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5
집밥을 너무 잘함 45화
“괜찮습니다. 저는 잠깐 위에 볼일이 있어서요. 편하게 드시다 가세요.”
우빈은 손수건 하나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놓고는 봄이와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 서하나가 들어온 이후로, 가게 문은 닫았기 때문에 누군가 또 가게로 들어올 사람은 없었다.
가게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서하나는 훌쩍이면서 빵을 먹었다.
“맛있다…….”
괜히 빵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우빈은 다시 일층으로 내려왔다. 서하나도 아까보다는 훨씬 더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괜찮아요?”
서하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데, 사실은 괜찮지가 않았으니까.
* * *
원래 서하나는 쭉 본가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번에 취업이 되어서 서울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사투리가 심해서, 고치기도 하고요…….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겠어요. 알려주기라도 하면 바꿔보려고 노력이라도 할 텐데, 전부 다 싫다고 하니까요.”
서하나가 코를 휑하고 풀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서하나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저는 회사생활이 잘 안 맞는 사람일까요? 제가…… 전부 잘못한 걸까요.”
힘없이 앉아있는 서하나.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지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식당 사장한테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까 싶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어디든 조직 생활은 쉽지 않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우빈이 갓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만 해도 상하관계가 아주 엄격했다.
성질 나쁜 선배의 심기를 거스르는 날에는 주방이 꽤나 서늘해지는 날들은 있었다.
‘하지만…….’
“하나 씨.”
잠자코 듣고 있던 우빈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면 내일 가게에 다시 찾아와 주시겠어요?”
우빈의 말에 서하나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야근이…… 없으면요.”
* * *
‘어떤 음식을 만들지?’
일단 울고 있는 서하나를 달래야겠다 싶어 우빈이 얼떨결에 말을 걸었지만. 무슨 음식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건넨 것은 아니었다.
“아브아.”
그때 품에 안겨드는 봄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는데 따뜻한 봄이가 있어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고향 음식을 만들어 볼까?’
원래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음식이 그리워지는 법이었다.
우빈은 그런 서하나를 위해 만들어줄 음식을 생각했다.
봄이와 함께 장을 보러갔는데, 봄이가 무 하나를 집어들었다.
“모야?”
“이건 무우라는 거야.”
“무우.”
봄이는 자신의 팔뚝보다 훨씬 커다란 무가 마음에 드는지 꽉 껴안고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런 봄이를 보면서 우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음식이 있었다.
‘그래, 그게 있었지.’
그리고 다음 날 저녁.
혹시라도 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서하나가 조심조심 가게로 들어왔다.
‘일단 오라고 해서 오기는 했는데.’
서하나가 머뭇거렸다.
“아, 오셨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빙그레 미소 짓는 우빈을 보고는 서하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우빈이 서하나를 위해 준비한 음식은 소고기뭇국이었다.
평소에 우빈이 만드는 소고기뭇국은 맑은 느낌의 스타일.
하지만 경상도 식의 얼큰한 소고기뭇국은 육개장에 가깝게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여 얼큰한 느낌을 주어야 했다.
대파를 3cm 정도의 크기로 잘라주고, 국물을 시원하게 해줄 무를 나박하게 썰었다.
팬에 국거리용 소고기와 대파를 넣어 볶았다. 그다음에는 무를 넣어 볶아주었다.
“매운 거 얼마나 잘 드세요?”
“……꽤 잘 먹는 편이에요.”
꽤 잘 먹는 편이라.
우빈은 고춧가루 두 큰술을 넣어서 볶아주었다.
이후에는 물과 느타리버섯을 넣어 끓여주고, 액젓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을 넣어 마무리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서 서하나는 익숙한 냄새라는 걸 알아차렸다.
“얼큰 소고기뭇국 나왔습니다.”
“아…….”
소고기뭇국.
그리고 그 안에는 고기가 듬뿍 들어있었다.
고향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고추가루와 콩나물이 가득 들어있는 얼큰한 소고기뭇국이었다.
투명해진 무가 국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새빨갛다 못해 시뻘겋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매콤해 ㄹ보이는 국물이었다.
서하나가 조심스레 국물을 떠먹어보았다.
‘맛있다.’
칼칼하면서도 얼큰한 국물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특히 무가 많이 들은 만큼 시원한 맛을 자아내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밥은 거의 입에 대지 못했는데, 국물 한 모금을 떠먹으니 어쩐지 밥이 먹고 싶어졌다.
쌀밥과 적당히 잘 익힌 부드러운 소고기. 그리고 아삭아삭한 식감의 콩나물까지.
서하나는 결국 밥 한 공기를 모두 싹싹 해치웠다.
오랜만에 배가 불렀다.
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분 좋은 배부름이었다.
그때 우빈이 서하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말했다.
“잘못한 거 없어요. 그러니까 많이 먹고, 기운내요. 모자라면 더 드리겠습니다.”
서하나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사장님.”
서하나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정말 힘들게 취업했어요. 저런 사람들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요.”
여전히 울먹거리고 있었지만 서하나의 목소리는 당찼다.
“저, 잘 싸우고 올게요.”
우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지금도 잘 싸우고 있었어요, 하나 씨. 힘내요, 응원할게요.”
서하나는 우빈의 응원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여름날의 저녁 공기가 느껴졌다. 후덥지근하면서도 조금은 바람이 불어 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 서하나의 휴대전화로부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 하나, 밥 먹었나?
서하나의 엄마였다.
그저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는 것일 뿐인데.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또다시 감정이 벅차올랐다.
서하나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먹었어. 엄청…… 맛있는 음식으로.”
– 맛있는 음식? 뭐를 먹었길래 우리 하나가 이렇게 신났나?
“그게 있잖아…….”
서하나는 오랜만에 그녀다운 모습으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서하나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생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가게에 찾아왔다.
얼른이라도 말하고 싶은지 입은 근질거렸다.
“사장님! 저…… 저, 말했어요!”
어김없이 선배는 서하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말 한마디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을 서하나였지만, 오늘은 당당히 선배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래서, 업무 이야기는 받아들이겠지만, 적어도 인신공격은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어요! 얼굴색이 엄청 바뀌어서는, 이러다 뺨이라도 한 대 맞는 거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얌전히 돌아가더라고요.”
“잘했습니다.”
약자를 공격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반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더욱 공격은 심해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단 한 방의 펀치였다.
아무리 작은 주먹이라 할지라도, 한 번의 공격만으로 사람은 또다시 자신감을 찾아낼 수 있다.
서하나는 활짝 웃었다.
“뭐, 뒤에서 꿍시렁거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이전에도 그랬던 거였으니까요. 헤헤.”
그런 서하나에게 축하의 의미로 우빈이 물었다.
“어떻게, 오늘도 소고기뭇국으로 드릴까요?”
“네! 너무 맛있어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 있다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는 너무 자주 밥상에 나와서 지겹다고 생각한 음식이었는데.
타지로 나오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큼 맛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맛은 우빈의 세심함이 더해져서인 것 같다고 서하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하나 더 준비한 게 있습니다.”
우빈이 새하얀 쌀밥과 함께 반찬을 건넸다.
그리고 그 반찬을 본 서하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콩잎 반찬. 언뜻 보기에는 노란 나뭇잎처럼 보이는 반찬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던 지역이 아니면 먹지 않는 반찬이었기에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서비스로 드릴게요. 저도 먹어본 적은 있는데, 만들어본 건 처음이라서요.”
“이거, 손도 많이 갔을 텐데…….”
서하나가 중얼거렸다.
만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어떻게 만드는지는 부모님 곁에서 본 적 있었다.
서하나가 젓가락으로 콩잎을 하나 쌀밥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김을 싸먹듯이, 콩잎으로 쌀밥을 가득 담았다.
살짝 짭조름한 액젓의 맛과 함께, 씹을수록 콩잎 특유의 고소함이 퍼졌다.
서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진짜 맛있어요. 정말로 집에서 먹던 느낌이에요. 설마, 서울에서 콩잎 반찬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서하나가 콩잎을 보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사장님!”
씩 웃는 서하나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도 절로 기분이 좋아질 만큼, 환한 미소였다.
* * *
오므라이스.
폭신폭신하고 촉촉한 계란도 좋지만, 우빈이 좋아하는 건 의외로 계란을 프라이팬에 바싹하게 익혀먹는 오므라이스였다.
우선은 양파를 잘게 썰었다. 그다음에는 햄을 잘게 잘라서 볶아주었다. 다음으로는 밥과 케첩을 넣어주어 주걱으로 뒤적였다.
이렇게 만든 볶음밥은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두고, 계란옷을 아까 만들어둔 볶음밥으로 감쌌다.
다음에는 케첩을 뿌릴 차례.
우빈은 열심히 봄이가 좋아하는 로봇 만화 캐릭터를 케첩으로 그렸다.
다 그리고 나니, 모양은 나쁘지 않았는데 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우빈은 결국 그 오므라이스는 자신이 먹기로 하고, 봄이에게는 케첩과 돈가스소스를 사선으로 그어주고, 위에 파슬리를 뿌려 장식했다.
“봄아, 밥 먹자.”
“웅!”
역시 오므라이스에는 케첩이 가장 잘 어울린다. 양파와 당근을 잘게 썰어넣고, 케첩으로 간을 한 볶음밥이다 보니 오므라이스 위에 있는 케첩이랑 맛의 하모니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는데, 한 장난감 광고가 나왔다.
-꼬꼬꼬, 꼬마 공룡!
“……봄아?”
봄이는 숟가락을 한 손에 든 채로 멍하니 텔레비전 속 장난감을 보고 있었다.
-꼬마 공룡은, 꼬마 공주님으로 변신!
‘공룡에다 공주라니. 그냥 인기 있는 두 가지를 덧붙이면 될 줄 알았나?’
다소 회의적인 시선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는 우빈. 그렇게 밥을 떠먹으려는데, 봄이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봄이는 거의 텔레비전에 빨려들어갈 듯이 화면을 쳐다보고 있어야지.
‘……마음에 드는 건가?’
“봄아, 밥 먹어야지.”
봄이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다시 자리에 똑바로 앉아서는 활짝 웃었다.
시장 근처에 있는 큰 문방구가 있었다. 그곳에 가보면 공룡이 있을까 하고 우빈은 내일 문방구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 * *
“어쩌죠, 프린세스 티라노는 다 팔렸는데……. 요즘 인기거든요. 들어오려면 이 주 정도는 훨씬 넘게 걸릴 거예요.”
장난감 가게 주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우빈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쩔 수 없죠. 혹시 예약은 걸어놓을 수 있나요?”
“할 수는 있는데 앞에 대기가 이렇게 있어서요.”
주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종이를 보여주었는데, 어마어마하게 긴 목록이 있었다. 이름을 써놓기는 했는데 자신의 순번까지 돌아오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았다.
그나마 봄이를 가게에 같이 데려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게 그렇게 인기입니까?”
“제가 여기서 가게를 이십 년 넘게 해왔는데, 이건 센세이션이에요, 센세이션. 어쩜, 공룡과 공주를 합치다니!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우빈은 힘없이 장난감 가게에서 나왔다.
‘으음.’
그렇게 가게에서 나오던 우빈은 정씨 할머니와 마주쳤다. 우빈은 반갑게 인사했다.
“점심은 드셨어요?”
“아직, 안 그래도 지금 먹으려 가는 중이야.”
김씨 할머니와 정씨 할머니는 서로 바로 옆에서 가게를 하기 때문에, 늘 같이 식사를 했다.
“잘됐다, 그럼 제가 반찬 하나 가져다드릴게요.”
잠시 후.
우빈은 봄이와 함께 콩잎 장아찌를 들고 김씨 할머니 떡집으로 갔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잘 먹을게. 옛날 생각나네.”
김씨 할머니는 잠시 콩잎 장아찌를 좋아하던 자신의 남편이 생각나서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김씨 할머니를 보던 정씨 할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