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8
집밥을 너무 잘함 8화
-여보, 지금은 상황이 불안하니까 걱정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 그래도 우리 둘이 열심히 살면……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무슨 말?
한태호가 천천히 꽃봉오리에서 아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고.
활짝 웃는 아내를 보며 한태호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와 생각해도 자신한테는 너무나 과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빨리 데려간 걸지도 모른다.
봄날의 제주도는 참 따뜻했다. 아내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봄바람에 살랑거렸고 진한 유채꽃 향은 끝없이 퍼져 나갔다.
신혼여행이라고 개중에서 제일 좋은 옷을 골라 입었을 건데도, 낡은 소매 끝에서 튀어나온 실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태호는 아내에게 다가가 소매 끝에 있는 실을 손으로 빙빙 잡아 돌렸고, 실이 투둑 끊어졌다.
고맙다고 생글 웃는 아내를 보고는 한태호는 고개를 홱 돌렸다. 언젠가는 저렇게 보풀이 쉽게 나오는 옷이 아니라, 질이 좋은 원단으로 만든 원피스를 아내에게 선물하리라.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초라한 남자가 몸을 수그려서 꽃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꽃은 잘 모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예쁜 꽃을 아내에게 주고 싶었다. 싱싱하게 피어오른 꽃을 하나 꺾어 아내의 귓가에 꽂아주었다.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유채꽃은 아내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상해요. 이 계란말이를 먹으니 활짝 웃던 아내가 떠오르네요. ……정말 맛있는 계란말이에요.”
그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그때 어디선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 위에 놓은 한태호의 휴대전화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번쩍이는 화면의 휴대폰을 보고는 한태호가 허둥지둥했다.
“아, 자,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여보세요?”
-아빠!! 아까 무슨 일 있었어? 목소리가 기운이 없던데. 그런데 또 지금은 괜찮네?
휴대전화 너머로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길래 한태호가 그리 허둥지둥 전화를 받는 걸까 내심 궁금하던 차였는데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어찌나 목청이 좋던지 가게 안까지 쩌렁거리며 울릴 정도였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어. 그나저나 너 이번 주까지 기말고사라며 아르바이트 간 거야? 용돈이 모자라면 아빠가 더 준다고 말했잖아.”
-기말고사 끝났어! 마지막 과제만 남았는데 그거 일찍 내서 이제 방학이야!
“그 제일 빡세다는 교수 거?”
-맞아. 어휴, 조사하느라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몰라. 그나저나 아빠 밥은? 또 라면 먹고 있는 거 아니야?
“제대로 밥 먹고 있어. 여기, 오늘밥집이라는 곳이 시장에 새로 생겨가지고.”
-오늘밥집? 그게 어디에 있는 곳인데?
갑자기 위치를 묻는 아이의 말에 한태호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순순히 답했다.
“시장 입구에 있어.”
-으응, 알겠어!
전화는 또다시 뚝 끊어졌다. 뭐를 알았다는 건지. 똑같이 끊어진 전화였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미소를 지으며 한태호가 픽 웃었다.
“따님이랑 사이가 좋으신가 보네요?”
“제 딸이 조금 살뜰한 편이긴 하지요. 이건 딸이 선물해 준 이모티콘입니다. 이게 요즘 애들한테 인기 있는 이모티콘이라고 하더군요.”
한태호는 그렇게 휴대전화를 자랑스럽게 내밀었고, 동글동글한 갈색 곰이 그려진 이모티콘을 우빈이 목을 빼꼼 내밀어 구경할 때였다.
그때 활달한 목소리와 함께 가게의 문이 벌컥 열렸다.
“아빠!!”
“유, 유채야? 여기는 어떻게 온 거야? 너 지금 학교 아니었어?”
긴 생머리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의 한유채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고, 그런 한유채를 본 한태호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테이블 위에 있던 물컵이 조금 흔들리며 안에 있던 물이 빛에 일렁거렸다.
“어떻게 알기는, 아빠가 아까 오늘밥집에 있다며! 아까는 버스에서 카드 찍고 내리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 집에 갔는데 아빠가 없길래,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있나 해서 온 건데. 기말고사도 끝났겠다, 아빠 보려고 빨리 왔지!”
한유채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아, 맞다. 아빠 이거 받아요. 내 선물이야!”
그렇게 말하며 한유채는 옆에 내려두었던 커다란 케이스를 한태호에게 내밀었다. 뒤로 몸이 밀려나면서 케이스를 받았다.
“그럼, 너 아르바이트한다는 게……. 아빠 선물 사주려고 그런 거였어?”
한유채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응. 사실 처음에는 용돈을 모아보려고 했는데, 아빠 생일 선물을 아빠가 준 용돈을 모아 사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이번 달 알바비로 산 거야. 아, 공부에는 지장 가지 않게 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요! 오늘 아침 것도 시험 잘 봤어. 이번에도 장학금 받을 것 같아!”
한유채는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윙크했다.
빨리 열어보라는 한유채의 성화에 우빈을 슬쩍 쳐다보았다. 남의 가게 안에서 선물 개봉을 해도 되려나?
걱정과는 달리 우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궁금하다며 얼른 열어보라고 했다.
한태호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진녹색 벨벳 안에 바이올린이 들어있었다.
“바이올린……?”
주황빛이 도는 연한 갈색의 바이올린을 한태호가 들고는 중얼거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야, 한태호가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에게 바이올린이라니.
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그의 얼굴에 순간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아까 그 택시에서 만났던 젊은 남자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멋진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바이올린은 마치 용왕에게 바치는 비싼 토끼 간처럼 덧없이 느껴지기만 했다.
“이런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한태호의 시야에 계란말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계란말이의 맛을 떠올렸다.
오늘 이곳에 와서 우빈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야 한태호는 깨달았다. 아내의 타고난 요리 실력인 줄 알았던 부드러운 계란말이는, 사실 품을 아주 많이 들인 음식이었다.
몇 번이고 체를 거르고, 약불로 오랜 시간 계란말이를 만드는 우빈을 보고 한태호는 생각했다.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저렇게 시간이 걸려 만드는데, 아내는 그렇게 부드러운 계란말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연습하고 또 노력했을까?
한태호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렇게 넘치는 사랑을 아내에게 받았고, 딸한테도 애정을 받고 있었다.
한태호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다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연습 많이 해서 나중에 들려줄게.”
“응. 알겠어, 아빠! 기대할게!”
밝은 목소리에 한태호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부드러운 계란말이와 함께 어디선가 산뜻한 바이올린 선율이 들리는 듯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은 흔히 봄의 소나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베토벤이 직접 붙여준 이름은 아니었다.
봄꽃의 요정이 겨울잠에서 피어나 춤추는 듯한 경쾌한 바이올린 활의 움직임.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노래한 이 곡에 베토벤이 죽은 이후의 사람들이 붙여준 부제였다.
하루 종일 야, 너, 라는 호칭에 시달렸지만, 그게 한태호를 규정할 수는 없었다.
오늘의 한태호는 진상도 붙잡지 못하는 불쌍한 택시기사가 아닌,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자 사랑받는 아버지였다.
내일은 다시 힘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여기도 오늘의 메뉴 하나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밥집에 점점 사람이 늘었다. 정신없이 주문을 받는 우빈에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물었다.
“주차는 어디다 하면 됩니까?”
“가게 앞에 한 자리 있고요, 혹시 자리가 없으면 왼쪽 공원 옆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에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요즘 들어 이렇게 주차를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리고 주차를 묻는 손님은 주로 혼자서 오고는 했다.
의아해하던 차에 답은 쉽게 나왔다.
“같이 일하는 한 씨가 여기가 맛있다고 해서 와 봤는데, 정말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무래도 저번에 왔던 택시기사였던 것 같았다.
자신은 요리사였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건 당연한 일일 뿐인데. 쑥스럽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바이올린 연습은 잘하고 있을까? 어떤 곡을 연주하는지 궁금해하며 우빈이 점심 장사를 마무리했다.
“팀장이 요즘 저한테 점심마다 어딜 가냐고 꼭 묻더라고요. 이직 준비하러 학원이라도 다니는 거 아니냐고 실실 쪼개면서요. 아니, 이직이 걱정되면 평소에 좀 잘해주든가. 안 그래요?! ……아,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아무튼 옷 가지고 왔습니다!”
김성훈은 주말마다 본가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리고 그런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을 오늘밥집에 발 도장을 찍고 있었다. 저녁은 물론이고, 점심에도 틈이 날 때마다 찾아왔다.
그동안 무료했던 하루하루를 술로 지내고 있었지만, 오늘밥집을 알게 된 이후로는 달랐다.
동네 맛집. 그것도 반찬이 매일 바뀌어 새로운 맛을 자아내는 식당이 있어, 김성훈은 퇴근길이 즐거워졌다.
컵라면은 맛있지만 자주 먹기에는 영양이 부족했다.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으면서 김성훈은 점차 술을 찾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오늘은 선물까지 있다. 김성훈이 옆에 있는 샘플복을 보고는 싱글벙글 웃었다.
대충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으면서도 귀여운 아이였기에,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입히면 얼마나 더 귀여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언젠가는 삼촌이라고 불러주지 않을까.’
조금의 희망 사항과 함께 김성훈은 쇼핑백에서 여자아이 옷을 꺼냈다. 원피스였는데, 소매 부분은 하얀색이고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는 스커트는 붉은 체크무늬로 되어있었다.
옷에 대해 잘 모르는 우빈이 보기에도 화려하고 예뻤다.
“저희 회사 이번 자신작이거든요! 꼭 잘 어울릴 겁니다!”
“이렇게 좋은 걸…… 감사합니다.”
“참, 아이 이름이 뭐라고 했죠? 저번에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요.”
김성훈이 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빈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봄입니다.”
“봄. 외자 이름이군요?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이름을 왜 기억 못 했었지? 제가 정말 회사 일 때문에 정신이 없긴 없나 봅니다.”
“뺘아!”
때마침 봄이 일 층으로 도도거리며 내려왔다. 김성훈이 들고 있는 옷을 보고 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봄아, 네 선물이래. 한 번 입어볼래?”
우빈의 말에 봄의 얼굴이 밝아졌다.
봄은 마치 신성한 물건을 받는 듯이 김성훈에게서 옷을 두 손으로 받아들면서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김성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 봄이야. 만세.”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잠시 이 층으로 올라갔다.
봄이가 두 팔을 위로 뻗자 우빈이 원피스를 입혔다. 치마는 입어본 적도 입혀본 적도 없던지라 초반에는 조금 헤맸다.
원피스를 입은 봄이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마음에 드는지 거울 앞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마음에 들어? 내려가서 삼촌한테 고맙다고 한마디 할까?”
‘……뭐 아까 인사로 충분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도대체 언제 그런 걸 배운 거지?’
우빈이 알기로는 정육점 박사장 이외에는 그런 사람은 없었다.
설마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걸까? 우빈의 의문이 해소되기도 전에, 봄이는 신이 난 얼굴로 먼저 일 층으로 내려갔다.
“봄아아아! 너무 잘 어울린다!”
“뺘아.”
김성훈은 계단을 내려오는 봄이를 보고는 손뼉을 쳤다.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풍성한 소매가 사랑스러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봄은 우빈과 있을 때와 김성훈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랐다. 물론 양육자가 우빈이기에 더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전혀 다른 사람처럼 김성훈 앞에서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삼촌이라고 해 봐. 삼초온.”
“뺘.”
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김성훈은 간절한 표정이었지만 봄은 또다시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번에는 옷을 주었으니 조금은 다를까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
“사장님, 역시 봄이한테 키즈모델을 시키시는 건…… 흠흠, 싫어하시는 건 아는데 봄이 옷이 생각보다도 더 잘 어울려서요. 아무튼 오늘 메뉴는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