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60
집밥을 너무 잘함 60화
주말농장.
봄이는 고구마를 심고 싶어했다.
“아빠아. 나듀, 이고.”
우빈의 소매를 끌어당기기에, 무얼 보고 있나 했더니 다른 밭에 있는 팻말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고구마. 은채 꺼. 만지지 마!’라고 적혀있는 팻말.
팻말에 끄적인 이름이 부러웠나 보다.
“우리도 살까?”
“녜! 죠아요!”
씩씩하게 대답하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하하 웃었다.
* * *
“사장님, 혹시 팻말도 파시나요?”
“그럼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농장 옆에 있는 가게로 가서, 우빈은 큼직해보이는 나무 팻말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식물 앞에 꽂아둘 팻말은 봄이에게 고르게 했다.
“어떤 게 좋아?”
“우움.”
봄이가 양손으로 뺨을 감싸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팻말을 살펴보았다.
유성매직을 가게 사장한테서 건네받았다.
“상추랑, 고구마?”
“녜!”
“잠시만.”
우빈은 팻말에 상추, 고구마를 썼다.
‘얼마 못쓸 것 같기는 하지만. 같은 거 심을 때 또 쓰면 되지, 뭐.’
식물의 자라는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길게 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우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봄이네’라는 글씨를 적었다.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하는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으로 팻말을 짚었다.
“모야?”
“봄이네, 라고 적었어.”
봄이는 그 말을 듣고 방긋 미소 짓다가, 책상 위에 있는 펜을 집어들어 무언가를 쓱쓱 그리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얼굴에 세 개의 머리털. 봄이는 이어서 얼굴에 점을 찍어 눈을 그렸고, 입꼬리는 호탕하게 그은 선과 함께 얼굴 밖까지 튀어나가 있었다.
그림을 살펴보던 봄이는 만족한 듯이 흠,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펜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는 우빈을 쳐다보며 외쳤다.
“아쁘아!”
“…나구나.”
우빈은 조금은 복잡한 기분으로 봄이에게서 펜을 받아들어서, 옆에 봄이의 얼굴을 슥슥 그렸다.
“오옹!”
그림을 본 봄이가 마음에 드는지 헤벌쭉 웃으며 팻말을 들었다.
“좋아, 여기는 상추. 그리고 고구마는 이쪽.”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빈은 ‘봄이네’라고 적혀있는 제일 커다란 팻말을 바닥에 꽂았다.
봄이가 마음에 드는지 팻말 앞에 앉아서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뺘아, 거렸다.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아래로 지고 있었다.
달콤한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있을 것을 생각하니, 봄이는 절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빠리 쟈라.”
그렇게 말해도 빨리 안 자랄 텐데.
헤죽 웃는 봄이를 보고는 차마 진실을 알려줄 수 없어 우빈은 그저 입을 다물고 봄이를 지켜보았다.
주황빛 노을을 등진 우빈이 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으로 돌아갈까?”
“녜!”
봄이는 방긋 웃으며 우빈의 손을 꼭 잡았다.
“봄아.”
“웅?”
“손에 흙 묻었다.”
“히.”
우빈은 근처에 있는 수도꼭지에서 봄이의 손을 씻기며 생각했다.
오늘 저녁으로는 뭘 먹을까?
기왕 신선한 대파를 수확했으니, 오랜만에 봄이가 좋아하는 오겹살을 파무침과 함께 곁들여 먹을까 생각하며, 둘은 집에 가는 길로 향했다.
* * *
“날씨 좋다.”
이제 무더운 여름은 지났는지, 해가 없는 날은 나름 선선했다.
우빈과 봄이는 캠핑의자를 가게 앞에 내놓고는 햇빛을 쬐면서 앉아있었다.
캠핑의자는 세 개가 놓여있었는데, 원래는 이수호 용으로 사둔 캠핑의자였지만, 오늘은 쉬는 날이라 대신에 티라노 인형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영업 준비를 마친 다음에, 영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 시간이 좋았다.
“뭐 마실래?”
우빈은 주방에서 복숭아 아이스티와 코코아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본 봄이가 주먹을 입으로 가져다 댄 채로 끙끙거렸다.
“으음, 움…… 에치!”
봄이가 재채기를 했다.
“춥구나? 그럼 아이스티는 안 되겠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우빈은 캠핑의자를 접고 봄이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코코아로 할게.”
“웅.”
그렇게 결연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우유를 냄비에 데웠다.
‘오늘은 초코시럽으로 만들어볼까.’
평소에는 코코아 파우더와 우유를 섞어 만들어주지만, 오늘은 아직 영업 시작 전까지 시간이 꽤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우빈은 물에 설탕을 붓고, 그다음에 코코아 파우더를 넣어 섞었다. 십분을 넘게 끓이자, 초코시럽이 완성되었다.
먼저 봄이 전용 머그잔에 초코시럽을 넣어주고, 그다음에 냄비로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부어주었다.
우유를 천천히 붓자 초코시럽과 함께 색이 코코아색으로 천천히 물들었다. 우빈은 휘핑 스프레이로 그 위에 휘핑크림을 얹었고, 마지막으로는 갈아놓은 초콜릿을 뿌려 장식했다.
우빈 스스로도 오늘은 제법 모양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우빈만이 아닌 것 같았다. 봄이가 다가와서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우아아. 아빠아, 이뻐요. 쵸코 너무 죠아!”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야 해.”
우빈의 말에 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싯어서 갠챠나.”
“그거랑은 상관없는 것 같은데. …아무튼 천천히 마시고.”
“녜에.”
후룩.
봄이는 우빈이 타준 코코아를 양손으로 집어들고는 마시고 있었다.
따뜻한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타서, 위에는 휘핑크림 스프레이로 크림을 잔뜩 올려준 코코아였다.
“아빠아. 쵸코 죠아.”
크림을 입에 잔뜩 묻힌 채로 봄이가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우빈이 픽 웃으며 봄이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그래 보인다.”
“히.”
봄이는 후룩 코코아를 마시고, 우빈은 시원한 풋귤차를 마셨다.
이석형이 제주도로 출장을 가면서, 선물로 보내온 풋귤차였다.
한유진이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몇 달 동안 같이 제주도에 머무르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주면서, 이석형은 특유의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향이 좋네.’
조금 새콤하면서도, 향긋한 풋귤향이 은은하게 나서 마시기 좋았다.
봄이는 그새 핫초코를 다 마셨는지, 티라노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띠라노, 츌도!”
봄이가 우다다거리며 가게 안을 뛰어다녔다.
풍영시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시면 좋겠다 싶어서 우빈이 풋귤차를 챙기고 있을 때즈음이었다.
“여기…… 지금 장사하세요?”
그러던 우빈의 눈앞에 어떤 남자가 어깨를 축 쳐진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터덜터덜. 어찌나 기운이 없는지,
“사장님. 저, 혹시요. 여기,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도 되는 거죠?”
“네, 제가 만들 수 있는 거라면요.”
“그러면…… 맵지 않고, 기름지지 않으면서,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음식 있을까요? 자극적인 고춧가루는 들어가면 안 되고요.”
“어…….”
당황한 우빈이 말끝을 흐렸다.
우빈의 머릿속에는 음식 사전이 있었다. 하지만 남자가 손가락을 접으며 한 마디 말을 할 때마다, 우빈이 만들 수 있는 음식 위에 빨간 엑스표가 그려졌다.
그런 우빈을 보고서는 남자가 고개를 폭 숙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며칠 전에…….”
* * *
“역류성 후두염이네요.”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시경 사진을 보고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예? 그게 뭔데요?”
이비인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진료를 보기 위해 나온 남자가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후두 쪽을 보아야 한다며, 내시경 카메라가 달린 긴 쇠를 목 안에 쑤셔넣었던 의사가 여전히 내시경 사진을 보면서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쉽게 말하면 위액이 올라와서 후두가 상한 겁니다. 평소에 술 많이 드십니까?”
“어, 아무래도 그렇죠. 회식도 있고, 집에서 혼자 먹을 때도 있고요.”
계속 기침을 하던 유준휘.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반복되는 매운 음식과 스트레스로 인해서 위에 탈이 났고, 위산이 목까지 올라와 기침을 계속해야 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술 안 됩니다. 그리고 이거는 식이 조절을 아주 잘해야 해요. 커피, 초콜릿 등 카페인 금지이고요. 매운 음식도 금지입니다. 야식도 안 됩니다.”
“그, 그럼 뭘 먹으라는 말씀이세요……?”
유준휘는 매운 맛을 좋아했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매운 음식을 먹기 바빴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매운 음식들.
그렇게 매운 음식들만 먹는 바람에, 심지어는 친구와 절교한 적도 있었다.
누가 들으면 음식 때문에 싸워? 라고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유준휘에게 매운 음식은 중요했다.
그러던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준휘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밀가루와 매운 음식을 못 먹으면 어떡하지? 게다가 커피도 못 마시면. 직장인에게 커피란 수혈을 받는 것과도 같았다.
“약 잘 먹고, 한 달 뒤에 봅시다.”
약을 뭉텅이로 받아온 유준휘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콜록, 콜록!
마치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하는 유준휘.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그런 유준휘를 보더니, 마스크를 코로 올리고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일주일.
일주일 내내 참다가, 햄버거와 콜라 세트 하나를 먹었더니 바로 위가 따끔거리면서 기침을 시작했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기침을 하고 난 다음, 유준휘는 반성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술을 많이 먹고, 매운 것도 많이 먹는데 왜 내가 이런 병에 걸렸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기회에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몸이 나한테 건강하게 먹으라고 알려준 거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게다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겠어!’
“제대로 먹자.”
“…그렇게 된 겁니다. 밥이랑 김만 조금 먹었더니 처음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나중에는 맛있는 걸 못 먹으니까 기운도 없고요.”
유준휘가 축 처진 어깨와 함께 말을 이었다.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체형 관리는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걸 전부 다 먹는 편이었다.
그간 다이어트를 위해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먹으면서 식이 조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힘든 일을 자기 의지로 해온 건지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저, 그런데 제가 못 먹는 음식이 많아서요. 에, 에취!”
또다시 기침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례가 들린 듯이 심한 기침에, 유준휘의 눈가가 눈물로 글썽였다.
“여기 물이요.”
우빈이 서둘러 물이 든 컵을 건네주었다. 유준휘는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조금 마시고는, 가방에서 약을 꺼내 얼른 입안에 털어넣었다.
재료에 대한 성분이나 영양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의료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우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되는 겁니까?”
“네, 네. 뭘 먹으면 큰일 난다, 이런 종류는 아니래요. 아까 말한 것들 제외하고, 일상적으로 먹는 건강한 음식이면 된다는데요. 찾아보기는 했는데…… 좀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요.”
우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직접 병원에서 일해본 적은 없었지만, 환자식을 대충 어떤 식으로 구상하는지는 영양사인 친구를 통해 전해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 *
우빈이 싱싱한 양배추를 잘게 썰었다. 양배추와 참치를 진간장으로 아주 약하게 간을 한 다음에, 밥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양배추 참치덮밥.
유준휘는 그 덮밥을 보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라를 즐겨먹고 하던 유준휘였으니 성에 찰 리 없었다.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식만 즐겨먹던 사자에게, 어느 날부터 풀쪼가리만 먹어야 해! 라고 다그치는 느낌.
유준휘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기대 없이 밥을 떠먹었다.
“어, 어어?!”
이윽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양배추라고 해서 큰 기대 없이 먹었는데. 이게 웬걸. 열을 가해 볶아진 양배추에서는 은은한 단맛을 잔뜩 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참치와 함께 짭짤하게 간이 되어있어, 은근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양배추를 하나 먹으면 밥이 먹고 싶어지고, 밥을 먹으면 또 양배추를 먹고 싶어졌다.
“맛있어요……!”
그렇게 이 주 정도가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