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49
집밥을 너무 잘함 49화
“하나는 여기에 설치해도 돼요? 나중에 이런 식으로 촬영할 수 있거든요. 타임랩스라고, 카메라를 놔두고 장시간 촬영해서 나중에 편집하는 거예요!”
슬기가 그렇게 말하고 보여준 건 지난번 한강에서 찍은 일몰 사진이었다. 같은 구도의 풍경에서, 해가 점점 지고 모습이 꽤 멋져 보였다.
“그래, 알겠어.”
“와! 제가 진짜 멋있게 찍어드릴게요. 업로드할 때 손님들 얼굴은 다 블러 처리할게요. 그럼 슬슬 갈까? 봄아?”
슬기는 카메라를 세팅하고는 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봄이가 힐긋 우빈 쪽을 쳐다보았고,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봄이는 옆에 있으면 다칠 수도 있어서. 대신에 가면 슬기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 거야.”
같이 사용할 돈은 어제 건네준 상태였다.
슬기가 극구 사양하기는 했다. 어차피 봄이가 먹는 양은 자신이 먹는 양의 이십분의 일도 안 된다면서.
하지만 결국에는 손에 돈을 쥐여주었다.
시간이 지나 유채와 이수호도 도착했고, 우빈과 같은 검은색 두건을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둘렀다.
유채는 야무지게 한 번에 두건을 묶었는데, 이수호의 두건은 자꾸 한쪽이 어설프게 흘러내렸다.
“여기 끝 쪽을 세게 잡아당기면 돼요!”
유채가 자신의 두건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수호가 낑낑대면서 유채의 말대로 따라했더니, 이번에는 두건이 흘러내리지 않았다.
“유채 씨 엄청난데요?! 엄청 잘 묶였습니다.”
“뭘요!”
유채가 상큼하게 미소 짓고 있을 때였다.
“오. 돼지고기 꼬치구이라는데? 먹어볼까?”
행인 두 명이 우빈의 노점 쪽을 흘긋거렸다.
“사, 사, 사장님! 이쪽으로 오려나 봐요!”
유채의 속삭임에서 긴장이 느껴졌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밥집이 자랑하는 특제 돼지고기 숯불꼬치입니다!”
이수호가 큰 목소리로 호객을 시도했지만, 행인 두 명은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유채는 어색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으음, 난 패스. 느끼할 것 같아.”
조금 기대하고 있었지만 행인 두 명은 그런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휙 떠나 버렸다.
“먹어보지도 않고 느끼하다니! 말도 안 돼요!”
“괜찮아.”
씩씩거리는 유채를 우빈이 달랬다.
“어차피 곧 오게 돼있거든.”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처음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할 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빈은 사람을 어떻게 데려오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목장갑을 낀 우빈이 숯불에 불을 붙였다. 위에 판을 올렸다.
치익.
잘 달궈진 숯불 위에 통에 재워두었던 돼지고기를 올렸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돼지고기가 노릇하게 익어가면서, 숯불 냄새가 시장 내에 솔솔 퍼졌다.
숯불에 구운 고기 냄새가 퍼지자 우빈이 씩 웃었다.
‘야외에서 하는 건 이런 장점이 있네.’
아무리 센 화력이라 해도 숯불에 구운 고기만큼은 못했다.
오늘밥집에는 숯불 연기를 처리할 만한 환기덕트가 따로 없었기에 시도하지 못했지만, 밖에서라면 연기 걱정 없이 고기맛에만 신나게 집중할 수 있었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야?”
꿀꺽.
이른 저녁부터 고기를 먹기 부담스러워 지나쳤던 사람들도, 고기 굽는 냄새에 다시금 우빈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고기 냄새는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엄청 저렴하네.”
한 행인이 메뉴판을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이틀 동안 열리는 단기간 행사였기에 가능한 금액이었다. 다행히 부재료는 양파와 레몬뿐이기도 했다.
열 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우빈의 노점으로 향했다.
“엄마. 저기서 맛있는 냄새 나는데?”
“어디? 어어…….”
‘돼지고기 꼬치구이? 너무 저렴한데……. 어디 질 안 좋은 부위라도 써서 파는 거 아니야?’
냄새에는 혹하지만 선뜻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반가운 목소리가 노점 앞에서 울렸다.
“사장님! 여기 계셨네요.”
최수희와 신형석이었다.
“저희도 오늘 야시장 구경 나왔어요. 아기 나오면 또 놀러다니기 힘들다고 하길래……. 헤헤. 돼지고기 꼬치구이? 이거 하나씩 주세요!”
메뉴를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주문을 하는 최수희였다.
남들보다 유난히 긴 입덧 때문에 고생했는데, 신기하게도 저번 묵사발을 먹은 시점과 함께 입덧이 사라졌다.
또다시 냄새가 나서 속이 울렁거리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히도 그럴 일은 없었다.
“네, 금방 구워서 드릴게요.”
둘은 우빈이 굽는 꼬치구이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사실 신형석은 치킨 매니아인 만큼, 닭고기를 제일 좋아하기는 했다.
‘쩝, 닭꼬치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지만 우빈의 요리는 둘을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내심 기대감을 가졌다.
“여기 꼬치구이 2개 나왔습니다.”
먹음직스러운 꼬치구이를 보고 신형석이 탄성을 내질렀다.
방울토마토, 대파, 레몬이 돼지고기 중간중간에 사이좋게 끼어 있어 알록달록한 색이 보기 좋았다.
“와아! 색깔이 너무 예뻐요. 안 되겠다. 이건 찍어야지.”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은 후에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입안에 넣기 전에 돼지고기 숯불향이 느껴졌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 저번처럼 입천장 다 데지말고.”
“응, 응.”
얼마나 맛있을까?
신형석이 꼬치구이를 이로 물어뜯었다.
‘우와.’
돼지고기 꼬치에서 고기를 한입 베어물은 신형석이 눈을 크게 떴다.
역시 고기는 숯불에 굽는 것이 최고였다. 빠르게 숯불에 구워, 돼지고기에 가득한 육즙이 흘렀다.
이 돼지고기는 더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돼지고기가 왜 이렇게 부드럽지? 그리고 무엇보다… 잡내가 안 나.’
신형석이 질겅질겅 고기를 씹었다.
그가 치킨을 더 선호하는 건 돼지에서 나는 잡내가 싫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형석이 들고 있는 꼬치구이에서는 돼지고기 특유의 누린내는커녕, 향긋한 과일향이 났다.
최수희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고기를 입에 잔뜩 넣은 상태로 비어있는 한 손을 마구 휘적거렸다.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나 돼지고기 보다 닭고기 더 좋아하는 거 알지.”
“알지, 왜 모르겠어. 그래서 캠핑 때도 매번 돼지고기랑 닭고기 둘 다 따로 챙겨가잖아.”
“그런데 이거는 왜 향이 좋지? 누린내는커녕…….”
“이거 같은데?”
신형석이 꼬치 중간에 꽂혀있는 레몬을 가리켰다.
‘아! 이거였구나.’
자칫 느끼할 수도 있는 목살의 기름을 산뜻한 레몬향이 잡아주고 있었다.
“구운 대파도 맛있다. 이렇게 먹으니까 꼭 캠핑온 것 같아.”
숯불로 잘 구운 대파에서는 은은한 단맛이 났다.
방울토마토, 돼지고기, 대파. 그렇게 차례차례로 먹다보니 순식간에 꼬치는 돼지고기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
신형석이 물끄러미 돼지고기를 쳐다보다가 최수희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기, 나랑 같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어느새 줄이 길어져 있었다.
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다시 줄 뒤로 섰다.
“나 당신이 돼지고기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봐.”
“아니…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잖아. 간도 엄청 잘 배어있다고.”
소금과 후추로 간이 잘 배어있는 짭짤한 돼지고기. 베어물 때마다 주륵 흘러내리는 육즙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안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고기인데. 레몬과 양파에 절여 더 부드러워진 돼지고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 * *
‘와아, 맛있는 냄새.’
풍영시장에 도착한 한진균이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진균은 먹을 것을 아주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야시장이 열린다는 말에 일부러 먼거리를 찾아왔다.
‘어디보자, 오늘은 무엇을 먹어볼까.’
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야시장을 둘러보았다.
‘타코야키. 무난하게 맛있는 메뉴지. 오오! 닭발! 저건 못참지.’
쫄깃한 닭발을 질겅질겅 씹다보니 목이 말라졌다. 두리번거리던 한진균의 시야에 주스를 파는 노점이 들어왔다.
“사장님. 딸기 주스 하나 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동안 빨대 하나 골라봐요.”
“빨대요?”
“거기 파인애플이랑 홍학 중에 고르면 됩니다.”
3D처럼 동그랗게 부착되어 있는 빨대장식이었다.
“전 파인애플이요.”
“오우케이!”
딸기와 얼음을 넣고 믹서기에 윙윙거리며 갈았다. 옆에 있는 과일들이 척 보기에도 싱싱해 보였다.
씩씩한 말투의 알로하셔츠를 입은 할아버지를 본 한진균이 픽 웃었다.
‘재미있는 곳이네.’
딸기주스를 쪽쪽 빨아들이자 방금 먹었던 닭발이 빠르게 소화되는 기분이었다.
다시 새로워진 기분으로 한진균이 야시장을 둘러볼 때였다.
킁킁.
어디선가 숯불 연기가 나고 있었다.
한진균이 걸음을 빠르게 옮기자 그 앞에는 한 젊은 사장이 세차게 타오르는 숯불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여기? 뭘 파는 거지? …아. 돼지고기 꼬치구이.’
한진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 인기 있는 메뉴는 아닐 것 같았는데 나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어디 한 번, 나도 줄 서볼까.’
한진균이 줄에 합류했다.
그리고 앞에서 교복을 입은 두 명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어제 먹어봤는데 장난 아니었어.”
“진짜? 뭐 얼마나 맛있길래 이 시간부터 고기를 먹자고 그래.”
‘아직 이르긴 하지.’
오후 다섯 시. 기름진 음식을 먹기에는 다소 벅찬 시간.
들려오는 대화에 한진균이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아니야! 진짜 먹어보면 다르다니까? 더즐리 걸고 말한다, 내가.”
“더즐리를 건다고? 신뢰도 급상승이네, 완전.”
요즘 한창 인기 있는 남자 아이돌, 더즐리. 둘의 대화에 한진균도 호기심이 일었다.
‘뭐 얼마나 맛있길래……?’
그렇게 가만히 줄을 서 있을 때였다. 킥킥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어우, 살이 뭐 저렇게 쪘는데 또 먹을 생각을 하네.”
“그러니까. 저러니까 살이 찌는 거지.”
움찔. 한진균이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어? 설마 내 이야기는 아니겠지?’
덩치가 조금 크긴 했지만,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나름대로 체중조절을 위해 아침마다 조깅을 나가는 한진균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팔뚝 봐. 여름에 옆에 앉으면 냄새날 거 같은데.”
“오빠가 운동하자고 한 번 꼬셔봐. 잘 넘어올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럼 같이 줄 기다리는 척 하면서 말 걸어보지, 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닐 거야. 한진균이 애써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저기요.”
누군가 한진균의 팔을 쿡쿡 찔렀다.
뒤에 있던 남자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혹시 지금 몇 살이세요?”
“저… 스물아홉이요.”
“아아. 혹시 저기 헬스장에서 저랑 같이 운동 안 해보실래요?”
“예?”
한진균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젊은 나이인데 계속 그렇게 사실 거예요? 본인한테 투자하는 게 아까워요? 이거 봐요, 이거. 지금도 팔뚝에 지방밖에 없는데… 어휴.”
남자가 한진균의 팔뚝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저기요…….”
느닷없이 붙잡힌 팔. 싫어하는 내색을 내비쳤지만 남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기름진 싸구려 음식만 먹으면 다 그게 살로 가는 거예요. 지금보다 더 뚱뚱해진다고요. 알겠어요? 그러니까 저랑 같이 운동으로…….”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우빈이었다.
우빈이 팔짱을 끼고 부릅뜬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손님. 방금 제 음식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까?”
“아니, 나는 그냥…….”
팔짱을 단단히 낀 우빈을 보고는 남자가 말을 흐렸다.
“목살. 332칼로리.”
“…예?”
“목살은 돼지고기 중에서도 비계가 적은 부위입니다. 단백질도 가득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질 음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화가 나니 더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개인의 생각이야 자유라지만, 이렇게 남의 영업장에서 큰소리로 말씀하시는 건 좀 상도덕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줄을 서고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남자와 우빈에게 쏠리고 있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여자가 남자의 팔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