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4
집밥을 너무 잘함 44화
처음 연애할 때처럼 멋있는 정장 차림도 아니고, 왁스로 머리 손질을 멋지게 올린 모습도 아니지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같이 와준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듬직하고 멋져 보였다.
“여보.”
“응?”
“고마워. 역시 자기밖에 없어.”
최수희가 신형석의 볼에 뽀뽀했다.
나중에 아이가 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그때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이 가게에 들를 것이다.
셋이서 사이좋게 열무김치말이국수를 먹는 날이 얼른 찾아오기를 최수희는 바랐다.
* * *
“어라? 사장님, 이거 손님들이 놓고 가셨나 봐요.”
“뭔데?”
점심 장사가 끝난 후.
테이블을 정리하던 이수호가 가져온 것은 한 동화책이었다.
그림도 있고, 적당히 커다란 글씨로 아기자기한 내용이 적힌 동화책이었다.
봄이가 동화책에 관심을 보이더니, 가져가서는 한참을 유심히 동화책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책을 한 권 사줘야겠네.”
이렇게 동화책에 크게 관심을 보이는 봄이를 보니, 우빈도 아무래도 봄이에게 책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말문도 트이는 참이겠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봄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어? 저희 집에 책 많습니다! 조카가 예전에는 많이 읽었는데, 초등학교에 가게 돼서는 동화책은 별로 안 읽는다 해서요. 혹시 필요하시면 조금 가져다드릴 수 있는데요.”
“정말? 나야 좋지. 그러면 부탁해도 될까?”
“당연하죠!”
이수호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빈은 레시피를 가르쳐 주는 것에도 큰 거리낌이 없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노하우를 이수호에게 차근차근히 잘 알려주었다.
열심히 가게일에 정진하는 것 말고도 다르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을 것 같았다.
이수호는 씩씩하게 말했다.
“넵!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괜찮아. 나중에 수호 네가 시간될 때 가져와, 시간될 때.”
그리고 다음 날. 이수호는 무려 세 박스나 되는 동화책을 가져왔다.
“와아, 이렇게 많이? 고마워, 수호야.”
“에이, 고맙기는요! 누나가 어차피 다 정리할 책이었다고 해서요. 너무 헤진 책은 다 정리하고, 깨끗한 걸로만 추려왔습니다.”
“뭐 맛있는 것 좀 해서 드려야겠는데? 누나 분께 다음에 식사하실 일 있으면 이쪽으로 오시라 그래.”
“앗, 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럼 바로 누나한테 전하겠습니다.”
이수호는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저녁장사가 끝나고 이수호도 퇴근했을 무렵.
우빈은 동화책 하나를 꺼내서 봄이에게 건네주려다 손을 멈칫했다.
‘아, 아니지. 여기서는 책을 읽어줘야 하는 건가?’
책을 펼치는 우빈의 곁으로 봄이가 꼬물꼬물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 특유의 달콤한 향이 스쳤다.
“옛날옛날에.”
동화책은 한 소년이 숲속에 있는 곰 가족이 사는 집에 잘못해서 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소년은 길을 잃었고, 곰 할머니가 만든 달콤한 빵 냄새에 이끌려 집안으로 발을 디딘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빵 냄새다! 그렇게,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집안으로 들어가 빵을 먹어버렸답니다.”
‘……무전취식 아닌가?’
생각보다 동화책은 교육에 좋지 않은 듯했다.
우빈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 하던 참이었다.
“빠앙.”
봄이가 소년이 먹고 있는 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눈빛이 반짝반짝하는 게,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아삭거리는 아몬드와 달콤한 설탕이 가득한 빵.
우빈이 알기로 이 근처에 있는 빵집에 아몬드가 들어간 롤은 없었다.
“으음. 먹고 싶어?”
“녜!”
전문분야는 아니더라도 아주 기초적인 제빵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눈빛을 반짝거리는 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더 컸다.
우빈이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아, 네, 네. 발효를 거기서 한 번 더 하라고요. 알겠어요, 선배. 다음에 가게 한 번 놀러오시면 제가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뚝.
학교다닐 때 제빵으로 이름을 날리던 선배였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연락처가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은 호텔 패스트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몬드롤을 어떻게 만드냐는 우빈의 질문에 아주 친절하게 답을 해주었다.
덕분에 조금 긴가민가했던 레시피를 우빈이 수정해 나갔다.
“녜, 녜.”
봄이가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드는 시늉을 하면서 우빈을 따라했다.
“요 녀석!”
우빈이 간지럽히려고 하자 봄이는 까르르 웃으며 도망갔다.
강력분과 드라이 이스트와 설탕.
베이킹에는 무엇보다 계량이 중요하다. 단 1g만 차이가 나더라도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빈은 오랜만에 저울을 꺼내서 신중히 무게를 재 나갔다.
‘대강, 한 꼬집, 적당히. 한식에서는 조금 여유로움이 있는데 말이야.’
물론 도대체 한 꼬집이 뭐냐며, 초보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하지만. 우빈은 그런 한식이 무언가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봄이가 먹고 싶다는데.
봄이를 위해서라면 그런 제빵의 엄격함 정도야 칼같이 지켜줄 마음으로 듬뿍했다.
그리고 우유와 생크림까지 섞어 우빈이 빵 반죽을 만들었다.
한번 발효를 한 다음에, 버터를 펴발랐다.
다음으로는 흑설탕과 황설탕, 시나몬 파우더와 아몬드를 위에 올리고는 반죽을 돌돌 말아서 감쌌다.
‘먼저 영점을 맞추고, 그다음에 유산지 무게 2g을 재주고.’
여기까지는 그나마 할 만했는데, 문제는 시나몬 파우더였다.
“잘 안 되네.”
저울의 숫자가 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시나몬 파우더의 입자가 작다보니 저울이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0.1g이나 0.01g 단위의 저울이라면 상관없지만, 우빈의 저울은 1g 단위로 되어있었다.
우빈은 조심스레 저울 위에 시나몬 파우더를 뿌리고는 아까 선배가 가르쳐 준 대로 그릇을 톡톡 쳤다. 그러자, 저울이 움직였다.
‘됐다, 됐어!’
정확히 1g.
제빵사들은 항상 이런 기분으로 일을 하는 걸까? 우빈은 다시 한번 백반집을 열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발효를 하기 시작했다.
오븐에 굽기 이전에 계란물을 붓으로 빵 위에 발랐다. 이렇게 하면 색이 더 노르스름하면서 예쁜 색으로 변한다.
이윽고 갓 구운 빵 냄새가 가게 내에 물씬 풍겼다.
“빠앙!”
봄이가 냄새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부드럽게 결이 찢어지는 빵. 안쪽은 촉촉하면서도, 달콤한 설탕과 고소한 버터, 그리고 시나몬 향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빠앙. 마시따.”
활짝 웃는 봄이를 보니, 아까 계량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은 싹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가게가 빵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우빈은 환기를 위해 가게 문을 조금 열어놓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저기, 빵, 혹시 파시는 거예요?”
“어…… 저희끼리 먹던 거긴 한데, 괜찮으시면 하나 드릴까요?”
길을 잃은 소년이 곰 가족 집에 들어갔듯이.
고소한 아몬드롤 냄새에 이끌려 온 한 사람이 가게로 찾아왔다.
바로 서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회사원이었다.
* * *
“서하나 씨.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해요? 여기가 아직도 학교로 보여요? 여기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이에요. 정신 똑바로 차려요.”
“저, 그런데 대리님. 어제 말씀해 주신 대로 했는데요. 결재는 이쪽으로 올리면 된다고 하셔서…….”
황 대리가 눈썹을 치켜들어 올렸다.
“지금 설마 제 탓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내가 똑바로 안 가르쳐 줬다고? 어제 노트에 열심히 적었던 거 아니었어요? 이따가 다시 한 번 봐봐요. 내가 뭐라고 말했나.”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하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황 대리는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참나, 머리는 어디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
회사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안 된 신입사원이었다. 그런데도 같은 팀원들은 서하나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서하나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 진짜 짜증나 죽겠어.”
“왜, 뭔데, 뭔데?”
“몰라. 이번에 들어온 신입 완전 마음에 안 들어.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하나도.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건지 모르겠어. 게다가 아까는 나한테 말대꾸까지 하더라니까? 가르쳐 준 대로 했다, 이러면서. 그러면서 나를 째려보는데 표정이 얼마나 살벌한지. 무서워서 살겠어, 어디?”
“대박. 요즘 신입들 장난 아니다. 야, 그래도 너희가 나아. 우리 신입은 어땠는 줄 알아? 오늘…….”
그렇게 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밖에서 키득거리며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함께 서하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쿵거렸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밥을 먹자고 권해오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서하나도 용기를 내어 물어봤지만, 다들 약속이 있다며 거절하기에 점점 묻는 것도 어려워졌다.
편의점에서 사온 빵을 들고는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회사에는 휴게실이 없었고, 대충 비상계단에 쪼그려 앉아 빵 쪼가리를 하나 입에 물었다.
꾸역꾸역 급하게 먹다 보니 빵이 자주 얹혀서 체하기도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서하나가 방금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노트를 다시 살펴보았지만 역시 가르쳐 준 대로 했을 뿐이다.
‘틀렸으면 다시 말해주면 되잖아. 꼭 그렇게, 있는 대로 짜증을 내야 하냐고…… 사람 무안하게.’
서하나가 툭 하고 고개를 벽에 기댔다.
빵은 반쯤 남아있었지만, 더 먹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창가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살고 있는 까치인 듯했다.
‘꼭 일어나야 하나?’
서하나가 이불을 들어 올려서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
깔깔거리는 웃음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이불 안에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다. 나가기 무서웠다.
서하나는 결국 연차를 쓰기로 결심했다.
핸드폰을 들어 연락하려는데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 서하나입니다. 오늘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네. 죄송합니다…….”
달칵. 전화가 끝나자 서하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겨우 하루를 쉬게 될 뿐이지만 기분이 조금 남아졌다.
서하나는 요즘 너튜브를 보았지만, 사람 목소리가 들려오는 채널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사람 목소리보다는 말 못하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좋았다.
‘그래도 밥 먹어야지.’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렇게 혼자 굶고 있는 것조차 죄송스러웠다.
서하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오후까지 늦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배가 고팠다. 그렇지만 집에는 컵라면밖에 없었다.
거의 이틀 동안 들어온 음식이 없다시피 한 서하나의 위는 거세게 항의를 했고, 결국 뭐라도 먹으려고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에, 발견한 것이 오늘밥집이었다.
빵집도 아닌 백반집에서 고소한 빵 냄새가 나기에,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저히 갓 구운 빵 냄새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제대로 먹지 못해 배도 고프던 참이었다.
그렇게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지. 진짜, 인생에서 먹었던 빵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촉촉하면서도 바삭바삭한 식감의 아몬드가 들어있는 아몬드롤은 마치 부드럽게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 * *
말없이 먹는 모습에, 별로 입맛에 맞지 않는 건가 우빈이 걱정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서하나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맛있다.’
사실 요즘 들어 크게 입맛이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쳤어, 미쳤어. 남의 가게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람.’
휴지로 얼른 눈가를 닦아냈다. 그나마 다른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거, 포장할게요.”
빵을 포장하고 급하게 나가려는 서하나를 우빈이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