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80
집밥을 너무 잘함 80화
“아빠아, 요거 오때? 제일 예뽀!”
봄이 또한 연보라색 치마에 푹 빠졌다. 당의에는 화려한 금박이 박혀 있었다.
“응. 잘 어울린다.”
다들 연보랏빛 치마를 입은 봄이의 모습을 보고는 더 다른 한복을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서비스로 줄게요.”
복주머니를 받은 봄이의 안색이 환해졌다.
봄이는 당장이라도 한복을 갈아입고 싶어했지만, 지하철도 타야하다 보니 아무래도 집에 가서 입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잘 가. 다음에 또 와야 해!”
한복 가게 아주머니들이 봄이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 모습을 본 봄이가 생글 웃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추석 때 다시 입자.”
“웅!! 빠리 츄석이 되면 조케따.”
봄이가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복을 쇼핑백에 넣고 우빈이 들고 있는데, 봄이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만큼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봄이는 싱긋 웃더니 우빈에게 말했다.
“아빠아, 구거 알아? 요걸 이버야 가족이 된대.”
“음? 한복을 입어야 가족이 된다고? 누가 그랬어?”
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티비.”
그럼 봄이는 가족이 되고 싶어서 한복을 사자고 한 건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가족인데.’
혹시나 자신이 어딘가에서 놓친 부분이 없는지, 봄이를 불안하게 한 건 아닌가 싶어 우빈의 표정이 어두워질 때였다.
봄이는 그런 건 아니라고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런 게 아니야. 우움, 움.”
봄이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팔짱을 끼고 고민을 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생각이 났는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더 친한 가족!”
씩씩한 봄이의 목소리에 우빈이 픽 웃었다.
그냥 예쁜 옷을 입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는데.
“한복을 입든 안 입든, 봄이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가족이야.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다.”
“……웅! 알게쏘.”
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는 봄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그리고 추석 며칠 전.
아침부터 봄이가 조르는 탓에 우빈은 결국 봄이에게 한복을 입혀주었다.
머리를 하나로 따고 모란이 그려진 머리띠와 함께, 연보랏빛 치마를 입고는 빙글 몸을 돌렸다.
한복을 입은 봄이의 모습을 본 시장 상인이나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어머어머, 봄이가 한복을 입었네? 공주님이네, 공주님! 아, 어떡해……. 너무 힐링 된다. 한복이 저렇게 예쁜지 알았으면 나도 어릴 때 엄마한테 졸라서 입을걸.”
“감쟈합니다.”
한복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봄이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 헤벌레 풀어졌다.
“엄마, 엄마아! 나도 한복 입을래. 우리도 한복 사자!”
“어머, 얘 좀 봐? 저번 주 사줄까 했을 때는 관심도 없더니.”
아이의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봄이를 힐끗 보았다.
통통하면서도 발그레한 볼은 금방이라도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연보라색 치마를 입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봄이의 모습은 사극 드라마에 나온 장면과도 같았다.
홀린 듯 봄이를 쳐다보던 아주머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우빈에게 물었다.
“사장님, 한복 어디서 산 거예요? 인터넷이면 쇼핑몰 좀 알려주세요!”
그동안 아이들은 금방 크니까 사이즈가 안 맞게 될까봐 한복은 사지 않았었는데, 봄이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아, 저희는 광장 시장에서 샀어요. 생각보다 종류도 많더라고요.”
“그래요?!”
이후로도 그 아주머니를 필두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빈은 광장 시장에 있는 약도를 그려 가게 위치까지 꼼꼼히 알려주어야 했다.
‘겨우 도착했네.’
오늘따라 떡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었다.
아무래도 추석인 만큼 떡집은 아주 바빠보였다.
“두 분은 내일 출발하신다고 했죠?”
김씨 할머니는 정씨 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상인들과 같이 든 계모임이 있는데, 돈만 꼬박꼬박 내고 안 써서 회비가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맞아. 아휴, 장사해야 하는데 여행은 무슨……. 지는 간장게장집이라 명절이라 상관없다 이거지, 뭐.”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언니 선글라스도 사고 난리 났어. 오호호.”
“그런 건 또 왜 말해!”
김씨 할머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서 괜찮은 게 있으면, 선물을 사 오든가 할게. 없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하하, 저희 생각은 말고 재미있게 다녀오세요.”
우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씨 할머니가 “참, 송편.”이라고 말하며 몸을 빙글 돌렸다.
“잠깐만 기다려 봐. 너희 둘 껀 미리 빼놓았으니까.”
김씨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송편을 건넸다.
봉지에 한 아름 든 송편은 우빈이 받아들었을 때 조금 묵직해서 봉투에 내려갈 정도였다.
“사장님, 그럼,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우빈이 픽 웃으며 봄이에게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 봄이가 입은 한복이 예뻐 보이나 봐.”
“우웅?”
봄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구런데 아빠아.”
“응.”
“나 갈아이고 시퍼.”
“……벌써? 왜, 예쁜데.”
아직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바스락거료.”
‘……그럼 어쩔 수 없지.’
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앞으로 반년 정도는 또 입지 않을 것 같았다.
‘나름 비쌌는데.’
우빈이 남몰래 눈물을 삼켰지만 봄이가 계속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우빈은 이층으로 올라가서 결국 봄이의 옷을 갈아입혀야만 했다.
“푸하아! 싱난다.”
편한 티셔츠로 갈아입은 봄이가 팔을 휘적였다.
‘뭐, 그래.’
잠시나마 봄이가 즐거웠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우빈은 생각했다.
* * *
한편, 추석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 때문에 바쁘거나,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나상준이었다.
열심히 기차표를 찾아보던 나상준이 인상을 찡그렸다.
보통은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이동하는 나상준이었는데, 이번에는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않을 것 같았다.
대신에 기차로 이동하려고 했더니 이미 기차표는 매진된 상태였다. 나상준이 후, 하고 한숨을 내뱉고는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차라리 잘됐어요. 어차피 추석 때 가봤자 언제 합격하냐, 결혼 상대는 있냐. 잔소리만 많은걸요. 그나마 하루라도 짧게 가서 다행이네요.”
나상준이 중얼거렸다.
옆에서 동감한다는 듯 눈을 꼭 감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던 김성훈이 입을 열었다.
“맞아, 맞아! 친척들 잔소리 진짜 듣기 싫어요. 특히 저희 집은 사촌들 나이가 다 쪼르르 비슷하거든요! 고등학생 때는 여기 사촌이 대학을 잘 갔는데 너도 후배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하더니. 대학생 때는 취업 얘기, 이제 겨우 취업하니까 결혼 얘기까지……! 으으, 도대체 언제 잔소리가 끝나냐고요!”
생각만 해도 괴롭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래도 명절 음식은 먹고 싶다. 맛있는 거 많은데…….”
나상준이 입맛을 다셨다.
“참, 여기는요? 오늘밥집은 추석에 쉬나요?”
“추석 당일만 쉬고, 전날이랑 이후는 계속 영업할 겁니다. 괜찮으시면 밥 먹으러 오세요.”
“저, 정말요?”
명절 연휴가 되면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특히 인기 있는 가게들은 추석 연휴를 전부 쉬는 날도 많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우빈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예. 추석 스페셜로 만들 만한 음식이 뭐가 있는지 좀 생각해 봐야겠네요.”
“아싸아!”
각자 사정이 있기에 모두가 명절을 반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명절이 오면 어쩐지 쓸쓸한 감정을 느끼고는 했다.
우빈은 이번 오늘밥집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했다.
집을 대체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오늘밥집에 있으면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느낌은 주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우빈이 이번에 생각한 특별한 음식은, 바로 약밥이었다.
약밥은 찹쌀을 불린 다음에 달달하게 양념을 해서 견과류와 함께 만드는 약밥은, 간단하게 명절 분위기를 내기 좋은 음식이면서도 든든함을 주는 음식이었다.
우선은 방앗간에서 사온 찹쌀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런 다음에 깨끗한 물을 부어서 찹쌀을 충분히 불려주었다.
‘불린 다음에는 체로 물기를 빼주고.’
탈탈, 하고 체를 털어주자 체에는 곧 불린 찹쌀만이 남아있었다.
다음에는 약과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할 차례. 우빈은 먼저 호두와 잣 같은 견과류를 준비하고, 밤도 함께 넣어주었다.
미리 물에 담가 쪼글쪼글해진 대추에서 씨를 빼내었다.
약밥 윗부분에 넣을 장식을 만들기 위해, 큼직하게 썬 대추 일부분은 돌돌 말아 꽃 모양을 만들어주었다.
다음으로는 달달하면서도 짭조름한 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양념물을 만들 차례. 계피가루와 간장, 설탕을 모두 섞어 밥물을 만들었다.
이후로는 기존에 밥을 만든 것과 같았다.
불린 쌀과 함께 준비해 둔 부재료를 넣어주고, 평소에 넣던 물대신 간장으로 진한 색을 띠고 있는 밥솥 안에 부어주면 되었다.
“밥이 다 되었네.”
우빈은 완성된 약밥을 유산지를 넣은 틀 위에 영양밥을 고르게 펴주었다.
조금 식힌 다음에 잘라주면 네모나면서도 예쁜 약밥이 완성된다.
이제는 손님들을 기다릴 차례였다.
* * *
약밥을 보고는 손님이 감탄사를 흘렸다.
“아, 안 그래도 이번에 집에 못 돌아가게 돼서 울적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네요. 잘 먹겠습니다.”
한 중년의 남자손님이 약밥을 손에 들고는 중얼거렸다.
한입 약밥을 입에 넣자 쫀득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대추와 건포도의 향이 어우러지면서, 중간중간 오독하게 씹히는 호두와 잣이 고소한 맛을 더해주었다.
“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많이 해주시던 음식인데……. 일이 뭐라고, 이렇게 집에도 못 가고 일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몇 주 전부터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놓았다면서, 바리바리 음식을 싸놓고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어머니였다.
약밥을 먹던 남자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
“전화라도 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러려고 했는데…… 얼굴도 못 뵙는데 전화로 때우는 것 같아 영 죄송해서 말입니다.”
“좋아하실 겁니다.”
우빈의 말에 남자가 잠시 고민했다.
‘정말 좋아할까? 그런데, 엄마 목소리는 듣고 싶기는 하고…….’
고민하던 남자는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어, 엄마. 난데. 내려올 수 있냐고? 아니, 이번에는 어렵고……. 내가 다음 주 주말에는 꼭 내려갈게. 아, 맞다, 그리고 말이야. 엄마, 약밥 좋아하지?”
남자는 잠시 전화기에서 귀를 떼고는 우빈에게 소곤거렸다.
“사장님, 혹시 이 약밥 포장도 됩니까? 다음 주 주문해서 집에 가져가고 싶어서요.”
“물론이죠. 이틀 전에 미리 전화만 해주시면 됩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화를 이어갔다.
“다음 주에 내려갈 때 내가 약밥도 사갈게. 지금 식당에 약밥이 나왔는데 보니까 엄마 생각이 나네.”
-뭘 또 돈 아깝게 약밥을 사. 엄마가 만들어주면 되는데. 약밥 말고 또 먹고 싶은 건 없어?
“그게 아니라, 진짜 맛있는 약밥이 있어서. 엄마한테도 맛보여 주고 싶어서 그래. 가끔은 아들도 효도 좀 하게 해줘요.”
-효도는, 오기나 하고 말하지. 뭐 약밥이 얼마나 맛있길래? 엄마 밥보다 맛있냐? 아무튼 밥 잘 챙겨먹고 다닌다니 마음이 놓이지만서두.
투덜거림 속에도 애정이 엿보여서 남자는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전화를 끊은 남자가 약밥을 다시 입에 베어물었다.
아까도 맛있었는데,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난 다음에 먹은 약밥은 왠지 모르게 더 단맛이 도는 것만 같았다.
“사장님은 이번에 안 내려가십니까?”
“저는…….”
우빈이 잠시 말을 흐릴 때였다.
콰과과광!
커다란 천둥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특히 봄이는 얼굴이 사색이 돼서는 우빈의 품에 쏙 안겼다.
“무, 무셔어, 아빠아! 집이 업서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