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59
집밥을 너무 잘함 59화
그리고 그때.
“흐읍!!”
봄이가 슬라이딩을 해서 접시를 손으로 잡았다.
툭, 툭.
봄이가 잡은 접시 위로, 은별이 만든 식빵 피자가 하나씩 착지했다.
“와아……! 고마워! 하마터면 만든 거 다 버릴 뻔했는데.”
봄이는 밝아진 은별의 얼굴에 한껏 뿌듯함을 느끼면서, 우빈 쪽을 돌아보았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요!”
“흡.”
내심 칭찬을 바랐지만 우빈은 무언가 오해한 듯했다.
어쨌든 은별에게 칭찬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한 봄이는 도도도 달려가서는 피자를 우빈에게 건넸다.
그리고 곧 오븐에서 따끈따끈한 식빵피자가 완성되어 나왔다.
완성된 피자를 한입 입에 베어 문 순간.
“……!”
은별은 순간 자신만 이렇게 맛있게 먹는 건 아닌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치즈가 쭈욱 흘러나오는 피자를 보고 모두들 활기가 넘치는 상태였다.
“엉니. 오때?”
“너무, 너무 맛있어.”
은별이 활짝 웃었다.
은별은 할머니에게도 피자를 주고 싶다며 자신이 만든 피자 중에 몇 조각은 남겨서 포장했다.
할머니가 와서는 우빈의 손을 꽉 잡았다.
“아이고, 고맙네, 고마워…… 강 사장 덕분에 별이가 저렇게 활짝 웃는 모습도 다 보네.”
할머니는 말을 이어갔다.
“내가 혼자 아를 키우다 보니까. 요즘 애들은 어떤 걸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잘 몰라. 젊은 엄마들처럼 피자 같은 것도 가끔은 사줬어야 했는데.”
혼자라는 말에 우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주 자세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빈도 어느 정도 나물 할머니의 사정은 건너들은 바가 있었다.
은별은 자신이 만든 피자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면서 할머니에게 자랑했다.
할머니와는 손을 꽉 잡은 채로, 기쁜 표정으로 돌아가는 은별을 보고 우빈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봄이가 도도도 달려와서는 우빈의 옷깃을 잡아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빠아, 아빠아. 있잖아…… 나 피쟈의 영웅.”
피자를 맛있게 만들었다는 건가? 어쨌든 생각보다도 적극적으로 교실에 참가한 봄이가 내심 뿌듯했던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아.”
자신의 팔을 넌지시 툭툭 건드리는 봄이를 보고, 우빈은 뭘 해야할지 깨달았다.
봄이는 우빈이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헤헤 웃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안녕하세요!”
갑자기 은별이 오늘밥집을 찾아왔다.
“엉니이~!”
“봄아!”
봄이는 찾아온 은별을 보고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은별 쪽으로 다가갔다. 봄이가 너무 치근덕거려서 은별이 불편할까 봐 떼어내려고 했는데, 은별은 괜찮다면서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먹고싶은 거라도 있어?”
“아니요,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예요. 저기, 이걸…….”
은별이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꺼내서 우빈에게 내밀었다.
편지였다.
“별건 아니고, 그냥 사장님한테 감사해서 쓴 편지예요.”
우빈은 잠시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었다.
은별의 글씨는 교과서에 적힌 것처럼 아주 반듯하고 예쁜 글씨체였다.
긴 편지는 아니고 짧은 편지였는데, 이번 요리 교실에 참가한 게 아주 뜻깊고 재미있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다음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버섯을 잔뜩 넣어서 만들어보려고요!
편지에서도 느껴지는 밝은 에너지에, 우빈은 괜히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이렇게 감사를 바란 일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은별을 더 도와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무색하게 느껴질 때였다.
“잠깐만.”
순간 우빈의 머릿속을 무언가 스쳐 지나갔고, 우빈은 깨달음을 얻은 듯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휴대전화를 찾았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발랄한 느낌의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흐르더니, 곧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어쩐 일이세요?
“김성훈 씨, 접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복지관 담당자님 연락처, 혹시 받을 수 있을까요?”
* * *
그리고 며칠 후.
활기찬 인사와 함께 은별의 집에 누군가가 방문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지난번 우빈과 김성훈의 회사와 함께, 어버이날 행사를 열었던 복지관 담당자였다.
“안녕, 이름이 뭐야?”
“으, 은별이요. 류은별.”
“예쁜 이름이네. 선생님이 잠깐 은별이 할머니랑 이야기하려 하는데, 괜찮을까?”
갑자기 방문한 복지관 사람에 은별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혹시…… 저 보육원에 맡겨지는 건가요?”
“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황한 복지관 담당자의 뒤로 우빈과 봄이가 뒤따라 계단을 올라왔다.
“안녕, 은별아.”
“엉니!”
은별은 아는 얼굴이 보이자 긴장으로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잠깐 할머니랑 이야기하려고 찾아오신 거야. 그동안 셋이서 놀고 있을까?”
“……네, 알겠어요.”
은별은 조금은 불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쌀을 그렇게 싸게 살 수 있다고요?”
복지관 담당자의 설명에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좀 더 말씀 나누고 수급 구분은 확인해 봐야 하는데, 그래도 만 원 정도면 지원받으면 10kg 정도 사실 수 있을 거예요. 자세한 건 저희랑 같이 주민센터로 가셔서 더 확인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 저번에 알아봤을 때는 애 아빠가 남아있어서 안 된다고 하던데.”
“물론 부양의무자가 있을 때는 수급이 제한되는 항목들이 있어요. 그런데 수급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기도 하고, 이전보다는 꽤 기준이 완화된 부분이 있어서요.”
그밖에도 고장 난 배관 때문에 곰팡이로 얼룩진 장판을 아주 저렴한 값에 교체해 준다거나.
은별이의 교육비 지원도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할머니의 두 눈은 점점 휘둥그레졌다.
“그, 그런 것도 받을 수 있다고요? 세상에나……. 아이고. 고마워서 어쩌나.”
“그게 저희 일인걸요. 오히려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는데 죄송하죠, 사실은. 미리 찾아와서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담당자는 곰팡이가 찬 바닥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하려고 해도 습한 장마가 올 때면 구조상 쉽게 곰팡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집이었다.
간혹 이런 집이 있었다.
공과금도 관리비도 밀리지 않고,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에 있는.
“그래도 이번에 강 사장님이 연락을 주셔서, 늦게나마 찾아뵐 수 있었어요. 늦은 만큼, 저희가 어르신이랑 은별이, 잘 지낼 수 있게 정말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강 사장이…… 그래요.”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
“곧 저녁 시간이잖아. 오늘은, 다들 배부르게 먹여서 보내야지.”
할머니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입꼬리를 올릴 때였다.
때마침 놀이터에서 놀고 온 은별이 할머니한테 와락 안겼다.
할머니의 말에, 우빈이 가지고 온 아이스박스를 내밀었다.
“괜찮으시면, 이것도 같이 드시죠.”
* * *
“세상에나!”
아이스박스에 있는 반찬을 하나씩 냉장고로 옮기면서, 은별과 할머니는 계속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 그리고 이건 할머님이랑 같이 좀 나누어먹으라고 해서. 만들어 왔어.”
꽈리고추가 들어있어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고기 장조림, 감자채햄볶음, 그리고 버섯잡채까지. 은별은 반찬 하나하나를 열어보며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너무, 너무 맛있어 보여요. 저, 정말 다 먹어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은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우빈과 복지관 담당자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윽고 따끈따끈한 하얀 쌀밥이 나왔다.
사실은 우빈이 밥도 지으려고 했지만, 손님은 가만히 있으라는 할머니의 박력에 우빈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성스레 만든 반찬에, 은별이 장조림 하나를 조심스레 집었다.
“이것도 같이 먹자.”
할머니가 갓김치를 내놓았다.
우빈이 갓김치를 하나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맞게 삭힌 갓김치가 새하얀 쌀밥과 잘 어울렸다.
“으음, 장조림 고기가 너무 부드러운데요? 간도 딱 맞고요. 일주일 내내 장조림이랑 밥만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한 달이요! 진짜 맛있어요, 아저씨!”
헤헤 웃는 은별. 그리고 우빈이 가져온 참외까지 야무지게 깎아서 먹고 나자 슬슬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다 되었다.
‘참, 그러고 보니.’
우빈은 몸을 일으켜 아까 현관밖에 두었던 화분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은별이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뭐 찾으세요?”
우빈은 화분을 들어 은별이에게 건네주었다.
“은별아. 이건 네 선물이야. 은별 타라드라는 꽃이래.”
“제, 제 선물이요?”
제라늄의 한 종류인 은별타라드는 연한 분홍색 꽃잎이 동그랗게 감싸져 있는 꽃이었다. 겹겹으로 이루어진 꽃잎을 보고, 화분을 받아든 은별이 눈을 깜빡거렸다.
식사를 하면서 은별은 앞으로 받을 지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도움을 받는다는 건 내심 자신이 부족하다는 말 같아 움츠러들어 있었다.
어차피 도움은 돌고 도는 것이고, 받은 만큼 또 남에게 돌려주면 된다는 말에 은별은 큰 해방감을 느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꿈만 같았는데, 또 선물이라니……
은별은 제 이름과 똑같은 꽃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예쁜 꽃이 나와 같은 이름이라니.
그리고 누군가에게 꽃을 받은 것도 처음이라 은별은 마냥 기분이 벅차올랐다.
“식빵 피자나, 뭐 다른 것도 좋으니 뭔가 먹고싶은 게 생기면 아무 때나 오고.”
우빈의 말에 은별이 활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식빵 피자는 만드는 법 배웠으니까요! 집에서 만들고 아저씨한테도 가져갈게요. ……그리고 저요.”
“응?”
“저도 언젠가 아저씨처럼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요?”
반짝거리는 은별의 눈. 그런 은별의 눈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눈이었다.
우빈이 한쪽 다리를 꿇어앉아 은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은별이는 왜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할머니한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싶어요. 아저씨처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만히 은별을 쳐다보던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저씨가 듣기엔 지금도 은별이는 이미 훌륭한 요리사인데?”
“……네?”
은별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이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우빈이 생각하기에 음식에 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상투적인 말은 아니었다.
화려한 기술을 가진 요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우빈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누군가를 위해 맛있게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서투른 솜씨도, 마음속에 그런 욕심이 있다면 실력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거든. 아저씨가 보기엔 은별이는 재능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모습으로 말하는 우빈을 보며, 은별은 우빈이 딱히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니라고 느꼈다.
은별이 우빈이 준 화분을 소중하게 품에 안아 든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며칠 뒤.
원래도 밝은 미소를 짓는 은별이었지만, 어쩐지 요즘에는 더 활기차 보였다. 그런 은별을 아이들이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은별이는 향기도 좋아.”
“자자, 다들 그만 떠들고 앉아! 지금 진로 희망서 하나씩 나눠줄 테니까, 내일까지 써서 선생님한테 줘. 알았지? 특히 장래희망을 로봇으로 쓰면 선생님이랑 조금 길게 이야기를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꼭 다쓰고 나서 밑에 부모님 싸인도 같이 받아와.”
진로 희망서를 하나씩 받아들자, 아이들은 또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네에!”
시끌벅적. 너튜버나 아이돌을 희망하는 아이들이 대체로 많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아이들과 달리, 은별은 종이를 받자마자 결심한 듯 끄적거리며 진로 희망서를 채워 나갔다.
“아, 어렵다.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뭐라고 쓰지? 은별이 너는 장래희망 정했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자아이가 다가왔다.
은별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에게 건넸다.
“응. 나는 정했어.”
은별이 밝게 웃었다.
오늘밥집에서 먼저 손길을 내밀었던 우빈처럼.
기꺼이 남을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교실에는 창가를 통해 환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