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54
집밥을 너무 잘함 54화
“그렇군요!”
‘오.’
항상 들떠있는 김성훈만 보다가,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니까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우빈은 속으로 조용히 감탄하면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등어무조림.
무를 너무 얇지 않게 썰고, 대파와 양파를 썰었다.
다음에는 냄비 위에 무를 바닥 제일 아래에 깔아놓고, 그다음으로는 고등어를 올렸다. 그리고 아까 채썰어놓은 양파와 대파, 그리고 청양고추와 홍고추까지.
냄비 안에 들어있는 고등어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준 다음에 고춧가루를 넣어 팔팔 끓였다.
간장은 반 컵 정도 넣어주었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콩나물을 삶을 때 뚜껑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고등어도 마찬가지로 비린내를 날려버리기 위해 뚜껑을 덮지 않고 조렸다.
“그리고 면접도, 지금 보니까 면접장에서도 긴장했을 것 같은데. 쫄지마! 어차피 밖에서 보면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 아주머니일 뿐이니까. 떨어지면 더더욱 다시 볼일 없는 사람들이고. 그냥 당당하게 네 의견을 말하면 되는 거야.”
“알겠어요, 형!”
어느새 호칭은 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자소서를 들여다보고있는 둘을 보고 우빈은 헛기침을 했다.
“주문하신 고등어무조림입니다.”
고등어는 윤기가 흐르면서도 살이 통통했고, 잘 익은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와 함께 매콤해 보이는 홍고추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럼 나머지는 먹고 할까?”
“네!”
씩씩하게 대답하던 나상준이, 고등어를 얼른 입에 넣어보곤느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 맛있어요. 고등어가 살이 통통하고, 무도 엄청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바로 녹는 것 같아요.”
“봐, 맛있다니까!”
나상준은 이후로도 김성훈에게 취업에 관련된 몇 가지 조언을 듣고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형, 진짜 고마워요. 그냥 혼자서 열심히, 열심히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고 있었네요.”
“원래 그때는 그런 거야. 뭐, 자소서 더 궁금한 거 있거나, 아니면”
“저도 형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형 덕분에 이번에는 꼭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짝거리는 눈빛의 나상준을 보면서 김성훈이 곤란한 듯 웃었다.
당연히 취업을 한다고 해서 다 끝은 아니다. 오히려 새롭게 시작될 뿐이지만, 한창 취준생이었을 때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김성훈은 굳이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참, 사장님! 그리고 이거요. 봄이한테 줄 잠옷, 새로 가지고 왔어요.”
돌고래가 그려져 있는 푸른색 잠옷이었다.
“김성훈 씨. 옷을 받았으니까 보답 겸…… 말씀드리는 건데요.”
“음?”
김성훈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우빈이 설명을 이어갔다.
“봄이 앞에서는 그 인형, 꼭 귀엽고 예쁘다고 말해야 해요. 요즘은 거의 어미 닭처럼 인형을 품고 다니거든요. 엄청 예민해 해요.”
“아, 그래서…… 저번에 제가 인형이 못생겼다고 하니까 삐쳐서 올라간 거군요! 저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런.”
우빈의 말에 다음번에는 절대 실수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김성훈이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에서 나온 김성훈이 기지개를 켰다.
“형, 정말 잘 먹었습니다! 오늘 정말 감사해요.”
자신의 연락처를 나상준의 휴대전화에 저장해 주면서 김성훈이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냥, 편하게 동네 형이라고 생각하고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해.”
그렇게 손을 흔들고 나상준은 멀어졌고,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였다.
이층 창문에서 무언가 꼼지락거리는 것 같아서, 문득 김성훈이 고개를 들어올려 창문 쪽을 쳐다보았다.
“앙녕. 쟐 가.”
앙증맞은 봄이의 목소리와 함께 공룡 인형이 창문 밖을 삐죽이고 있었다.
김성훈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크게 소리쳤다.
“봄이도 공룡도! 잘 자.”
곧 작은 손이 꼼지락대면서 인형의 팔을 휘둘렀다. 그러고는 창문에서 휙 사라져 버렸다.
김성훈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와아.’
한 무더기 쌓여있는 옥수수를 보고는 우빈이 절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초당옥수수.
초당옥수수는 옥수수의 종 중 하나로, 일반 옥수수에 비해 당분이 많이 들어있다. 한마디로 단맛이 가득한 옥수수라는 뜻이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우빈도 역시 옥수수를 좋아했는데,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던 옥수수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고 보니 한참을 옥수수 앞에 서 있던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곤란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몇 개 더 얹어줄 테니까 가져가. 우리도 어제 삶아먹어 봤는데 맛있더라고.”
“그럴까요?”
봄이는 아직 옥수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단맛을 좋아하는 봄이니까. 당연히 옥수수를 좋아할 것이다.
“옥수수네요!”
“수수!”
가게에 돌아가자 이수호와 봄이가 반겼다. 특히 봄이는 옥수수의 수염에 큰 흥미를 보였다. 옥수수수염을 조금 떼어주니 턱에 붙이고 에헴, 하는 시늉을 했다.
아마도 얼마 전에 산타클로스에 관한 동화책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자아, 그럼 이걸 어떻게 삶아볼까.’
어릴 적 할머니집에서 먹던 것처럼, 사카린이라고 불리는 뉴슈가를 잔뜩 넣은 단맛이 느껴지는 옥수수가 먹고 싶어질 때도 있었다.
우빈은 이수호와 함께 먼저 겉껍질을 모두 벗겼다. 옥수수수염을 떼어내고, 물로 깨끗하게 헹궈주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올렸다.
마요네즈와 설탕도 같이 올려준 다음에, 옥수수를 돌돌 프라이팬에 굴려주었다.
허여멀겋던 옥수수의 색이 불에 맞닿으면서 먹음직스러운 황금빛으로 변해갔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옥수수에, 버터와 맞닿은 부분은 조금 그을렸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멕시코에서는 흔히 길거리 음식으로 옥수수 요리를 찾아볼 수 있는데, 엘로떼(Elote)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코히타 치즈가 파마산 치즈보다 맛이 더 진하기는 하지만, 지금 바로 구하기는 힘드니까 오늘은 파마산 치즈로.
눈처럼 소복하게 옥수수를 감싼 다음에, 위에는 고춧가루를 뿌려서 장식해 주었다.
고춧가루가 아닌 파프리카 시즈닝이나 칠리 파우더를 뿌리면 더욱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우, 우와아……. 조금 특이한데요? 조금 핫도그 같은 느낌도 납니다.”
어쨌든 맛만 있으면 되니까. 이수호가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옥수수를 한입 물어뜯었다.
“와아. 뭔가 버터 팝콘을 먹는 것 같기도 하고. 옥수수 알이 꽉 차서 즙이 나오는데, 짭짤한 치즈가루랑 먹으니까 멈출 틈이 없네요.”
버터의 고소함과 치즈의 짭짤함이 초당옥수수 본래의 달콤함과 뒤섞였다.
“미국에는 말이야. 옥수수밭 미로라는 게 있대.”
“옥수수밭 미로요? 그게 뭡니까?”
“옥수수가 적어도 2m 정도는 자라니까. 처음 심을 때부터 미로 모양을 내놓고, 옥수수 추수 시즌이 끝나면 미로를 시작한다더라고.”
“와, 그런 게 있군요.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게.”
우빈은 봄이와 함께 옥수수밭을 헤매는 걸 잠시 상상해 보았다.
한편 봄이는 옥수수에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봄이가 옥수수를 들고있으니 어쩐지 옥수수가 더 커보였다.
“달앙.”
봄이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음, 이건 나중에 차로 마실까?’
따로 떼어놓은 옥수수 수염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우빈이 넌지시 중얼거렸다.
“괜히 그립네.”
우빈이 중얼거렸다.
이제 할머니는 볼 수 없고, 찰옥수수마저 이제는 찾기 어려워서 초당옥수수가 대세인 지 오래였다.
– 아이고, 우리 강아지! 옥수수 좀 쪄줄까?
– 또 옥수수야? 나 배부른데.
여름철, 시골 할머니집에 놀러갈 때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옥수수를 한가득 사와서는 찌고는 했다.
보랏빛이 조금 도는 흑찰옥수수.
– 맛있다! 역시 할머니가 쪄준 옥수수가 제일 맛있어.
분명 옥수수를 쪄줄 때는 또 옥수수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보자 저절로 침이 고였다.
할머니는 맛있다는 한마디에 활짝 입꼬리가 찢어질 것처럼 웃었다.
– 그래? 가만있어 봐라, 옥수수도 있고, 이따 저녁에는 백숙도 해줄게.
– 할머니, 그마안! 나 배터질 것 같아!
투정을 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농사에 바빠 서울로 올라오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방학이나 명절. 고작 일 년에 몇 번 보는 손자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옥수수를 찌셨을까.
보라색으로 예쁘게 물든 옥수수를 떼어내 먹으면서, 보석 같다고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지을 때가 있었다.
포슬포슬 비가 내려 빗방울이 물파장을 일으키는 걸 보며, 마루에서 여름날의 선선함을 느끼던 그 시절.
밤이 되면 맑은 물가에서 반짝이던 반딧불이들. 그리고 불조절이 되지 않아 방바닥이 뜨끈뜨끈해서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던 방까지.
-많이 더운갑네. 미안하다, 추울 것 같아서 이렇게 했는데…….
괜찮다고 말하는데도 연신 부채로 얼굴을 부쳐주던 할머니와 함께, 밤에 울던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새근새근 잠이 들던 게 기억이 났다.
우빈이 픽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어떻게 해야 맛있어질까 고민하는 중이었어.”
이상하게도 옥수수 자체는 더 맛있어졌는데, 할머니가 해주던 그 맛은 미치지 못했다.
‘우리 가게에 찾아와주는 손님들도 이런 기분인 걸까.’
매일같이 몇 번씩이나 요리를 만드는 입장이다 보니,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옥수수 삶는 냄새와 함께 절로 밀려드는 새록새록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우빈은 자신이 어떤 요리를 만들어야 할지 다시 생각했다.
읏차.
우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 장사 준비 시작하자!”
우빈이 씩씩한 목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할머니의 손맛을 아주 조금이라도 따라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 * *
“와. 여기 매일 메뉴가 바뀐다는데? 맛있나 봐. 우리 저녁은 여기로 먹으러 갈까?”
주말.
카페에 앉아서 너튜브 채널을 뒤적거리던 여자는 강슬기의 너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영상에 있는 음식이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여 찾아보았더니, 댓글이나 다른 블로그 후기들도 평이 좋았다.
‘이 정도면 먹으러 갈 만하겠는데?’
여자의 말에 남자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남자를 보고는 여자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내 말 들었어?”
“어, 어. 잠깐만. 나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네, 팀장님.”
“…….”
벌떡 일어서서 전화를 받는 남자를 보고 여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혼자라도 가볼까.
고민하고 있던 여자.
그때 남자가 다시 되돌아와서는 물었다.
“미안, 정신이 없네. 방금 뭐라고 했어?”
“요즘 인기 있는 식당이 있다네. 한 번-”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려던 여자가 멈칫했다. 남자가 계속 바빠서 같이 식사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같이 가자.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고…… 내일 저녁은 시간 괜찮을 것 같아.”
“정말? 그럼 나중에 같이 가기야? 여기, 다 맛있어 보이더라고. 그 이가은 메밀 김밥, 거기도 여기 식당에서 한 거래.”
여자, 한유진이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늘밥집에 도착한 한유진이 남자친구와 줄을 서 있었다. 그나마 늦은 저녁인 탓에 웨이팅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한유진이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속삭였다.
“줄서있는 것 좀 봐! 여기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완전 기대된다.”
“어, 그러게. 잠깐만. 이것만 좀 처리할게.”
한껏 들떠 보이는 그녀와 달리 남자친구는 계속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톡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덩치는 크지만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이수호가 다가오자, 한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메뉴는 뭐예요?”
오늘밥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일 달라지는 식단. 한유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