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75
집밥을 너무 잘함 75화
그렇게 말하며 이수진은 차희승에게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저 멀리서 해맑게 웃는 차희승을 보고 이수진이 손을 흔들었다.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해. 뭐든, 누나는 잘 해낼 테니까.”
이수호는 그저 누나가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누나가 결심한 일이라면, 뭐든 응원해 줄 생각으로 가득했다.
“희승이도 지금보다 내가 더 잘 돌봐줄게.”
“여기서 뭘 더 도와줄 수가 있어? 지금도 넘치도록 받고 있는걸. 이제 열심히 일해서, 빨리 네가 빌려준 돈 갚아야지.”
사실 이수호가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무너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도움을 요청하면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바로 달려와 주는 착한 동생이었다.
그리고 치료비 지원 이야기도, 이수호가 먼저 나서서 꺼내준 이야기였다.
다시 취직을 결심한 이유도, 그런 이수호에게 더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았던 점이 컸다.
지난번에 흘리듯이, 언젠가는 자신의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이수호는 말했다.
그때는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번에 오늘밥집에 다녀와서는 깨달았다.
생각보다도 사람에게 밥 한 끼는 중요하다는 것.
동생도 언젠가는 그렇게 따뜻한 한 끼를 손님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지금도 허둥지둥할 때가 많은 이수호는 어릴 때부터 덜렁거리던 동생이었다.
물건도 어찌나 잘 잃어버리는지.
한 번은 길가에 있는 고양이를 구경하다가, 옆에 잠시 내려놓은 가방을 깜빡 잊어버려 한참을 찾으러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큰 가방을 어떻게 잃어버리냐고 씩씩거렸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기억을 생각하며 킥킥 웃었다.
그런 이수호가 이제는 자신 옆에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야, 너 옷 거꾸로 입었나 봐. 사이즈표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데?”
“아, 어! 아까 제대로 입었는데? 잠깐 갈아입고 올게.”
이수호가 그렇게 화장실에 간 사이, 이수진은 가방에서 돌돌 말아진 그림 하나를 꺼냈다.
곧 이수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옷을 제대로 입고 있었다.
“참, 그리고 이거 사장님한테 전해줄래?”
“이게 뭔데?”
이수진이 건넨 건 차희승이 그린 그림이었다.
“다 예뻐 보였는데, 제일 나아보이는 걸로 골랐어.”
“이게 희승이 그림이라고? 누나, 진짜 큰일 날 뻔했다. 하마터면 이런 그림을 못볼 뻔했네.”
“그러니까. 아, 이제 다시 회사 가서 열심히 희승이 크레파스값 벌어야지.”
기지개를 켜는 이수진의 눈에는 이채가 돌았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이수호가 빙그레 웃었다.
“사장님이 좋아하시겠다. 고마워, 누나.”
그때 차희승이 이수진에게로 달려왔다.
황급히 달려오는 차희승을 보고는 이수진이 의아함에 몸을 일으켰다.
“엄마, 이리 와봐요.”
“왜 그래, 희승아? 그림 그리고 싶어? 크레파스 줄까?”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차희승을 보고 이수진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잘 보니 차희승이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있었다.
양손에 든 낙엽을 차희승이 이수진의 머리 위로 뿌렸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하늘하늘, 차희승의 손으로부터 빠져나와 천천히 흩날렸다.
“가을이에요.”
차희승이 배시시 웃었다.
온통 붉은 단풍잎이었다.
차희승이 하나씩, 자신이 보기에 예쁘게 물든 붉은 낙엽만 주워온 것이었다.
“으이구, 우리 예쁜 희승이.”
이수진이 차희승을 꼭 끌어안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해가 나뭇잎을 비추었다.
* * *
이수호는 다음 출근할 때 차희승이 그린 그림을 가져갔다.
차희승이 그린 그림은 붉은 단풍이 아름답게 피어난 그림이었다.
“정말? 내가 받아도 된다고?”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올 만한 멋진 그림이었다.
호수 근처에 나무가 있는 그림이었는데, 물결에도 반사된 나무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빈은 그림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이수호에게 다시 되물었다.
“그럼요. 이렇게 희승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다 사장님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전해달래요.”
직접 전해주고 싶었지만, 오늘은 병원에 예약이 되어있어 부득이하게 이수호에게 맡겼다는 말을 전했다.
“정말 재능이 대단하네. ……음, 가게 어딘가에 걸어둘까?”
집에 놓고 자신만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림이어서, 우빈은 오늘밥집의 벽 한쪽 면에 그림을 걸기로 했다.
이후로 종종 찾아온 손님들이 그림에 대해 물을 때마다, 우빈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와아, 정말 멋진 그림이네요! 누가 그린 거예요? 혹시 사장님이 직접 그리셨어요?”
“그럴 리가요. 이건 말이죠…… 특별한 손님이 준 그림이에요.”
오늘도 차희승은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다음에는 어떤 멋진 그림을 그려줄까.
‘기대된다.’
얼른 다음 그림을 볼 수 있기를.
우빈은 그림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흐흐흠.”
우빈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림이 담긴 액자를 천으로 닦고 있었다.
평소에 차분한 편의 우빈이지만, 오늘 그가 이렇게 신이 난 것은 바로 봄이와 산으로 가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길거리를 걷다보면 알록달록한 단풍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단풍을 보면서 우빈은 계속 나들이를 갈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조금만 물들면 가야지, 생각하던 우빈은 바로 오늘이 단풍을 보러가기에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우빈은 얼마 전 박길복과 했던 대화를 잠시 떠올렸다.
“애를 데리고 등산하려고?”
“올라가지는 않을 겁니다. 등산로 입구 근처에서 구경하다가 내려오려고요.”
바다 대신 산을 좋아하는 박길복. 그런 박길복은 근처에 우빈이 갈만한 산이 어디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가볍게 가려면 저번에 갔던 캠핑장 근처 산도 괜찮아. 위에 올라가면 경치가 끝내주는데.”
박길복은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있으면서도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산을 하나 추천해주었다.
마침 적당해 보이는 산이 하나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데?’
우빈은 핸드폰으로 산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슥슥 읽어내려갔다.
커다란 산은 아니기도 했고, 어차피 우빈은 등산할 생각은 없기는 했다.
봄이의 체력 문제도 있으니,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다는 산으로 가서 입구 쪽만 구경할 생각이었다.
봄이가 도도도 달려왔다.
“아빠아, 오눌 소풍이에요?”
“응응. 기대돼?”
“녜에에! 너무 싱나요!”
봄이는 팔을 꾸부렁 흔들면서 춤으로 불러도 될지 모르겠는 움직임을 했다.
잔뜩 흥이 난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입꼬리를 살짝 올릴 때였다.
“아빠아도 가치 춤!”
“……나도 추라고? 이렇게?”
우빈이 팔을 한 번 휘저어보았지만, 봄이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케.”
아까 볼 때는 이상한 춤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따라해 보려니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다. 손에서부터 웨이브를 타서, 어깨까지 꾸물렁거리는 것이 마치 산낙지 같은 움직임이 필요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봄이는 “우움, 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구 정도면 갠챠나.”
아무리 봐도 빨리 나가고 싶어 마지못해 허락해 준 듯싶었다.
“……얼른 준비해서 나가자.”
* * *
도착한 산은 단풍을 보려고 몰려든 관광객으로 온통 시끌벅적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이 대부분이었다.
“호옹.”
사람이 많은 광경을 보고 신기했는지, 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너무 귀엽다! 너 몇 살이니?”
“?”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모라요.”
봄이의 말에 아주머니가 깔깔 웃었다.
“자기 나이도 모르면 어떡해! 이거 하나 먹어.”
“감쟈합니다.”
꾸벅, 배꼽을 숙여 인사하는 봄이를 보고 아주머니는 “나이는 모르는데 예의는 바르네.” 하고 말하며 웃었다.
“아이랑 왔으니까, 이쪽 말고 저쪽 길로 가 봐요. 거기는 산책로라서 땅이 평평해서 걷기 쉬운데, 은근히 사람들이 잘 모르거든. 처음 온 사람들은 더 그렇고.”
“정말요? 감사합니다.”
이윽고 봄이의 손에는 구운 계란 하나가 놓여있었다.
“머거도 대요?”
“응, 아빠가 까줄게. 잠깐만.”
우빈은 그렇게 봄이에게서 계란을 받아서 껍질을 까주었다.
“다 됐다.”
봄이의 손에 다시 계란이 되돌아갔는데, 봄이는 먹지 않고 멀뚱거렸다.
이윽고, 봄이가 우빈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아, 하세요.”
봄이는 평소 우빈이 하던 것처럼 먹여주려고 했다.
우빈은 계란을 한입 작게 베어물고는 입에서 우물거렸다.
‘반숙이네. 봄이가 좋아하겠다.’
우빈은 완숙, 봄이는 반숙을 좋아했다.
둘은 계란을 먹으며 천천히 아까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길로 이동했다.
부부우, 부우.
어디선가 맑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뻐꾸기인가?’
과연, 산책로는 아주머니가 말한 대로 아는 사람들만 오는 길인 것 같았다.
조용하고 한적하면서도 단풍은 많았다.
“나무가 마나요! 머찌다.”
봄이는 한껏 들뜬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숨을 깊게 들이쉬자, 나무와 흙내음이 이어졌다.
‘좋다.’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늘밥집이 생각보다도 장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바쁘고 정신없이 일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봄이와 한적한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우빈은 기뻤다.
봄이는 우빈에게 손을 내밀었고, 우빈은 봄이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길을 걸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다.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은 이제 정말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날씨도 좋네.”
다행히 비도 오지 않고 그저 쾌적한 날씨였다.
“아빠아, 요기눈 나무가 옷 임고 이써.”
“그러게, 정말로 가을이네.”
붉은색, 노란색으로 알록달록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광경이었다. 평일이고,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인 까닭에 생각보다 등산객들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봄이가 있어서 본격적인 등산은 어려울 것 같아, 우빈은 그저 산 입구에서 단풍 경치를 즐기려고 했다.
‘……분명 그랬는데.’
“아빠아, 빠리, 빠리! 느저요!”
뒤처지는 우빈을 보고 봄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손짓했고, 우빈은 새삼 봄이의 체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자그마한 몸에 어떻게 저런 힘이 숨어있는 걸까?
우빈도 주방에서 긴 시간 동안 힘을 쓰는 요리사인 만큼 체력은 나름 자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가, 같이 가.”
우빈은 헉헉거리면서 봄이를 뒤따라갔다.
“호호, 아기가 아주 야무지네! 애기아빠는 힘 좀 내봐요.”
“네, 네…… 그러겠습니다.”
내려오는 등산객 아주머니가 봄이를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우빈이 힐끗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팻말을 쳐다보았다.
‘벌써 중간까지 왔네.’
“아빠아, 여기 무.”
봄이가 약수터를 가리켰다. 둘은 가져 온 텀블러에 사이좋게 나란히 물을 받았다.
황급히 벌컥벌컥 물을 들이켜는 우빈에 비해, 봄이는 아주 여유롭게 물을 마셨다.
“……봄이는 안 힘들어?”
“재미쏘!”
봄이가 이렇게 체력이 좋았던가?
우빈이 의아해하고 있는 와중에 봄이가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했다.
“바람이 마나. 깨끗해.”
공기가 맑다는 뜻일까.
아무튼 자연을 한껏 즐기고 있는 봄이를 보자 우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무 밑 그늘에 앉아있다 보니 어느덧 이마에 송골송골 흐르던 땀도 없어졌다.
바람도 시원하고 나무로 된 자리도 생각보다 편안해서, 우빈은 이곳에서 밥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럼 이제 밥 먹을까?”
우빈은 백팩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통을 꺼냈다.
“오디, 오디?”
봄이는 발그레한 볼과 함께 도시락통 안에 들어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기웃거렸다.
늦게 일어나서 우빈이 만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가뜩이나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는데, 어젯밤부터 나들이를 기대한 탓에 밤까지 눈이 말똥말똥했다.
곧 우빈이 도시락통의 뚜껑을 달칵거리며 열었다.
그리고 도시락통 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본 순간. 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예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