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70
집밥을 너무 잘함 70화
“세상에, 사진이 없었으면 진짜 못 믿었을 거야. 이 양반이 또 이렇게 허풍치네, 하고. 생선이 어쩜 이렇게 크다냐?”
“뭐야, 결국에는 강 사장이 잡아왔다는 이야기구만. 나는 또 뭔가 했네.”
다 같이 모인 오늘밥집에서, 김씨 할머니는 떠벌거리는 이상호를 보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이상호의 휴대전화에는 양손에 묵직한 물고기를 안고 활짝 웃는 이상호의 사진이 있었다.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풍경에 이상호가 입이 귀에 걸릴 것처럼 헤죽 웃었다.
‘그래, 나여도 사진이 없다면 못 믿었겠다.’
이상호는 사진을 찍기를 잘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요즘 컴퓨터 합성은 이런 것도 되냐면서 좀처럼 믿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믿든 안 믿든. 어차피 월척을 낚은 이상호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내가 낚시를 하는데, 이렇게 큰 놈은 본 적이 없어! 봄이랑 우빈이가 정말 복덩이지, 복덩이야! 암, 그렇고말고!”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껄껄 웃는 이상호를 보고 할머니들은 목소리가 커서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며 그를 나무랐다.
봄이는 어느덧 김씨 할머니의 품에 안겨서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그런 봄이를 김씨 할머니가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너무 큰 물고기를 낚은 나머지, 아무리 박길복을 포함해도 넷이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우빈이 매운탕을 만들어준다는 말에 이상호는 신이 나서 동네 친구들은 김씨 할머니와 정씨 할머니를 불러왔고, 정씨 할머니는 테이블에 앉아 기대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흐.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강 사장이 특식을 해준다, 이거죠? 어우, 맛있겠다아. 이렇게 큰 물고기랑 강 사장 요리 솜씨면 더 말할 것도 없지. 벌써 침이 고이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아유우, 우리가 얻어먹는 건데. 천천히 만들어, 천천히.”
우빈은 커다란 무를 하나 꺼냈다. 얼마 전 주말농장에서 캐온 싱싱한 무였다. 흔히 마트에서 파는 길쭉하고 얄쌍한 무와 달리, 주말농장에서 봄이와 같이 심은 무는 모양이 제멋대로에 오동통했다.
‘우선은 얇게 슬라이스한 무를 냄비에 깔아주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냄비에 무를 깔아놓은 뒤, 위에는 오늘 잡은 물고기의 반을 손질해서 올려놓았다.
“크긴 정말 크네.”
다시 봐도 큰 물고기였다. 우빈은 다시 봐도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물고기를 토막 냈다.
물고기가 전부 물에 잠길 때까지 자작하게 물을 부어주었다.
그다음에는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이후에는 고추장과 간장을 넣어서 팍팍 끓여주었다.
“크으, 벌써 매운탕 냄새가 나네. 얼른 먹고 싶다.”
대파와 양파, 그리고 매운 맛을 더해줄 고추까지.
얼큰한 매운탕을 보고 다들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고, 맛있겠다. 그런데 봄이는 안 맵겠어?”
걱정스러워하는 정씨 할머니를 보고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봄이가 생각보다 매운 걸 잘 먹더라고요.”
그래도 조금 매울 수 있으니, 봄이에게는 물을 더 부어서 희석시킨 매운탕 국물을 따로 건네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얼큰한 매운탕.
생선 머리를 통째로 넣어서 국물을 냈다.
국물을 마시고는 이상호가 크으, 하고 못 참겠다는 듯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셨다.
“역시 국물맛이 장난 아니구만. 어떻게 이렇게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자아낼 수 있지?”
이상호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김씨 할머니와 정씨 할머니도 감탄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강 사장이 정말 요리를 잘해. 우리도 요리라고는 질리도록 몇 십 년을 해왔는데. 어린 사람이 어쩜 이렇게 손맛이 좋은지.”
정씨 할머니의 말에 우빈이 쑥스러운 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손맛이 좋다는 것보다 한식 만드는 사람에게 더 최고의 칭찬이 있을까?
흔히들 한식은 감으로 해야하는 요리라고 말하는데, 감보다도 본능에 가까워보였다.
투명하던 생선살이 매운탕에 알맞게 익었다.
매콤한 국물과 함께 쌀밥을 먹었다.
“키야아! 큰 생선에 이렇게 맛있는 매운탕까지 먹다니. 행복하다, 행복해.”
이상호는 매운탕을 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이런 행복을 하루치 채소로 얻을 수 있다면,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모두들 밥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간은, 봄이와 우빈과 함께 가면 대어를 낚을 수 있다는 말에, 당분간 우빈에게는 같이 낚시를 가자는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 * *
“하아아. 이번에는 또 어디에다 취재를 가야한담.”
옥상에서 여자가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그때 여자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배고프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지?
분명 음식도, 레스토랑도 좋아해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 여자의 일이다보니 요즘에는 저녁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참, 저번에 그때 택시기사님이 맛있다고 한 밥집이 있었는데. 한 번 거기라도 가볼까?’
그렇게 여자는 너털웃음을 짓던 택시기사를 떠올리며, 기대에 가득 찬 채로 오늘밥집으로 향했다.
“어디 보자, 여기인가? 와, 오늘 메뉴는 부대찌개잖아?”
강은지가 뛸 듯이 기뻐했다.
강은지는 부대찌개를 참 좋아했다.
집에 있을 때, 어릴 때부터 일요일만 되면 어머니는 부대찌개를 해주었다.
강은지와 동생들. 그런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서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깡통햄과 라면이 듬뿍 들어간 부대찌개를 해주었다.
-자, 오늘 이야기는 과연 진실일까요, 거짓일까요?
강은지는 잠이 많은 편이어서 일요일 아침마다 해주는 만화영화는 거의 챙겨보지 못했다. 그 대신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일요일에 틀어주는 텔레비전 재연쇼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오늘 이야기는 보석상을 털은 한 강도가, 보석으로 인해 다시 강도를 당한 이야기였다.
“에이, 저런 이야기가 어디 있어? 저건 분명히 거짓이다, 거짓.”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진실! 이었습니다!
말도 안 돼, 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떠는 패널들.
그런 강은지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을 때, 동생이 히죽거리며 웃었다.
“것 봐, 누나. 내 말이 맞잖아.”
“어쩌라고. 저번에는 내가 맞았거든?”
“자자, 밥 먹게 상 펴라.”
“네에.”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등산을 떠났기 때문에, 식사하는 건 세 명이었다.
셋은 옹기종기 모여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일요일 부대찌개는, 저한테 그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자취하고 나서부터는, 아무래도 먹기가 힘들어서요.”
지금 강은지는 회사 때문에 집에서 나와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강은지의 요리실력은 엄청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할 만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양이었다.
친구들이 자취방에 놀러오면 모를까.
또 본가는 기차를 타고 두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던 강은지가 마침 1인 부대찌개라는 입간판을 보고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너어무 기대된다. 맛있으면 좋겠다, 진짜!’
강은지가 기대감에 잔뜩 젖어있을 때였다.
그런데 요리를 하는 우빈의 옆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어라, 어디서 본 적 있나?’
강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래 봬도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는 편인데.
‘으으음.’
한참을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강은지. 결국 생각이 나지 않자 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우빈은 우선 고추장과 된장, 국간장과 다진마늘로 부대찌개의 양념장을 만들어주었다.
베이컨은 싹뚝 썰고, 소세지도 같이 통통 썰어주었다.
떡국떡을 미리 물에 불려넣고, 양파를 채 썰었다.
김치와 아까 만들어 둔 양념, 떡과 베이크빈, 그리고 사골육수를 몽땅 넣어 보글보글 끓이기 시작했다.
작은 뚝배기에 담겨 나온 부대찌개를 보고는 강은지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와아. 이거예요, 이거!”
김치 때문에 매콤하지만 너무 맵지는 않았다.
강은지는 우선 잘익은 햄을 먼저 쌀밥 위에 올려놓았다.
숟가락 위에 밥을 놓고, 햄을 얹은 다음에 후후 불어 한 김 식혀서 입안에 넣었다.
잘 익은 햄이 말캉거리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흩어졌다.
“맛있다아.”
이번에는 라면을 먹을 차례였다. 꼬들꼬들하게 잘 익은 라면을 보자 얼른 먹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강은지는 황급히 젓가락을 라면에 가져다 댔다.
후루룩.
‘부대찌개에 있는 라면은 뭔가 맛이 다르단 말이지.’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있는 부대찌개는 국물만 있어도 좋았다.
배달이나 포장을 하려고 생각해 보았지만, 전부 3인용 기준이어서 아쉬움만 안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었다.
‘으으음.’
이렇게 맛있는 부대찌개를 혼자 오로지 즐길 수 있다니.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은데. 그런데 여기, 메뉴가 매일 바뀌는 것 같으니까 또 먹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려나.’
강은지가 기쁨과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 사장님. 혹시 부대찌개는 다음에 또 언제 나오나요? 너무 맛있었어서요.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은데, 그때 찾아오려고요.”
그런 강은지를 보고 우빈이 웃으며 말했다.
“혹시 다음에도 드시고 싶으실 때는 전날에 전화 주세요. 재료 사서 준비해 놓고 있겠습니다.”
“저, 정말요?”
강은지가 눈을 반짝였다. 들뜬 나머지 그녀의 목소리가 저절로 커졌다.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재료가 준비되어 있기만 한다면, 그다지 어려울 점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혹시 다른 사람들이 부대찌개를 많이 안 찾으면 어떻게 해요?”
부대찌개는 다른 요리보다는 쉽게 완성되는 편이었고, 들어가는 재료도 많아 어차피 다른 손님들이 부대찌개를 찾지 않는다면, 밑반찬으로 활용하면 되었다.
“두부는 두부조림으로 나가고, 비엔나 소세지야 소세지야채볶음도 있고, 볶음밥으로 써도 되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강은지가 고개를 얼른 끄덕였다.
나만의 부대찌개집이 생기다니.
‘아저씨 말 듣고 찾아오길 정말 잘했어.’
강은지는 새삼 지난번 만난 택시기사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앞으로 강은지는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지는 일요일 오전에는, 오늘밥집을 찾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 * *
“대박, 대박. 진짜야?”
강은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고 중얼거렸다.
오늘 다녀온 밥집이 꽤 마음에 들었기에, 인터뷰를 요청할 심산이었다.
그전에 미리 질문들을 정리해 가려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던 중이었다. 가볍게 기존 손님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려고 했던 건데, 이게 웬걸.
요즘 한참 화제의 불룩체인부터, 배우 가은까지.
이미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던 식당이었다.
가은의 인증샷 사진을 다시금 보고서야 강은지는 “그래, 전에 봤던 것 같아!”라고 화면을 보고 소리쳤다.
강은지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무리 파인 다이닝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잡지라고 해도, 명색이 이렇게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식당을 몰랐다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마우스 휠을 굴려가며 이리저리 오늘밥집에 대한 글을 읽어 내려갈 때였다.
“……그런데, 이 얼굴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지난번 가게에 갔을 때도 느꼈던 일이지만, 묘하게 우빈의 얼굴이 익숙했다.
순간 강은지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들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그의 사진을 보았다는 확신이었다.
그렇게 강은지는 서재에 꽂혀있는 몇 년치 분량의 잡지를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강은지는 펼쳐진 페이지에서 자신이 찾던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역시,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니까.”
강은지가 입꼬리를 올렸다.
* * *
그렇게 강은지는 다시 오늘밥집에 찾아갔다.
‘아, 얼마 전에 오셨던 손님이네.’
지난번에 부대찌개를 맛있게 먹어준 손님을 보고 우빈이 반가워하려던 참이었다.
“아씨에트에서 일하시던 강우빈 셰프님, 맞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