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69
집밥을 너무 잘함 69화
어느 어두운 밤이었다.
봄이는 끙끙거리며 잔뜩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봄이는 한없이 달리고만 있었다.
-돌아와, 돌아와야 해. 네가 있어야할 곳은 여기야.
봄이는 싫다고 소리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무수히 손을 뻗는 검은 손들. 봄이는 도망쳤지만 마치 늪에 빠진 듯이 자신의 발은 푹푹 땅속으로 꺼져만 갔고, 몸부림치던 봄이가 글썽거리면서 발버둥을 쳤다.
가라앉는 몸과 함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공포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래, 너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니까.
몸은 점점 가라앉았지만 봄이는 고개를 애써 흔들었다. 자신이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 조금 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의 공간.
봄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아.”
그리고 그때. 하늘에서 날아다니다가 땅으로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봄이가 헉헉거리면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하려는 듯 봄이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티라노 인형, 그리고 우빈.
꿈에서 깨어난 봄이 앞에는 우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봄아, 괜찮아?”
식은땀을 잔뜩 흘리는 봄이 앞에서 우빈이 놀란 표정으로 봄이를 살폈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데려가려는 우빈을, 봄이가 옷깃을 잡았다.
“갠챠나.”
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우빈의 품 안에 달려들어 안겼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봄이가 악몽을 꾸는 일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식은땀까지 잔뜩 흘리는 건지. 우빈은 바들바들 떠는 봄이의 이마에서 땀을 닦아주었다.
“무서운 꿈 꿨어?”
“……웅.”
봄이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아, 있자나.”
“응, 봄아.”
“……노래 부러쥬세요.”
“노래? 어, 어. 알겠어.”
우빈은 살짝 당황한 듯한 표정을 보였지만 이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었다.
“아빠가 봄이 잠에 들 때까지 자장가 불러줄게.”
몇 개월 전이었다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할지 고민이 되었겠지만, 수십 가지의 동요가 머릿속에 들어있는 우빈은 그중에서도 하나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빈의 목소리가 듣자 안심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또다시 그 검은 손한테 끌려갈까 봐 무서웠는데.
우빈의 목소리와 함께 검은 형상들은 스르륵 흩어졌다.
봄이는 안심하며 이내 잠이 들었다.
* * *
“아빠아!”
다음 날 아침.
어제 악몽에 시달렸던 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봄이가 활기찬 목소리로 우빈을 마구 흔들어댔다.
우빈은 잔뜩 잠에 잠긴 목소리로 되물었다.
“응? 왜 그래.”
“주마농쟝! 가고시퍼요!”
“…….”
모처럼 휴무일. 달콤한 늦잠과 아늑한 이불 안에서 계속 느긋하게 있고 싶었지만, 기대에 찬 봄이를 보니 얼른 일어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 가자.”
“녜에!”
활기차게 대답하는 봄이를 보면서 우빈은 픽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 좋을까?
그렇게 찾아간 텃밭은 상추가 무럭무럭 자라나 있었다.
‘우와, 이건 또…… 엄청나게 자랐네.’
우빈이 혀를 내둘렀다. 볼 때마다 신기했다.
절대 정상적인 속도로는 이렇게 자랄 수 없었다.
아마도 봄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 신비한 힘 때문이려나.
우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봄이를 쳐다보았다.
“상츄우, 상츄!”
봄이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열심히 지난번에 심었던 상추를 밭에서 뽑고 있었다.
‘하긴, 상추는 잠을 잘 오게 해주니까.’
한편 열심히 상추를 수확하고 있는 둘을 보고, 옆에 텃밭에 있던 사람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며 물었다.
“그 집은 비료를 뭐 써요? 매번 쑥쑥 자라나는 것 같아.”
“아, 하하…… 그게요.”
우빈은 곤란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차마 정령들이 도와주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봄이는 팔을 휘저었다. 그와 함께 곧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왔다.
“……조그맣다.”
원래는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말이 튀어나갔다.
다람쥐는 그 말을 들은 듯이 볼을 빠방하게 부풀렸다.
파바박! 다람쥐가 앞발로 열심히 땅을 팠고, 봄이가 땅을 판 자리에 씨앗을 새로 심었다.
다람쥐는 그렇게 잡초도 뽑고, 훌륭한 농사꾼으로 일을 했다.
“봄이야, 방금 친구는 뭐야?”
아무래도 그냥 다람쥐는 아닌 것 같았다. 봄이가 부른 인어 친구들처럼,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우움, 이름……. 찍찍이.”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읽어준 동화책에서 대충 지은 이름인 것 같았지만.
봄이가 그렇다는데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람쥐, 귀엽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산에 갔을 때 본 적 있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체구에, 볼에는 무언가가 가득 들어있고.
갈색과 흰색 줄무늬로 되어있는 털.
우빈은 언젠가 한 번 다람쥐를 쓰다듬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람쥐가 킁킁 우빈의 손을 냄새를 맡더니 팔을 따라 우빈의 어깨 위를 타고 올라왔다.
“우와아.”
우빈은 살짝 놀랐지만 어깨에 있는 다람쥐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살짝 쓰다듬어도 될까?
우빈은 검지손가락을 살짝 들이밀었고, 다람쥐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우빈의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쓰담쓰담.
기분 좋은 듯 나른하게 눈을 깜빡거리는 다람쥐를 보고는 우빈은 당장이라도 다람쥐를 집으로 납치해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아빠아.”
“응?”
“찍찍이, 나?”
“그게 무슨 뜻이야?”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우빈이 되물었지만, 봄이는 탐탁치 않은 듯이 팔짱을 끼고는 볼에 잔뜩 바람을 넣은 채로 우빈을 보고 있었다.
“흥.”
급기야는 몸을 돌려서 잡초를 하나하나 뽑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 딸이지.”
“늦어써.”
단단히 삐진 봄이를 위해서 우빈은 무언가 봄이를 위한 특선 요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아, 뭐 먹고 싶어? 아빠가 봄이 먹고 싶은 거 다 만들어줄게.”
“……다 만드어주 꺼야?”
“응응.”
“구로면…… 오무라이스. 띠라노도 그려죠.”
봄이가 그거면 용서해 줄 마음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빈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앞으로 봄이 앞에서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하나는, 티라노 프린세스가 있어 세상이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티라노 프린세스는 신이었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 * *
그렇게 봄이와 화해의 오므라이스를 먹고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즈음이었다. 하늘청과의 이상호가 찾아왔다.
“흠흠, 혹시 오늘 말이야. 많이 바쁜가?”
오늘은 휴무일이기도 해서 크게 할 일이 없었다.
그런 우빈의 대답을 들은 이상호의 안색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이상호는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그럼 말이야…… 잠깐 낚시 가지 않겠어?”
하늘청과의 이상호가 우빈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박길복에게도 매번 낚시를 권했지만, 박길복은 배멀미가 심했다.
“저, 그런데 봄이를 같이 데려가야 해서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며 거절하려고 하는 순간, 봄이가 눈을 빛냈다.
“물꼬기? 하라버지, 물꼬기 자바요? 나도 갈래.”
“그으래?”
든든한 아군을 얻은 이상호의 눈이 빛났다.
이제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사람이 두 명이 되었다. 우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야 거센 파도를 헤치고 다니는 배낚시가 최고기는 하지만, 방파제에서 하면 위험하지 않아. 사람도 둘이고. 대신, 하루 치 채소는 공짜로 줄게!”
“하루치를요?”
“그래, 잔뜩 가져가!”
‘끄응.’
평소 같았으면 바로 거절했을 테지만, 악몽을 꾼 봄이를 생각하니 조금 신경이 쓰였다.
자신도 모르게 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싶어서였다.
‘이렇게 가고싶어하는데, 한 번 같이 갔다올까?’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갑작스레 결성된 낚시 원정대.
우빈과 봄이, 그리고 이상호와 박길복은 낚시를 위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은 박길복이 하고, 우빈은 그 옆의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바다, 푸룬빛 바다~!”
봄이는 잔뜩 신이 나서 창밖을 보며 발을 동동거렸다.
뒷좌석에는 봄이와 이상호가 앉았다.
박길복이 툴툴거렸다.
“에이참, 영감님은 아직도 무슨 낚시를 한다고.”
그러면서도 박길복은 이상호가 낚시를 간다는 말에 군말 없이 자신이 운전을 한다며 따라왔다.
곧이어 방파제에 도착했다.
박길복은 낚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면서, 이따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고는 떠났다.
준비해 온 캠핑의자에 셋은 쪼르르 앉아서 낚싯대를 펼쳤다.
그렇게 한 시간 후.
-노래라도 들으면서 오랜만에 바다나 보고 드라이브나 해야지!
‘……나도 그냥 박길복 씨 따라갈 걸 그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미동이 없는 낚싯대를 보고 우빈은 조금 후회했다.
“덥지는 않아?”
“응! 찌워내.”
봄이는 어느새 이상호의 선글라스를 쓰고 주스를 빨대로 쪽쪽 빨고 있었다.
혹시라도 봄이가 더울까봐 우빈은 아이스박스 안에 봄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잔뜩 넣어두었다.
한참을 그러고 앉아있을 때였다. 중간에 아주 작은 물고기 하나가 손에 들어왔다.
“너무 작은 물고기는 되돌려줘야 해.”
“우움? 왜?”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이상호가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지 턱을 쓰다듬었다.
“엄마 물고기랑 아빠 물고기가 갑자기 헤어져서 슬플 수 있으니까.”
그 말을 들은 봄이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더니 얼른 물고기를 놓아주었다.
“그르쿠나. 잘 가, 아기 물꼬기!”
봄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흘렀다.
‘……조용하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저 고요한 낚싯대를 바라보고, 낚시 의자에 앉아있던 이상호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낚싯대를 놓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봄이 안 심심해?”
“웅!”
봄이는 이상호가 자는 동안 어느새 인어들을 불러 놀고 있었다. 옆에 있는 인어들과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까르르 웃는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한참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동도 없는 낚싯대를 보면서, 우빈은 반쯤 해탈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어어, 어, 어! 사장님, 사장님!”
우빈의 낚싯대가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다. 놀란 우빈은 황급히 의자에서 졸고 있는 이상호를 흔들어 깨웠다.
이상호가 벌떡 일어나면서, 정령들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정령들이 사라진 곳에서 잔물결이 일렁였다.
“뭐, 뭐야! 입질 왔어?”
이상호는 입가에 흘린 침을 손등으로 닦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흔들리는 낚싯대를 쳐다보았다.
낚싯대를 조금 잡아보니, 웬걸.
무게가 엄청났다.
우빈과 이수호 둘이 낚싯대를 잡고 있는데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각에, 이상호가 소리쳤다.
“잡아, 잡아! 꼭 잡아야 해!”
“큰 물고기예요?”
“크다마다! 아니, 틀림없이 본 적도 없을 만큼의 사이즈일 거야. 이건 낚시꾼의 감이야!”
낚시꾼의 감이라고 말하기에는 계속 옆에서 졸고 있던 게 다였기 때문에 약간의 신뢰 문제는 있었지만, 어쨌든 우빈은 이상호를 믿어보기로 했다.
“잠깐, 잠깐! 바늘털이다. 오른쪽으로 낚싯대 기울이고 살짝 눌러 줘!”
우빈은 그렇게 낚싯대를 들고 힘겨루기를 했다.
‘와, 진짜 무겁네. 얼마나 큰 녀석이길래 이렇게 무겁지?’
아무리 릴을 감아도 좀처럼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는 물고기.
옆에서 지켜보는 이상호는 낚싯줄이 팽팽해서, 혹시라도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촤아아악!
세찬 물결과 함께 커다란 물고기가 물 밖으로 올라와 퍼덕거렸고, 이상호와 우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가락으로 물고기를 가리키며 덜덜 떨던 이상호가 곧 소리쳤다.
“시, 시, 심 봤다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