떼내었다.
봄이의 말을 듣고는 최수희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뇨, 괜찮아요. 아이가 한 말인데요, 뭐. 여기 아기가 있어서 그래. 한 번 쓰다듬어 볼래?”
“아기?”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봄이가 배에 손을 가져다대자, 퉁! 하고 배가 울렸다.
그 감촉에 봄이가 화들짝 놀라서 최수희의 배로부터 떨어졌다.
“미앙!”
봄이는 혹시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나 싶어서 순식간에 표정이 얼었다. 그런 봄이를 보고는 최수희가 빙그레 웃었다.
“아기가 안녕, 하고 인사하는 거야. 이 친구 이름은 둥둥이라고 해. 둥둥아, 언니가 반갑지?”
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야, 계란 좀 삶아줄래?”
“넵, 알겠습니다!”
한편, 부엌에서 우빈은 그사이에 오이채를 썰고는 동시에 물에 소면을 삶았다.
소면에는 전분기를 깨끗이 없애주어야 끈적거림이 남지 않는다. 우빈은 얼음이 든 찬물로 소면을 깨끗하게 헹구었다.
열무김치국물과 냉면 육수를 섞은 후에, 소면을 넣었다.
그리고 채 썬 오이를 위에 장식하고, 수호가 삶아온 계란 완숙을 반으로 갈라서 얹어놓고, 마지막으로 통깨로 장식했다.
얼음도 동동 띄워서 내놓자, 아주 시원스러워 보이는 열무김치말이 국수가 완성되었다.
“열무김치말이 국수 나왔습니다.”
삶은 소면은 얼음과 같이 찬물에 빠르게 헹궈주어서 온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으음! 이거예요, 이거! 정말 시원하네요.”
아삭하면서도 새콤한 열무김치. 같이 있는 동치미 육수는 한여름의 더위를 모두 날려줄 만큼 시원했다.
안 그래도 최수희는 면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둥둥이가 찾아오기 이전에는 종종 집에서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뜨거운 불 앞에 서 있기가 조금 불편하다 보니 요즘에는 먹지 않았다.
‘오랜만에 면을 먹으니까 더 맛있네.’
최수희가 소면을 호록거리며 삼켰다.
무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육수에 얼음까지 동동 떠 있으니 계속 시원함만 남았다.
후루룩. 빠르게 소면을 들이키는 아내를 보고는 남편은 그저 마음이 벅차올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얼마 만에 저렇게 아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지.
먹지 않다 보니 기운이 없고, 그러다 보니 또 누워있고. 활동이 없다 보니 안 그래도 없는 식욕이 돋지 않았다.
그랬던 아내의 입맛을 묵사발, 그리고 열무김치말이국수가 시원하게 바꿔 버렸다.
“진짜, 새콤하고 너무 좋아요! 도대체 얼마 만에 위장에 이렇게 음식을 넣는지. 사장님 정말 최고예요, 최고!”
최수희가 계속해서 감탄사를 흘렸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식욕을 잃어본 적이 없던 최수희였다. 아무리 그런 그녀여도 입덧 앞에서는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정말이지, 냄새만 맡아도 그 맛이 상상되면서 니글거리더니 어찌나 속이 안 좋던지. 진짜 레몬맛 사탕 아니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니까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흔들리는 배에 타는 듯이 멀미만 나니 도저히 음식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 아내에게 우빈이 만든 김치말이국수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목마른 여행자에게 나타난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게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우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포장도 해드릴게요. 가게에서 먹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면은 조금 불겠지만, 그래도 소면이랑 육수랑 별도로 담으면 드실 만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열무김치말이국수를 잔뜩 포장해서 돌아가는 신형석과 최수희. 그리고 그런 둘을 보면서 봄이가 꼬물거리며 최수희에게 다가왔다.
“앙녕.”
둥둥이에게 인사하는 봄이를 보고 최수희가 빙그레 웃었다.
“다음에 둥둥이가 태어나면 같이 놀아줄래?”
최수희의 말에 봄이의 입꼬리가 한없이 올라갔다. 봄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웅!”
아직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어쩐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 *
가게 밖을 나서자 시장에서는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과일이 한 움큼씩 담겨 있었다.
“참외 하나 사갈까? 자기 참외 좋아하잖아.”
아내의 말에 남편이 얼른 참외를 들었다.
“그러게. 한번 입맛이 트이니까 다 맛있어 보이네. 이게 다 자기 덕분이야! 자기가 좋은 음식점을 알아봐 줘서.”
아내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아내의 웃는 얼굴도 오랜만이어서, 신형석은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덕분은 무슨. 자기가 더 고생하는데. 우리, 둥둥이 잘 키우자.”
“응, 그래.”
아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배로 가져다 댔다.
쿵, 쿵.
배 속에 있는 둥둥이도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인지 잔뜩 신이 난 것 같았다.
“집에 가서 바로 깎아줄게. 자기 이것저것 먹고 싶을까 봐 자두도 샀어.”
신형석은 잔뜩 신이 나서 양손에 과일을 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 먹지도 못할 과일을 왜 이렇게 많이 사냐고 살짝 한소리 했을지도 모르지만.
“여보.”
최수희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