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8
집밥을 너무 잘함 48화
그리고 잠시 후.
‘휴우, 이 정도면 됐나?’
그 많던 양파도 이제 다 썰은 것 같았다. 주방칼 덕분에 손을 다칠 일도 없었기에, 더 안심하고 빠르게 작업할 수 있었다.
우빈은 커다란 바트를 가져와 그 안에 채 썬 양파를 옮겨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깔고, 다시 썰은 레몬을 그 위에 올렸다.
“레몬은 왜 넣으시는 겁니까?”
“이렇게 해야 향이 퍼지거든.”
레몬 몇 개는 손으로 쥐어짜서 그 위에 레몬즙을 뿌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추를 잔뜩 뿌려서 고기를 살짝 버무려서 마무리했다.
“이러면 끝. 이제 이대로 굽기만 하면 될 것 같네.”
그리고 그때였다.
“사장니임! 저희 왔어요! 우와, 이건 다 뭐예요?”
“슬기? 유채?”
“안녕하세요.”
유채와 슬기가 빙글 웃음을 머금고는 다가왔다.
“내일 야시장이 있다면서요! 이렇게 좋은 컨텐츠가 있으면 놓칠 수 없죠. 사장님의 활약상을 전부 찍으려고요! 뒷정리나 혹시 재료 써는 게 필요하면 저희한테 말해주세요.”
“저번처럼 도와드릴 수도 있으니까, 어어……?”
기세가 넘치는 활기찬 표정을 짓던 유채가 이수호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키도 큰데다가, 덩치도 커서 유채가 살짝 겁먹고 마른침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참, 유채는 처음 보겠구나. 여기는 수호라고, 얼마 전부터 같이 우리 가게에서 일하게 됐어. 그리고 수호야, 여기는 유채라고, 어……. 자주 오는 손님이야.”
우빈이 말끝을 흐렸다. 친구라기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아는 동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친한 척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밥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이수호라고 합니다!”
이수호가 활짝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커다래 보였는데, 의외로 웃으니까 무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좋은 성격으로 보였다.
유채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까보다는 훨씬 덜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에이, 사장님. 그냥 손님이라고 하면 조금 섭섭한데요? 단골손님으로 하죠! 그리고 가끔은 임시 아르바이트예요. 뭐…… 이제는 더 필요 없으시겠지만요.”
어딘가 아련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유채를 보면서 우빈이 입을 열었다.
“아르바이트 관심 있어? 안 그래도 지금 엄청 필요한데.”
“……저요?”
“응. 우리 내일 팔아야 할 양이 많기도 하고, 아마 나랑 수호는 계속 고기만 구워야 될 것 같거든. 유채 네가 계산 같은 걸 도와주면 엄청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 그럼 일당은요?”
척. 우빈이 손가락을 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유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장님! 너무 짠 거 아니에요? 뭐, 당연히 도와드릴 수야 있지만…….”
유채가 장난식으로 말하면서도 말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져 나왔다.
“참고로 시급이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님!! 믿고 맡겨주세요!”
허리를 구십 도가 넘도록 꺾는 유채를 보고는 우빈이 픽 웃었다. 옆에 있던 슬기가 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으시면 봄이는 제가 데리고 다닐까요? 어차피 저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찍을 거라서요. 겸사겸사 봄이 맛있는 것도 사줄까 하고요!”
“정말? 그래 주면야 나야 너무 고맙지. 그럼 몇 시간만 좀 부탁해도 될까?”
안 그래도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봄이에게 큰 신경을 써주지 못할 것 같아서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른 음식이라면 상관없지만, 이번에는 화로에 있는 불을 써서 고기를 구울 예정이었기 때문에 옆에 봄이를 두기에는 조금 마음에 걸렸던 탓이었다.
“그래. 그럼 염치없지만 내일도 잘 부탁할게, 얘들아.”
“맡겨 주세요! 우리가 남도 아니고.”
“뺘아!”
* * *
그리고, 축제날.
우빈은 고기가 든 바트와 준비물을 한 아름 안고는 풍영시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시장 입구에는 ‘풍영시장 별빛 야시장’ 이라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강 사장도 왔구만! 그래, 강 사장 자리는 이쪽이네.”
이상호 상인회장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우빈은 작은 노점에 가지고 온 짐을 내려놓았다.
“숯불은 저기 뒷쪽에서 가져가면 돼.”
“예, 고맙습니다. …오늘 패션이 아주 멋지시네요.”
이상호는 하늘색 하와이안 셔츠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칭찬이 싫지 않은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도 아주 옷이… 으음.”
이상호의 시선이 검은색 두건을 질끈 두르고 있는 우빈에 향했다.
“평소와 같네. 어어, 그러니까 잘 어울린다는 말일세!”
‘억지로 칭찬해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이상호가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우리 가게 어떻게 세팅했는지 보겠나?”
“네.”
우빈은 이상호를 따라 맞은편에 있는 하늘청과의 노점을 구경했다.
토마토주스, 딸기바나나주스, 키위주스 등, 이름만 들어도 새콤달콤해서 인기가 많을 것 같은 메뉴들이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준비를 많이 했지. 아, 이것도 가지고 왔다네!”
부스럭거리며 이상호가 잔뜩 늘어놓은 것은 빨대 장식이었다.
하나는 초록색 파인애플이 끼워져 있는 빨대, 그리고 또 다른 빨대는 분홍색 홍학이 동그랗게 펼쳐져 3D 입체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빨대를 본 우빈의 눈이 커졌다.
“와, 괜찮은데요? 옛날 추억 생각나고 좋네요.”
“괜찮고 말고. 집사람이랑 그 허니컴 종이라고 하던가? 사서 하나씩 오려서 만든 거야. 자네는 뭐로 할래?”
“네?”
우빈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이상호가 답답하다는 듯이 메뉴판을 툭툭 쳤다.
“한잔 마셔봐야지. 봄이는 뭐가 좋아?”
생글생글 웃는 봄이를 보고는 이상호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마치 자신의 손녀딸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봄이는 앞에 잔뜩 쌓인 과일을 구경하다가 딸기가 든 박스 앞에 우뚝 멈추어 섰다.
“딸기? 그래, 그래. 강 사장 자네는?”
“저는…… 그럼 토마토 주스로 부탁드립니다.”
“빨대는?”
“홍학으로 주세요.”
“나랑 취향이 같네.”
이상호가 먼저 딸기와 바나나를 갈아서는 딸기바나나 주스를 만들었다. 예쁜 분홍색을 띄고 있는 딸기바나나 주스.
이상호가 토마토와 얼음을 갈았다. 그리고 컵으로 주스를 옮긴 다음에 분홍색 빨대를 쿡 꼽아주었다.
“자, 쭉 들이켜라고.”
“감사합니다! 와, 진짜 시원하고 맛있는데요? 잘 팔리겠어요.”
봄이는 양손으로 딸기 바나나 주스를 열심히 쭉쭉거리며 마셨다. 그러면서 빨대에 달린 파인애플이 신기한지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럼, 하늘청과 이름이 있는데.”
우빈의 반응에 이상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참. 내 자랑을 하려고 온 게 아니라 강 사장 고기를 보려고 했는데.’
우빈의 반응이 워낙 좋아서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오늘도 박길복이 전화로 얼마나 신신당부를 하던지. 결국 고기를 못사왔다는 이상호의 말을 듣고서는 거의 뒤로 까무러치는 듯한 반응을 보인 박길복이었다.
“그래서 오늘밥집에서는 뭘 파려고 그러나?”
“아, 이겁니다.”
칠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돼지고기 숯불꼬치구이’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이상호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아이고, 어쩐다야. 내가 잘 봐줬어야 했는데.’
벌써 야시장 경험이 열 번은 넘게 있는 이상호였다.
돼지고기로 간다면 차라리 밥을 곁들여서 든든한 메뉴로 가는 게 더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박길복이 돼지고기목살 카레를 만든다고 했을 때 별 말 없이 수긍했던 것이다.
‘꼬치라면 차라리 닭꼬치를 사먹을 텐데.’
닭꼬치는 그나마 익숙한 메뉴이기도 하고, 양념만 제대로 받쳐진다면 기본은 하는 메뉴였다.
하지만 벌써 이미 저 메뉴로 다 준비를 해두었을 터. 이상호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왜 그러세요?”
이상호는 고민했다. 아직 시간은 오후 네 시. 야시장까지 한 시간이 남았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말하는 게 낫겠다.’
“있잖아, 강 사장. 돼지고기로 꼬치구이는 어려울 거야. 지금이라도 밥을 지어서 같이 곁들이는 게 어떻겠나? 혹시 밥솥이 모자라면 우리 쪽에서도 같이 돕겠네.”
“어? 저는 괜찮은데요?”
저번과 같이 천연덕스러운 우빈의 반응에 이상호가 이마를 짚었다.
“이 사람아, 돼지고기 부위가 목살이라 하지 않았어? 그럼 질기고 퍽퍽할 텐데…….”
이상호가 생각하기에 돼지고기 목살은 찌개나 카레 같은 가정식에 더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목살에 근육이 많은 편이긴 하죠. 그런데 제 꺼는 좀 다를 거예요.”
‘다르다고?’
의아해하는 이상호를 보고 우빈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입 먹어보는 것이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한 번 먹어보실래요?”
“아… 알겠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상호는 엉거주춤하게 파란색 포장마차 의자에 앉았다.
치이익!
숯불이 달구어졌고, 우빈이 곧 기다란 꼬치를 숯불 위에 올렸다.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숯불이 더 크게 타올랐다.
“돼지고기 꼬치구이 나왔습니다!”
‘허어. 냄새는 좋네……. 그래도, 맛이 제일 중요하지.’
숯불에 잘 그을린 돼지고기의 향이 났다.
콱.
꼬치구이에 있던 돼지고기가 입안으로 옮겨갔다.
두툼한 고기가 씹히면서 그 안에 담긴 육즙이 흘러나온다.
무엇보다 이상호가 놀란 건 고기의 연함이었다.
‘아니, 이게 목살이라고? 이렇게 부드러운 게?’
놀란 표정으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상호를 보고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양파랑 레몬을 넣어서 같이 돼지고기에 재웠거든요.”
양파와 레몬.
그 과정에서 돼지고기는 부드러워지고, 양파의 단맛과 레몬의 향긋함만이 돼지고기에 남는다.
꼬치구이는 여러 나라에서 길거리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였다.
샤슬릭이라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요리나, 수블라키라고 불리는 그리스식 돼지고기 꼬치구이가 그러한 것들이었다.
원래 같으면 레몬과 양파에 재워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큐민을 찍어먹지만.
큐민이 호불호가 있는 향신료다 보니 우빈은 큐민 대신 겉에 된장을 옅게 바르고 후추를 뿌려 간을 해주기로 했다.
어제 봄이가 레몬통을 집은 덕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런 건 키위나 파인애플을 사용하는 거 아닌가? 집사람이 고기에 잠시 재워두는 건 봤었는데…….”
이상호가 말을 흐렸다.
“맞아요. 그런데 키위나 파인애플은 장시간 고기에 같이 두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고기가 녹아버리거든요.”
“아, 그래그래. 분명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키위에 오래 재워 둔 고기가 너무 풀어져 버려 아내가 불평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위에는 악티니딘, 파인애플에는 브로멜라인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들어있다.
단백질을 분해하여 고기의 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들인데, 문제는 너무 과도하게 연육이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빈의 돼지고기 꼬치구이에는 씹히는 식감 또한 중요했기에, 키위 대신에 양파와 레몬을 사용한 것이었다.
“양파도 단백질을 분해하긴 하는데, 키위에 비해서는 그 효과가 조금 약하고요.”
“허허, 다음에는 나도 키위 말고 양파를 써봐야겠구만. 아, 이거 받게.”
이상호가 천원짜리 몇 장을 내밀었다.
“아니, 주스도 공짜로 받았는데요.”
“그건 내가 상인회장이니까 가게 사람들한테는 전부 다 돌린 거야.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이 정도 돈은 내야지.”
괜찮다고 말하는데도 이상호는 막무가내로 우빈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서로 힘내자며 손을 흔들고는 가버렸다.
‘해보자.’
우빈이 긴장을 풀기 위해 제자리에서 조금 뛰었다.
* * *
해가 저물어가면서 한적하던 풍영시장도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엄마, 저기 달고나 체험이 있대!”
“윤설아!! 엄마가 이런 곳에서 뛰지 말랬지!”
제법 떠들썩한 분위기에 우빈의 마음도 두근거렸다.
“사장니임! 봄이 데리러 왔어요.”
슬기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응? 오늘은 카메라가 두 대네?”
“오, 사장님 눈썰미 좋으신데요?”
슬기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