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7
집밥을 너무 잘함 47화
“말은 고맙지만, 아니, 원래 생각하고 있던 메뉴가 있을 거 아니야. 강 사장 아니면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살려준 것만으로 너무 감사한데…….”
말을 흐리는 박길복을 보며 우빈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원래 다른 걸 팔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그리고 저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손해 볼 장사는 하지 않을 겁니다.”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사장님이 사오신 그 고기, 제가 야시장에서 다 소진시키겠습니다.”
* * *
“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육점 사장님은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사정을 들은 이수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행히 목에 걸린 이물질은 제거했는데 아직 몸이 좀 좋지 않으셔서 병원에 며칠 더 계셔야 하나 봐.”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저 많은 고기를 다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수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냉장고 안의 고기를 힐끗거렸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돼지고기 30킬로그램. 냉장고에 옮기자 냉장고가 터질듯이 꽉 찼다.
‘일단 조금 구워볼까.’
우선 우빈이 후보로 꼽은 것은 돼지고기 목살 스테이크와 돼지고기 볶음밥이었다.
그중에서 목살 스테이크를 먼저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달군 프라이팬에 비계를 올렸다. 집게로 비계를 프라이팬 구석구석 돌렸고, 곧 비계가 녹아 기름이 프라이팬에 흥건해졌다.
목살을 넣자 치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살이 빠르게 익었다.
“뺘아.”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 굽는 냄새가 나자 봄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수호야, 봄이랑 잠깐 앉아있을래?”
“넵, 알겠습니다! 봄이야, 가자.”
“우웅…….”
봄이는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이수호와 함께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고기가 익자 조금 잘라 우빈이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하나도 없는 깔끔한 맛에서 신선하고 좋은 고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맛있다.’
미래정육점에서 취급하는 고기인 만큼 최상의 맛을 자랑했다.
‘고기 자체는 남부러울 것 없어. 그럼 소스랑 계란 반숙이랑 같이 넣어볼까.’
우빈은 곧장 스테이크 소스와 새송이 버섯, 그리고 버터를 넣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 그릇에다가 구운 돼지고기를 먼저 놓고, 그 위에 소스를 부은 다음에 계란후라이를 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새싹 채소로 완성.’
푸릇한 색감의 새싹 채소까지 넣어주자 제법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자, 하나씩 먹어보자.”
각자의 앞에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긴 목살 스테이크가 하나씩 놓였다. 봄이용으로는 목살 스테이크의 양은 절반, 계란 반숙 후라이는 통째로 하나가 올려졌다.
우물우물.
잠시 말없이 평가 시간이 이루어졌다.
‘괜찮긴 한데…….’
흐르던 적막을 깬 건 이수호였다.
“스테이크라 해서 소인 줄 알았는데. 돼지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도 또 다른 매력이 있네요? 맛있습니다.”
“야시장에서 파는 것도 같이 고려해야 해. 어때, 수호 너라면 사먹을 것 같아? ……천천히 먹어, 천천히.”
이수호가 잔뜩 스테이크를 넣어 빵빵한 볼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그렇게 오래 고기를 씹던 이수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맛있긴 한데요.”
“응. 개선할 게 있으면 주저 없이 말해줘. 그게 더 나한테 도움이 되니까.”
망설이는 듯한 이수호를 보고 우빈이 말했다.
“계속 먹으면 조금 느끼할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많이 먹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충분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야시장에서 먹는 음식은 단순히 맛있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럼 김치나 밥을 같이 내놓아서 밸런스를 잡는 건 어떻습니까?”
“만약 이 목살 스테이크를 평소처럼 식당에서 내놓을 거라면 정말 좋은 생각이지만. 너무 한 끼 식사처럼 나오면 부담스러워할지도 몰라서.”
“그건 그렇겠네요.”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손님들이었다.
보통 야시장을 찾는 이유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함께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싶어서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여러 가지’.
요리 대회도 아니고, 다른 가게들이랑 경쟁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한 식당에만 들어가서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조금씩 먹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너무 배부르지 않게, 적당히 다른 음식과 어우러질 필요 또한 있었다.
우빈이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아.”
철푸덕.
봄이가 포크로 집은 목살 스테이크가 물수제비처럼 봄이의 배를 툭 건드리고는 결국에 바닥에 떨어졌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고기를 주우려는 봄이를 우빈이 황급히 막았다.
“마시써!”
제지당한 봄이가 손가락으로 떨어진 고기를 가리켰지만 우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돼. 지지예요. 새로 줄게, 새로.”
‘게다가 아이들이 먹기에는 역시 좀 불편하고.’
잘게 자른다 해도 목살 스테이크는 길거리 음식으로는 조금 어려울 것 같았다.
더 먹기 손쉬운 음식이 없을까.
“생각보다 어렵네. 양이 너무 많지도 않으면서, 먹기 편하고, 느끼하지 않아야 하고.”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집에서 흔히 먹는 음식으로는 쉽게 눈길을 사로잡기 힘들다. 야시장에 가족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서 눈길을 끌 만한 특색 있는 메뉴가 필요했다.
“하,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맛있는 걸요! 저는 목살 스테이크로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살 스테이크를 질겅 씹던 봄이가 꿀꺽, 스테이크를 목으로 넘겼다.
“콜라 좀 가져올게.”
아무래도 스테이크만 먹기에는 조금 느끼했던 것 같다.
우빈이 주방으로 향했다.
얼음이 잔뜩 든 컵에 콜라를 넣고, 그 위에는 얼음과 콜라를 가져가려고 할 때였다.
그때, 봄이가 주방으로 걸어왔다.
“응? 뭐 필요한 거 있어, 봄아?”
“우웅.”
봄이가 손을 뻗어 선반 위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아, 이거. 자. 봄이가 뿌릴래?”
“녜!”
봄이가 활짝 웃으면서 우빈에게서 레몬 모양의 레몬주스를 받아들었다.
얼마전에 콜라에 상큼한 맛을 더해주기 위해서 레몬주스를 조금 뿌려준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잠깐. 레몬즙?’
레몬즙과 함께 어떤 생각이 우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거라면.’
길거리에서 먹기도 좋고, 밥 없이 먹어 고기의 느끼함에 질릴 일도 없을 것이다.
우빈은 기쁜 마음에 봄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봄아, 잘했어!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봄이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우빈이 봄이를 한껏 칭찬했다. 봄이는 레몬통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칭찬이 싫지 않은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아까와는 달리 우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생글 웃었다.
‘찾았다.’
* * *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늘청과의 주인 이상호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박길복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상호를 보자 박길복이 해맑게 손을 붕붕 흔들며 그를 맞이했다.
“아, 영감님.”
“으이그!”
생각보다는 멀쩡해 보이는 박길복을 보고 안심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그의 등을 퍽퍽 두드릴 뿐이었다.
“아! 왜 때려요? 안 그래도 아픈 사람한테.”
“나 같은 늙은이 손이 뭐가 아프다고! 나참, 그 나이가 되도록 꼭꼭 씹어먹을 줄도 몰라?”
타박하는 말투였지만 시선에는 여전히 걱정이 어려있었다.
덩치는 산만한 박길복이었지만, 그를 몇 십 년을 보아온 이상호에게는 거의 아들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박길복도 그걸 아는지라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도 괜찮을 줄 알았죠. 아무튼,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박길복의 부탁은 간단했다.
-돈은 제가 드릴 테니 강 사장한테 가서 고기 좀 사와 주시겠습니까? 최대한 많이요.
-고기를?
-아시잖아요. 그 고기를 혼자서 어떻게 다 처리하겠습니까. 아마 못 이긴 척 줄 거예요.
“목살 30킬로그램이라니.”
이상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젊은 사장이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 어, 사장님! 어쩐 일이세요?”
우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래정육점 바로 옆에 있는 하늘청과. 가끔씩 과일을 산 적은 있지만 이상호가 직접 오늘밥집에 찾아온 일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 사장한테 고기를 삼십 킬로그램이나 샀다며. 조금 나눠 파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왔지.”
“과일 주스만 해도 바쁘지 않으세요? 그리고 고기는 저도 부족할 것 같은데… 어쩌죠.”
“뭐? 30 킬로그램이 부족하다고?”
이게 아닌데.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말이 우빈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이상호가 화들짝 놀라며 본심이 튀어나왔다.
“아참, 안 그래도 찾아뵈려고 했는데 잘됐어요. 회장님 가게에서 과일 좀 살 수 있을까요?”
“과일을? 그거야 상관없네만… 어떤 걸로?”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말문이 턱 막혔다.
“방울토마토랑 레몬이요. 아, 동그란 방울토마토도 괜찮긴 한데, 되도록 길쭉한 거면 좋겠어요.”
그리고 몇 시간 후.
‘전부 과일이네……? 돼지고기만 해도 양이 엄청 많을 텐데, 과일은 이렇게 사와서 뭐에 쓰려고 하는 거지?’
주방 조리대에는 양파와 레몬, 방울토마토가 잔뜩 쌓여있었다.
전부 하늘청과에서 사온 재료였다.
궁금함이 가득 찼지만 이수호는 우빈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우빈이 주방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양파를 채 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천연덕스러운 우빈의 태도에 이수호의 속이 더 타는 기분이었다.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양파를 열심히 썰고 있는 우빈을 닦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장님, 혹시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가게에 노래를 틀어놓은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인지 잘못 들은 것 같았다.
이수호는 계속해서 우빈의 옆에서 그를 기다렸다. 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빈이 놀라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러면 청소하면서 기다려야겠다…….’
쓱싹쓱싹.
이수호는 행주로 열심히 조리대 근처를 닦으면서 주방을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우빈에게 말걸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양파 하나가 다져지면, 또 다른 새로운 양파가 곧 도마 위로 올라왔다.
양파를 끝까지 자르지 않고, 우선 세로로 칼집을 내어준 다음에 양파를 구십 도로 돌려 다시 썰어주면 작은 큐브 모양의 양파로 금방 다져졌다.
세로로 칼집을 내는 것이 마치 자로 잰 것마냥 간격이 일정했고, 잘게 다져진 양파 또한 모양이 균일했다.
그 모습을 본 이수호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양파, 그리고 다음 양파를 써는 모습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았다. 자칫하면 계속 멍하니 구경만 하게 될 것만 같아 이수호가 입을 다물고는 우빈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사장님.”
“아, 깜짝이야. 미안, 이걸 다 썰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서…….”
역시 기색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옆에 서 있었는데.
“저도 같이 돕겠습니다! 가게 청소는 미리 다 해놓았습니다.”
“와, 대박. 언제 이렇게 깨끗해졌지?”
우빈은 어느덧 깨끗해진 주변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역시 이수호를 채용한 건 잘한 것 같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가게처럼 성심성의껏 일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럼 이쪽에 있는 양파 좀 부탁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슬슬 레몬으로 넘어가려고.”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이 만든 것처럼 모양이 예쁘게 썰리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썰겠습니다!”
“응? 예쁘지는 않아도 돼. 물론 균일하게 자르면 좋기야 하지만. 수호 네가 연습하는 데 도움도 되고.”
“네……?”
우빈의 말에 이수호는 위화감이 들었다.
항상 손님이 먹는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우빈이었다.
“어. 접시에는 양파가 안 나갈 거거든.”
“네?! 그럼 이 많은 양파는 다 어디에 쓰시는 겁니까?”
이수호의 말에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 쓰는 데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