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5
집밥을 너무 잘함 5화
마침 북어채볶음을 연습하려고 사 온 북어가 있었다.
“북엇국은 어떠세요?”
“북엇국이요? 좋죠.”
북어와 황태는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북어는 육십 일 넘게 명태라는 생선을 바싹 말리는 반면에, 황태는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건조하기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통통하게 오른 살이 특징이었다.
둘 중 오늘의 승자는 북어였다.
마른 북어를 물에 살짝 불려주었다.
일 리터의 물을 센 불로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한 이후에 육수를 만들어낼 때는 물을 중간 불로 바꾸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비린내가 올라오기 때문이었다.
육수를 만드는 동안 다른 냄비에 북어채와 썰어놓은 무를 넣고 들기름과 함께 볶아주었다.
이때 국간장을 미리 넣어 간을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였다.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솔솔 올라왔다.
어느 정도 볶아진 다음에 아까 만든 육수를 붓고, 펄펄 국이 끓기 시작하면 다진 마늘을 한 움큼 넣는다.
그런 다음에는 계란을 살짝 풀어 휙 둘러준다. 넣자마자 순식간에 익어가는 계란.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부드러운 식감의 두부였다. 너무 뜨거우면 두부의 모양이 뭉개질 수 있으므로 거의 다 끓은 마지막에 넣는 편이었다.
간을 보기 위해 나무 숟가락으로 국을 떠먹어보았다.
간은 딱 맞았다. 맑은 국이었기에 소금을 넣어 간을 하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 보였다.
아까 북어채를 볶을 때 넣은 국간장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주고 있었다.
“북엇국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북엇국을 보고 김성훈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북엇국은 참 신기한 음식이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음식인 주제에, 술을 먹거나 속이 쓰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는 북엇국 말고는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없었다.
김성훈이 북엇국의 국물을 후룩 들이켰다.
따뜻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국물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나서 다시 한번 국물을 떠먹게 된다.
우선은 두부를 입안에 넣었다. 뜨거워서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숨을 들이켜 두부를 식혔다.
곧이어 국물을 가득 머금은 하얀 두부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으깨졌다.
속이 다 풀리는 듯한 시원한 국물에, 왜 해장을 할 때 북엇국을 찾는지 알 수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생선과 비슷한 퀭한 눈을 하고 있던 김성훈이 눈을 반짝였다.
분명 속이 울렁거려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안 먹으면 더 속이 쓰릴까 봐 뭐라도 먹으려고 한 것이었는데, 국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식욕이 올라왔다.
‘맛있는데?’
“사, 사장님. 밥도 조금 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윤기가 도는 밥을 그릇에 가득 채워 김성훈에게 건넸다.
처음 생각과 다르게, 국물을 떠먹으니 밥도 먹고 싶어졌다.
하지만 막상 밥이 나오자 또 주저하게 되었다. 아직 속이 쓰리긴 한데 다 먹을 수 있을까? 김성훈은 우선 세 숟가락 정도만 밥을 떠서는 국물에 말았다.
후루룩, 후룩. 밥을 떠먹은 김성훈이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감칠맛이 도는 북엇국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밥공기에 남은 밥을 마저 북엇국에 모두 말고는 식사를 이어갔다. 북엇국이 닦아놓은 위장으로 가는 길을 밥이 미끄덩거리며 넘어갔다.
중간중간 같이 딸려온 몽실거리는 계란은 곧 입안에서 춤을 추듯 나풀거렸다.
김성훈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
‘하아…… 편하다, 편해.’
오늘 처음 방문한 가게일 뿐인데 마치 여러 번 와본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온 것만 같았다.
북엇국은 물론, 밥까지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순식간에 상 위에 있는 모든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운 김성훈이었다.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열심히 일하는 젊은 사장,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드는 식당.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게 이름 그대로 집밥 같은 음식.
어쩐지 앞으로도 이 가게를 자주 찾아올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김성훈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서 우빈에게 건네주려 할 때였다.
“뺘아!”
멈칫.
아장거리며 계단을 네 발로 내려오는 아이를 보고 우빈의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네, 네가 왜 거기에 있어?!’
아이는 방글방글 웃으며 김성훈을 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김성훈이 아이에게 급히 다가갔다.
“……사장님 따님이에요? 세상에!”
“뺘아?”
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는 주관이 뚜렷한 편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건 절대 하지 않았다. 제법 단호한 거절에도 김성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새하얗고 말랑말랑한 볼은 마치 무한정으로 늘어나는 떡처럼 보였다. 당장이라도 볼을 잡아보고 싶은 손이 근질거렸다.
방금 북엇국으로 식사를 마친 김성훈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활기가 넘쳤다.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우다다 내뱉기 시작했다.
“크아아! 사장님, 실은 제가 다니는 회사가 아동복 만드는 회사거든요. 혹시 따님, 키즈모델 한 번 시켜볼 생각 없으십니까?”
우빈은 잠시 상상했다. 스튜디오로 아이가 간다면 제법 괜찮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저번처럼 손가락으로 또다시 푸른 인어들을 불러온다면? 놀라서 기절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몰랐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나머지 소름이 돋았다.
“하하.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세요? 이렇게 귀여운 아이라면 바로 성공할 텐데요.”
김성훈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더 권하지는 않았다.
“아참, 그럼 혹시 옷은 안 필요하세요?”
“옷이요?”
어리둥절한 우빈을 보고 김성훈이 씩 웃었다.
“네, 회사에서 샘플로 받는 옷들이 꽤 많거든요.”
“정말요?”
우빈이 눈을 반짝였다. 시장에서 옷을 사입혔지만, 평소 옷에 딱히 관심이 없는 우빈인지라 어떻게 옷을 꾸며줘야 할지 몰랐다.
지금 입은 옷이 잘 어울리는 건 결코 우빈의 센스보다는 온전히 아이의 몫이었다.
“넥카라 원피스나 뷔스티에 원피스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니면 점프슈트도 괜찮을 것 같고요.”
“부스터요? 그게 인기입니까?”
“부스터가 아니라 뷔스티예요! 볼레로 자켓이랑 같이 이제는 스테디셀러죠.”
부스터는 뭐고 볼레로는 또 뭐람. 처음 듣는 단어들은 무슨 마법 아이템같이 화려한 단어에 우빈의 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죠.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대신 서비스는 팍팍 드릴게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예쁜 옷으로 잔뜩 가지고 올게요! 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야? 몇 살이에요?”
‘아, 이름.’
갑작스러운 질문에 우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직 아이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질문은 우빈에게 돌아올 터였다.
이름을 모른다고 하면 수상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할 테고,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랐다.
적당한 이름이 뭐가 있지? 우빈의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정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제발 물어보지 말아라, 제발.’
우빈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를 보고 헤벌쭉 웃던 김성훈이 고개를 흘깃 돌려 우빈에게 물었다.
“사장님, 아이 이름은 뭐예요?”
기도는 통하지 않았다. 어쩌지? 어떻게 해서라도 이름을 쥐어짜 내야 했다. 유명한 여배우 이름이라도 떠올리려고 했지만, 이놈의 머리는 도저히 도움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더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뺘아!”
아이가 김성훈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그에 김성훈이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아이가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김성훈이 마치 눈부시다는 듯이 눈을 꽉 감으며 심장을 부여잡았다.
“으아아! 갑자기 그러면 반칙이잖아! 삼촌 해 봐, 삼초온.”
“뺘아~.”
아이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고, 그 이후로 김성훈은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네.’
우빈은 다시 아이에게 시선을 돌린 김성훈을 보고는 그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훈은 한참을 아이와 놀고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가게를 떠났다.
아직 가게를 오픈하기 전이니 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도 기어이 지폐를 건네주었다.
받은 지폐를 정리하던 우빈이 팔짱을 끼고 아이를 보았다.
“이 층에서 쉬고 있으라니까.”
“뺘뺘아.”
아이가 생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불러준 적이 없구나.’
일주일이나 같이 생활했으면서 아이에게 이름이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밥도 챙겨주고 옷도 사 입혀서 나름대로 보살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게다가 김성훈이 물었을 때 조마조마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마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이와 함께 계속 이 층에서 생활할 테니, 김성훈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른 손님과 마주칠 일도 많을 것이었다.
무언가 좋은 이름이 없을까?
우빈은 한참을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종이에 끄적끄적 이름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들어본 이름 중에서 우빈이 예쁘다고 생각한 이름을 추린 목록이었다. 아이가 아장거리며 다가왔다.
“네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데, 어떤 게 좋을 것 같아? 네 마음에 드는 이름으로 짓고 싶은데 말이야.”
이름이라는 말에 아이가 흠칫 몸을 움찔였다. 눈까지 휘둥그레져서는 우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아이와 우빈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이의 연녹색 눈이 반짝이며 빛났다.
좀처럼 보지 못했던 아이의 반응에 우빈이 당황스러워할 때 즈음. 우빈과 아이의 사이에 꽃잎 하나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우빈이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살랑거리며 공중을 돌던 꽃잎 하나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벚꽃잎이었다.
하얀색 꽃잎에 분홍색을 머금은 모습은 마치 봄의 조각을 가져온 것만 같았다.
겨울에 갑자기 웬 꽃잎이지 싶어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의 주변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뺘아!”
시간을 멈춘 듯이 꽃잎은 천천히 흩날렸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가게에 온 이후로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갑자기 카운터 옆 화분에 있던 산세베리아가 눈에 띄게 쑥쑥 자랐다든가, 수돗물에서 물이 평소와는 달리 콸콸 넘친다든가.
단순한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아이가 온 시점이랑 맞물렸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 하하.”
우빈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번에 푸른 인어들이 나타날 때도 심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을 놀라게 할 생각인 걸까?
정작 아이는 평온해 보였다. 아까는 이름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렇게 놀라놓고는, 지금은 그저 우빈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다.
아이의 손이 스쳐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꽃잎이 함께 나풀거렸고, 그중 하나가 아이의 이마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우빈이 꽃잎을 손으로 정리해 주며 물었다.
“너는 정말 정체가 뭐야?”
아이는 뺘뺘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우빈이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했는데 인제 와서 이런 것을 묻는 것도 이상했다.
“읏차.”
우빈이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아이는 높아진 시야에 신이 났는지 이번에는 손으로 벚꽃잎을 움켜쥐려 애썼다.
어차피 아이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단지 조금 귀엽고 특별한 능력이 있다 한들 그게 우빈이 아이와 거리를 두어야 할 만한 일은 되지 못했다.
우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봄은 어때? 네 이름.”
아이가 찾아온 계절은 모든 것이 얼어붙는 겨울이었다. 그런 겨울의 기색마저 단숨에 지워 버리는 하늘하늘 날리는 벚꽃. 분홍빛 벚꽃비에 둘러싸인 아이의 모습을 보자 그 단어 말고는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마음에 든다는 뜻 같아 우빈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김성훈이 백만 번 물어봐도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이름이 생겼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봄아.”
“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