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74
집밥을 너무 잘함 74화
밑간한 소고기를 달구어둔 팬에 넣어 볶았고, 밥솥에 있던 밥을 함께 넣어주었다.
밥이 보일랑 말랑할 정도로 팬에 물을 부어주고는 우빈은 도마 위에 채소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동안은 애호박과 당근. 그리고 표고버섯을 잘게 채 썰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밥알과 채소가 모두 뭉그러질 때 즈음, 고소한 냄새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우빈은 그릇에 소고기죽을 옮겨담고, 김가루를 잘게 부수어 고명으로 올렸다.
소고기죽에서 나온 온기가 곧 이수진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맛있어요…….”
이수진이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지만, 밥알이 뭉그러질 때까지 충분히 밥알을 익힌 죽은 먹기 편했다.
또 소고기에는 기름이 너무 많지 않아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잘게 다져있어서 술술 입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편한 음식이라니.
너무 기름지지도, 영양소가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은,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듬뿍 담긴 음식을 먹고 나자 이수진은 그제야 생각이라는 걸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 ……이래서 사람들이 나를 먼저 챙겨야 한다고 말한 거구나.’
이수진은 그제야 주변 사람들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수진아, 먼저 너를 챙겨야 해. 희승이보다 너를 더 우선으로 여겨. 그래야 희승이도 잘 챙길 수 있는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수진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화가 났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소중한 아들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면서 속으로 길길이 날뛰었고, 또는 자신의 입장에서 서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속편하게 말할 수 있는 거라 쉽게 단정 지었다.
표정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이수진이니, 어쩌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거였어.’
주위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은 왜 그렇게 삐딱하게만 들렸을까.
“……오길 잘했어요.”
이수진이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왜 동생이 그렇게 오늘밥집에 와야한다고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먹기 편안하면서도 영양 가득한, 든든한 소고기 죽이었다.
그런 소고기죽을 먹은 이수진은 그동안 묵은 피로가 싹 내려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가게에 왔을 때의 힘없던 표정은 온데 간데도 없었다.
우빈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때, 차희승과 봄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우빈에게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또래인 봄이가 먹는 모습을 본다면 차희승도 음식에 조금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우빈은 얼른 단호박을 이용한 간식을 만들기로 했다.
단호박 속을 파낸 다음에, 계란 하나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치즈와 함께 칠리소스를 뿌려주었다.
오븐에 치즈를 넣은 단호박을 구워주자, 달콤한 단호박 냄새에 아이들이 코를 킁킁거렸다.
“하나씩 먹어.”
봄이와 차희승은 작은 치즈 단호박을 숟가락으로 천천히 떠먹었다. 쫄깃한 치즈가 듬뿍 올려져 있으면서도 단호박의 달콤한 맛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칠리소스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잡아주고 있었다.
열심히 단호박을 먹는 차희승의 모습을 보면서 이수진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해요. 안 그래도 희승이가 단호박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딱 희승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맛있게 먹어주니 다행이네요.”
아들은 신나게 단호박 찜의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단호박을 퍼내기 시작했다.
이수진은 아들이 단호박을 입안에서 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차희승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차희승이 울거나, 소리칠 때만 다가가다 보니, 이렇게 평화로운 순간은 잘 때 말고는 없었던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거였는데.’
이수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수진은 차희승의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맛있어? 엄마도 한 번 먹어볼까? 사장님, 저도, 한 그릇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슬슬 손님이 많아지면서 이수진이 돌아가려고 차희승을 찾을 때즈음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헉헉거리며 봄이가 우빈 쪽으로 다가왔다.
“아빠아, 아빠! 빠리, 이거 봐!”
봄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우빈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차희승이 크레파스를 손에 꽉 쥔 채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차희승은 옆에 누군가가 다가온 줄도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차희승이 그린 그림을 보고 이수진은 깜짝 놀랐다.
“이게, 희승이가 그린 그림이라고요?”
차희승이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은 반짝이는 가로등과 함께, 아름다운 노을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어두운 보라색과 노란색이 섞인 하늘도 멋졌지만, 특히 눈이 가는 건 가로등 불빛이었다.
가로등은 몇 가지 색을 섞어 마치 보석처럼 보였다.
시간이 멈춘 그림 속에서도 깜빡거리는 불빛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승이한테는 이렇게 세상이 보이는구나.’
한참 말없이 그림을 지켜보던 이수진이 겨우 눈을 떼었다.
“사장님, 곧 또 올게요. 오늘 주신 소고기죽, 너무 든든하고 맛있었어요.”
“뭘요.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기쁘네요.”
어차피 자신이 한 일은 밥을 한 끼 제공했을 뿐. 생각을 정리한 건 전부 이수진의 몫이었으니까.
우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든 편하실 때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수진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다리고 있겠다는 우빈의 말이 이수진에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네! 다음에 꼭, 다시 한번 찾아올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가로등은 좀처럼 고쳐줄 생각을 안 하네.”
여전히 깜빡이는 가로등을 보면서 이수진이 중얼거릴 때였다.
차희승은 이전처럼 또다시 물끄러미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에는 그 옆모습에 이수진은 좌절을 느꼈지만, 이제는 달랐다.
“재미있어?”
이수진이 쪼그려 앉아서 차희승의 눈높이에 맞춰보았다.
차희승의 그림처럼, 무언가 특별한 것이 보일까 싶어서 그랬는데.
“……그냥 가로등이네.”
그녀의 눈에는 역시, 단순히 고장 난 가로등일 뿐이었다.
이수진은 결국 무언가를 더 찾아보기를 포기하고, 차희승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상기되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통통한 볼과, 반짝거리는 눈.
차희승의 깜빡거리는 눈은 카메라처럼 계속해서 빛의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있었다.
‘역시 좋아. 귀여워.’
볼을 깨물어주고 싶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이수진이 차희승을 꼭 끌어안았다.
말랑한 볼이 이수진의 얼굴에 닿았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좋은 날이었다. 오랜만의 외출도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고, 소고기죽도 맛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차희승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이수진이 차희승을 꼭 끌어안았다.
아주 조금, 자신의 아들에게 비로소 한 발자국 다가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와아, 이거 너무 먹어보고 싶었는데…… 진짜 맛있어 보여요!”
얼굴이 화색이 되어서 감동받은 표정을 하고 있던 건, 이수진이었다.
가은의 메밀김밥을 꼭 먹어보고 싶었던 그녀였다.
“초장에 찍어먹어도 맛있더라고요. 조금 챙겨드릴까요?”
“네에? 초장이요?”
우빈의 말에 이가은이 조금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초장도 같이 부탁드릴게요.”
봄이는 우빈의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차희승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티라노 인형을 가져가 차희승 근처에게 내밀었다.
“왕, 와왕.”
티라노 인형의 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인사하는 시늉을 했다.
“와, 아앙.”
차희승이 반응하자 봄이가 더 신나게 말했다.
“왕왕, 왕!”
이수진이 떠난 이후에 우빈은 봄이에게 물었다.
“봄아, 아까 뭐라고 한 거야?”
“웅? 아아…… 비미이야!”
“비밀이에요? 알았어.”
끄덕끄덕. 배시시 웃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소풍이라. 봄이랑 한 번 나들이나 갈까?’
도시락을 싸서 선선한 가을바람을 즐기면 아주 좋을 것 같았다.
‘메뉴, 뭘로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우빈이 미소 지었다.
* * *
“어머머, 이쪽 단풍 예쁘다. 희승아, 이쪽으로 와! 여기서 밥 먹자.”
아직 초가을인 탓에 단풍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아직 푸른빛이 선연했다.
그중에서 이수진은 열심히 눈을 굴려 단풍이 조금 물들어있는 나무 밑으로 자리를 잡았다.
“읏차차.”
이수호와 함께 돗자리를 깔았다. 차희승은 푸른 잔디를 보자 좋다는 듯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넘어지지 말고!”
이수진이 소리를 치고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포장해 온 메밀김밥을 뜯었다.
‘이게 가은이 먹은 음식이구나.’
이수진이 한껏 들뜬 마음으로 포장용기를 열었다.
평소에도 메밀 소바를 좋아하는 이수진이었다. 간이 잘 배어 짭조름한 메밀면, 그리고 포슬포슬한 계란이 맛있었다.
깻잎과 오이가 향긋한 향을 내면서 산뜻함을 한껏 더해주고 있었다.
“으음, 맛있어!”
‘초장도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했지.’
이번에는 초장에 살짝 메밀김밥을 찍어보았다. 새콤한 맛과 함께 의외의 별미였다.
둘은 돗자리에 앉아 공원을 뱅뱅 돌고 있는 차희승을 지켜보았다.
“수호야.”
“응?”
“네 사장님, 괜찮은 분이더라.”
“그치? 정말 좋은 분이야.”
이수호가 미소 지었다.
우빈이 요리에 있어서는 엄격할 때도 있었지만, 서투르거나 실수를 해도 그런 점을 비난하거나 나무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좋은 곳에서 일하게 되었네.”
솨아아.
산들바람이 불어오면서 나무에 붙은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평일의 공원은 한적하면서 평화로웠다.
옆에는 돗자리에 다른 가족이 하하호호 웃으면서 앉아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부러워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달랐다.
뛰어놀고 있는 차희승의 모습을 보면서 이수진이 빙그레 웃었다.
요즘에는 남편과의 사이도 조금씩이나마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가끔 의견 다툼이 있기는 했지만, 지난번처럼 복도에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싸움을 벌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수호야. 고마워.”
이수진이 빙그레 웃었다.
밝게 웃는 이수진의 미소를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이수호는 하마터면 누나 앞에서 찔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랬다가는 아직도 그 나이 먹고 울보냐면서 놀릴 게 뻔했기에 애써 참았다.
“실력이 무섭게 늘더라고. 진작 미술을 시켰어야 했는데. 이런 재능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이수진이 중얼거렸다.
그간 자신은 차희승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부분이 보이니, 그 부분을 그녀 자신이 노력해서 메꾸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희승이는 잘하는 게 달랐던 거네.”
“……그러게.”
그리고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참, 그리고 나. 이제 슬슬 다시 일 구하려고.”
이수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심이 담겨있었을지, 이수호는 짐작할 수조차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아붓는다고 했지만, 아들을 오히려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계속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투덜대기보다는, 이수진은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회사 다니면서, 조금 여유롭게 생각해 보려고. 그게 나한테도, 희승이한테도 더 나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