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67
집밥을 너무 잘함 67화
결국 보내지 못한 인증샷과 함께 야유가 쏟아지는 톡방을 보고 김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가면 되잖아, 가면!’
김현우는 씩씩거리면서 어제 도망쳤던 오늘밥집 앞으로 다시 왔다.
가게 앞에 선 김현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들어갈 수 있어.”
김현우가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드르륵. 가게 문이 열리면서 김현우가 으악, 소리를 지르면서 뒤로 물러섰다.
“괜찮으세요?”
“네, 네. 그냥 조금 놀라서 그랬어요.”
‘아씨, 쪽팔려!’
걱정스러워하는 우빈을 보면서 김현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더 거리낄 것도 없었다. 김현우가 물었다.
“사, 사장님. 여기, 한 명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렇게 김현우는 우빈의 안내를 받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고 밝은 가게를 보고 김현우는 내심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메뉴는 두부유부초밥과 팽이버섯계란국.
우빈은 두부 한 모를 통째로 손으로 으깼다. 그렇게 으깬 두부를 면포에 넣어준 다음에 꼭 짜내어 물기를 빼냈다.
단무지와 소금간을 하고, 두부를 유부에 하나씩 채워넣었다.
계란물에 자른 팽이버섯을 붓고 간을 한 다음에, 멸치육수가 담긴 냄비에 넣어 몽실하게 익을 때까지 끓였다.
‘와…… 이거 맛있다!’
담백하면서도 단촛물의 새콤한 맛이 나서 먹기 좋았다.
옆에 곁들여 먹은 팽이버섯 계란국은 파가 들어가서 시원한 맛을 자아내고 있었다.
막상 혼자 밥을 먹게 되니까, 더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남들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혼밥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김현우가 넌지시 입을 열었고, 그런 김현우를 보고는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어렵지 않죠?”
유부초밥을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김현우는 대신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꿀꺽 입에 들은 유부초밥을 삼키고는 물었다.
“사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혼밥 먹는 사람 많아요? 사실 저는 혼밥이 처음이라서요. 이상해 보일까 봐 조금 걱정되거든요.”
김현우는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으로 우빈에게 말했다. 혹시 친구도 없어서 혼자 온 거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도 되었다.
“저기 혼자 밥 먹고 있는 손님, 이상해 보여요?”
“……아니요?”
유부초밥 하나를 가지고 옆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는 손님이 있었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우빈이 말하기 전까지는 가게에 있는지, 한 명이 왔는지 두 명이 왔는지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면 어릴 때 집에서 먹은 것도 혼밥 아닌가?’
김현우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맞벌이인 부모님은 항상 바빴고, 그는 늘 혼자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게 큰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가 밥과 참치캔을 함께 올려주고, 짧은 메모를 써주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늘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늘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같이 밥을 먹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혼자 먹으면 외롭다는 생각이 컸고, 조금 크고 난 지금에서는 남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볼까봐 두려움이 컸다.
한데 지금은.
김현우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혼밥을 하는 것은 예상외로 평화로웠다.
자신이 밥을 먹든 말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맞은 편에 앉은 사람 없이 혼자 밥을 먹으니 온전히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이렇게 간단한 일을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까.
김현우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유부초밥 사진을 찍어서 톡방에 보냈다.
-(사진)
-됐냐?
-되긴 뭐가 돼 ㅋㅋㅋㅋ 응 김현우 딱 봐도 인터넷에서 사진 퍼온 거 티나죠~
김현우는 혀를 쯧 차고는 자신의 셀카와 함께 유부초밥 사진을 찍어서 톡방에 보냈다.
셀카를 보낸 탓에 톡방에는 영 좋지 않은 반응이 주륵 올라왔지만 김현우는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셀카를 찍든 말든, 정말로 김현우 쪽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건데, 그동안 자신이 너무 겁먹었던 것 같았다.
인증샷도 찍었겠다, 김현우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일어서던 김현우의 시야에 문득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사인을 발견한 김현우의 입이 바닥에 닿을 듯이 크게 벌어졌다.
“사, 사, 사장님! 이, 이거요. 진짜로 가은 누나 사인이에요?”
커다란 하트와 함께 예쁘게 그려진 사인을 보고 김현우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우와! 김현우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던 걸 참았다.
가은이 이 가게에 왔었다니.
김현우는 자리에 앉아있는 가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안 그래도 좋았던 기분이 더 좋아졌다.
“저, 사인이랑 사진 하나 찍어주실 수 있어요?”
김현우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사인 앞에서 브이자를 그렸다. 가게에 앉은 사람들이 그를 힐끗거렸지만,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온 그는 사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계속 히죽거렸다.
‘다음에는 가은이 앉았던 자리가 어딘지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김현우는 다음번 혼밥을 기대하면서,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 * *
“팔뚝 고정하시고요. 맞아요, 지금 딱 좋아요! 그대로 활을 현에 밀착시켜서, 활 끝까지 쭉 내려갈게요. 네, 네, 그렇게요! 잘 하셨어요!”
한 음악학원이었다.
손뼉을 짝짝 쳐가며 좋아하는 바이올린 선생님을 보고, 한태호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실력이 정말 빨리 느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칭찬하셔도 드릴 것도 없는데……. 허허.”
한태호가 쑥스러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유채가 가져다준 바이올린이 얼마나 삶의 활기가 되는지 몰랐다.
택시를 운전하면서, 아름다운 바이올린 곡이 라디오에서 나오면 언젠가는 그 곡을 연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신이 났다.
곰곰이 한태호를 보며 생각하던 바이올린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이번 연주회 나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학원에서는 일 년에 네 번씩 작은 연주회가 열렸다.
지난달에는 한태호도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한태호처럼 어른들도 있었지만 보통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아이들이 많았다.
“예, 예?! 연주회요? 아직 너무 빠른 건 아닐지…….”
놀라서 그만 큰 소리로 되물어 버렸다.
“선생님 정도면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지금 하는 곡도 한 곡 다 돌았잖아요?”
“어, 어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땀을 뻘뻘 흘리던 한태호는 쾌활한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는 거절도 못하고는 어영부영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연주회라고?’
한태호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아빠, 왜 그래?”
주말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유채는 한태호를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보통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오는 날에는 한태호는 콧노래를 한껏 흥얼거리면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한태호는 유채의 표정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이야.”
연주회를 권했다는 선생님의 말을 전하자, 유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뭐? 그럼 빨리 옷 사야하는 거 아냐? 공연하려면 좀 차려입어야 될 거 아니야. 월말이면 시간도 없는데?”
이럴 때가 아니지, 라고 중얼거리던 유채는 곧장 핸드폰을 들어서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찾기 시작했다.
연주회에 참석할지말지 아직 결정도 안 했던 탓에, 한태호는 잔뜩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차피 집에 검은색 정장은 있으니까. 굳이 옷을 새로 살 필요는…….”
“우와! 아빠, 이 하얀색 나비넥타이 귀엽다! 아빠한테 완전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것 참, 난리났네.’
환하게 미소 짓는 유채 앞에서 한태호는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한태호의 앞에는 언제나와 같이 포슬포슬한 계란말이 하나가 앞에 놓여있었다.
엉겁결에 연주회에 나가는 자신을 유채가 무척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이야기를 들은 우빈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런 밝은 미소에 응답할 자신이 없어 한태호는 괜히 계란말이로 시선을 떨구었다.
“하지만, 무대 같은 건 올라가 본 적도 없습니다. 가족도 초대해도 된다고 하는데, 만약 유채가 왔는데 실수라도 하게 되면…….”
말끝을 흐리는 한태호를 보고는 우빈이 물었다.
“사장님. 따님은 아버님이 연주하는 바이올린이 듣고 싶은 거 아닐까요?”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학예회도 그렇잖습니까. 춤을 추는데, 팔 동작이 하나 틀렸다고 그동안 아이가 연습해 온 게 헛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사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러가고 싶은 걸 테니까요.”
우빈은 이전 봄이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
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봄이였지만, 그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애틋하고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한태호도 유채가 어렸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학예회에서 핸드벨이라는 작은 종을 가지고 여럿이서 연주를 했다. 그때 유채는 자신이 조금 빠르게 종을 울렸다면서 학예회가 끝나고 나서 엉엉 울었다.
‘그 쪼그만 게 얼마나 울던지.’
장미꽃을 안고서 서럽게 흐느끼는 걸 열심히 달래주었던 기억이 났다. 피자를 사주고 나서야 그제야 헤벌쭉 웃던 유채의 모습이 생각나서 한태호는 픽 웃음을 흘렸다.
“하긴, 유채는 제가 하는 음악을 들으러 오는 거긴 하니까요.”
한태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연주를 듣고 싶다면 그냥 집에서 너튜브나 CD로 들으면 되는 세상이었다.
“예. 부담 없이, 즐기고 오세요. 저는 사장님이 아주 잘 해내실 거라 생각합니다.”
“허허, 그래요. 한 번, 잘 놀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한태호는 낮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밤에는 열심히 손가락 자리를 짚는 연습을 했다.
드르렁.
그렇게 손가락으로 연습하던 한태호는 바이올린을 껴안고 자기 일쑤였다.
* * *
“사장님, 저희도 주문이요!”
익숙한 목소리에 우빈이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유채가 있었다.
유채와 한태호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새롭게 단장한 가게를 보고는 다들 감탄했다.
“참, 그리고 이거 개업 선물이에요. 확장 축하드려요!”
유채는 히히 미소 지으면서 화분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이것도 받으십시오.”
옆에서 한태호가 조금은 수줍은 표정으로 티켓을 내밀었다.
“이건……?”
“지난번 말씀드린 연주회 티켓입니다. 강 사장님도 꼭 초대 드리고 싶었거든요. 학원에서 하는 작은 연주회지만, 저 말고 다른 사람들 공연은 제법 들을 만할 겁니다. 괜찮으시면 보러오세요.”
티켓을 본 우빈의 안색이 환해졌다.
“와아, 감사합니다. 봄이도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봄이도 갈 수 있을까요? 봄이가 아직 공연장에 데리고 가기에는 조금 어릴 것 같아서…….”
“아아,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연령 제한이 있는 공연도 아니고, 또 대부분 지인들이 오는 거라 그렇게 엄숙한 분위기는 아닐 겁니다. 마음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우빈은 티켓에 적혀있는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마침 딱 우빈이 갈 수 있는 시간이어서 기쁜 마음으로 대답했다.
“꼭 가겠습니다! 정말 기대되네요.”
빈말이 아니었다. 우빈은 유채가 오늘밥집에서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주었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때의 한태호의 표정이란.
미처 카메라로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한태호는 쑥스러운지 흐흐 웃으면서 메뉴판을 살폈다. 오늘 메뉴는 청국장 정식이었는데, 청국장과 계란후라이, 오이소박이와 어묵볶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청국장 정식을 두 개 주문한 한태호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거랑……”
그가 늘 계란말이를 추가하는 걸 알기에 우빈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란말이 하나 추가하면 될까요?”
“아, 아니요.”
어라, 틀렸나?
단호한 한태호의 표정에 우빈이 잠시 당황했을 때였다.
이내 한태호의 손이 브이자를 그렸다.
“오늘은 두 개 부탁드립니다.”
그가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