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66
집밥을 너무 잘함 66화
“일인데 당연히 잘해야지.”
“아휴, 엄격도 하셔라. 맞다, 일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나 하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
이소현은 그렇게 대본집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초 죄수 역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매니저에게 어떻게 이야기해볼지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야? 해보고 싶다고 하면 되잖아.”
“음, 그런데…… 사람들이 나한테 바라는 역할이 있잖아.”
“그게 뭔데?”
우빈의 말에 이소현이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돼? 국민 첫사랑, 청순 여신. 아침 이슬만 먹고사는…… 야, 강우빈. 너 왜 갑자기 시선을 돌려?”
제 입으로 저런 말을 거침없이 하는 이소현을 보고 강우빈의 팔에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너 번데기 좋아해? 아까 시장에서 조금 사온 거 있는데 너도 좀 줄까?”
“대박! 어! 먹을래, 먹을래!”
우빈은 번데기가 가득 들어있는 종이컵을 이소현에게 내밀었다. 이소현은 “진짜 오랜만이다!”라고 반가워하면서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쿡 찔렀다.
“그렇게 속단할 필요 없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소현이 커다란 눈을 깜빡거렸다.
“너가 대중들한테 그런 털털한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며. 아직 해본 것도 아닌데, 반응이 어떨지 속단하는 것도 너무 빠른 건 아닌가 해서. 그때 가서 고민해 봐도 되는 일 아니야?”
우빈의 말에 이소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예계가 얼마나 치열하고 섬세한데.
그런 속사정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되는 대로 말하는 우빈의 말이…… 이상하게도, 싫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이소현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그렇지.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 얘가 이제 청순한 컨셉은 그만뒀나 보네? 하면서 다른 연예인으로 바로 관심을 돌릴지도 모르고.”
우빈이 접시를 천으로 닦으면서 잠시 생각했다.
“왜 잃는 쪽으로만 생각해?”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일 수도 있잖아. 이 사람은 이런 연기만 할줄 알았는데, 다른 것도 잘하네, 하면서.”
“……응.”
이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양식을 조리하던 우빈이 한식, 그것도 시장에 백반집을 낸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대가 꽤나 심했다.
백반은 쉬워보이냐, 차마 레스토랑은 차릴 돈이 없어서 한식을 하는 거냐, 좋은 시절 다 갔다, 등.
그나마 앞에서 우빈을 말리는 사람은 양반이었고, 뒤에서 건너들은 조롱과 비아냥은 훨씬 심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떤가?
지금 우빈은 행복했다.
“번데기 말이야. 외국에서는 거의 안 먹는 거 알아?”
“진짜? 이 맛있는 걸? 고소하고 맛있는데, 왜. 내가 다 아쉽다.”
“외국까지도 갈 것 없이 호불호가 갈리잖아.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엄청 좋아하잖아. 고소하면서도 씹는 맛이 좋다고.”
우빈은 잠자코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냥 모든 일이 이 번데기 같은 거라 생각해. 살면서 내가 하는 일을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아해 주는 사람은 좋아해 줄 거라고. 그것도 아주 많이.”
이소현이 번데기를 먹으려던 입을 다물지 못하고는 우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역시 이상한 소리를 했나 싶어서 우빈이 머쓱해하던 중이었는데, 이소현은 감탄한 표정으로 우빈과 눈을 마주쳤다.
“강우빈. 진짜 대단해. 너 무슨 스님처럼 말하는 거 알아? 물론 좋은 뜻으로! 나 이제 고민 상담할 거 있으면 무조건 이쪽으로 와야겠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고 있는 이소현을 보면서, 우빈이 다음에 올 때는 선글라스 차림이 더 눈에 띄니까 참고하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봄이가 가지고 있던 티라노 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아빠아…… 구, 구거, 모야……?”
번데기를 본 봄이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배고퍄도…… 벌레 머그면 앙……대.”
봄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쓰러졌다.
“봄아, 봄아!!”
* * *
“오빠.”
“응?”
“나, 역시 저번에 그때 그 작품, 해볼래.”
“아, 그 첫사랑 역할 말하는 거지?”
“아니, 죄수 역할.”
입꼬리를 올리는 이소현의 말에 매니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소현아, 그 작품은 내가, 잘못 가져다준 거고……. 아직 네 이미지 생각하면 안 돼.”
“나, 연예인은 맞긴 한데. 그냥 하늘하늘한 생머리만 날리려고 배우가 되겠다고 한 건 아니야. 이래 봬도 배우고, 그 작품 굉장히 탐나. 배우로서 성장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이 작품, 놓치고 싶지 않아.”
‘끄응…….’
매니저는 앓는 소리를 냈다.
평소에 이소현은 이렇게 자기주장이 올곧은 타입은 아니었다. 그런 이소현이 저렇게까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는 건, 매니저가 말릴 만한 일이 아니란 것이었다.
하지만 매니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감독, 엄청 까다롭댔어. 조연이건 뭐건, 디렉팅이 엄청나게 세세하다고. 기존 경력이 있다고 해서 대우받지도 못할 텐데…… 정말 괜찮겠어?”
매니저는 조금은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가은이라는 이름은, 지금 연예계 어딜 가나 탑 배우였다.
흥행수표가 보장된 배우에게, 최고의 감독이나 상대배우, 몇 년 전이면 구경하지 못했을 초호화 작가가 보장되어 있는데.
굳이 이러한 선택을 마다하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려하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또 모르지. 새로운 사람들이 날 좋아해 줄지도 모르잖아?”
이소현이 맑게 웃었다. 대책 없어 보이기도 하는 저 미소에, 매니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상관없어.”
이소현이 빙그레 웃었다.
도전하고 싶으니까. 연기 폭을 넓히고 싶으니까.
더 이상 그저 예쁘장한 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되고 싶으니까.
한편 매니저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은 했다.
작품 의 성공 이후로, 계속해서 연달아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이미 한 번 크게 성공한 경험이 있었기에 제작사들도 이소현에게 바라는 이미지는 뚜렷했다.
이소현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의 한계를 미리 그어놓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계속 지켜봐 온 자신이 보기에, 이소현은 그렇게 한철 소비되어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배우였다.
‘어쩌면 내가 확신이 없었을지도.’
그렇게 이소현은 대본집을 집었다.
“앗, 그러고 보니. 수감자 역할을 하려면 살은 빼야겠네.”
이소현이 아쉬운 듯 간식을 집어들었다. 오늘까지는 맛있게 먹어야지.
이쑤시개로 종이컵에 든 번데기를 쿡 찍었다.
“우움, 너무 맛있다아.”
그렇게 번데기를 들고 몸을 비트는 이소현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CF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너 말이야, 밖에서는 절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 알았지……?”
“네에! 그래도 지금은 가은이 아니라 이소현이니까. 마음껏 먹을게요.”
씩씩한 이소현의 목소리에 매니저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튼 대답만 잘하지, 대답만.”
그래도 이소현이 잘해 나갈 걸 알기에.
매니저는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운전을 했다.
“……그리고 나도 번데기 한입만.”
* * *
“뭐! 가은이 감옥 갔다고?! ……아, 뭐야. 새로 찍는 드라마 이야기잖아. 기자 어그로 장난 아니네.”
PC방에서 핸드폰을 보던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고 나서 곧 김이 샌 듯이 의자에 몸을 느슨하게 기대었다.
-‘국민 첫사랑’ 가은의 파격 행보… 이제는 감옥에서 만난다
다시 봐도 어이가 없는 기사 제목이었다. 그리고 그런 건 남자뿐만이 아니었는지, 기사 하단에 화난 이모티콘이 잔뜩 눌러져 있었다.
남자는 혀를 끌끌 차면서 다른 기사를 쭉 읽어 내려갔다.
-청순파 가은, 180도 이미지 변신 “새로운 도전, 응원해 달라”
-시청률 34.2%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너는 내 마음에’의 주인공 가은이 새로운 변신에 나선다. 밝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가은, 이번 새로운 드라마 ‘달 뜨는 밤’에서 좀도둑이라는 다소 경망스럽고 코믹한 역할을 맡아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가은은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을 밝혔다.
‘재미있겠는데? 나오면 챙겨봐야지.’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남자였다. 그랬던 남자는 너튜브에서 봤던 짧은 클립을 보고 이소현에게 한눈에 반했고, 결국은 이소현이 나온 모든 드라마를 챙겨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팬은 아니라고 꿋꿋이 주장하고 있었다.
“야, 김현우. 뭐해? 게임 시작했잖아.”
남자, 김현우는 친구들이 항상 앉는 구석자리에 앉아서 헤드셋을 끼고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 그나저나……. 2학기에는 진짜 혼자 밥 먹어야 하나?’
대학교 일학년인 그에게는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혼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벌써 스무 살이었지만, 제대로 혼밥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늘 급식은 친구들과 함께 먹었고,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대학교에 들어오면 혼자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무척 걱정을 했었는데, 운 좋게도 일학기 때는 친구들과 시간표가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음 학기부터는 시간표가 달라져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사실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한 번은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밥을 왜 혼자 못 먹냐는 말이 의아한 표정과 함께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래, 나도 안다고. 애도 아니고 밥 혼자 못 먹는 게 창피한 일인 거는.’
사실은 얼마 전에 이런 자신을 극복해 보려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서 시도해 보았다.
그때의 불안감이란.
외롭기도 하고 주변 신경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서, 김현우는 결국 도망치듯이 햄버거를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아.”
한숨을 쉬던 김현우는 옆에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친구를 쳐다보았다.
딸깍딸깍딸깍!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우스와 함께 엄청난 클릭을 하고 있었다. 친구의 캐릭터가 죽어서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자, 김현우가 넌지시 물었다.
“아, 수업 그냥 같이 듣자고. 어?”
“됐거든요. 왜 자꾸 수업을 같이 듣재? 아, 얘는 갱 오라니까 왜 안 와. ……어, 잠깐만. 나 알 것 같은데.”
“뭐가.”
“설마 너, 밥 혼자 못 먹을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냐?”
“어, 어……? 뭐래, 웬 헛소리를 하고 있어.”
갑작스레 정곡을 찔린 김현우였다.
“야, 맞네, 맞어. 말 더듬는 거 보니까 더 수상한데? 생각해 보니까 너 혼밥해 본 적 있긴 하냐?”
“아, 미친놈아. 너 때문에 죽었잖아! ……당연히 있지.”
회색빛으로 변한 화면을 보고는 김현우가 잔뜩 짜증을 냈다.
“오~ 어디?”
“……있다고.”
조금 자신 없이 말하는 김현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네. 인증샷 없으면 안 믿는다.”
* * *
‘으아아아! 진짜, 먹어? 먹어, 말아?’
머리를 거의 쥐어뜯다시피 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잔뜩 울상을 한 김현우는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꾹 참았다.
‘인증샷만 찍으면 돼, 인증샷만.’
결국 친구들의 도발에 넘어간 김현우는 인증샷을 찍기 위해, 집앞에 있는 고깃집으로 도착했을 때였다.
“엥?!”
고깃집은 오늘밥집이라는 백반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야, 기껏 마음의 준비 다해 놓았는데!”
살짝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꿀꺽.
오늘밥집으로 들어가려던 김현우가 망설였다.
‘고깃집은…… 만약 1인분이 안된다고 하면 그냥 돌아오려고 하던 거였는데.’
내심 거절당하기를 바랐던 김현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고깃집도 그렇지만, 이런 동네 밥집도 꽤 난이도가 있어보였다.
역시, 다시 햄버거집부터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하고 망설이던 중이었다.
김현우를 발견한 우빈이 밝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밥집입니다.”
“흐엑? 으, 네, 네……. 안녕히 계세요!”
“……어라.”
“모야?”
“손님, 이었던 것 같은데…….”
바람처럼 쏜살같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는 봄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