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81
집밥을 너무 잘함 81화
“집은 튼튼하게 지었으니까 괜찮아. 놀랐구나?”
끄덕끄덕.
봄이는 깜짝 놀랐는지 커다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놀란 봄이를 위해서 우빈은 얼른 따뜻한 꿀차를 타서 건네었다.
생강과 함께 진한 아카시아꿀을 듬뿍 넣어 만든 꿀차였다.
봄이를 위해서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만들었다.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꿀차를 먹자 봄이가 어느새 긴장이 풀린 듯이 “푸하아.”하고 배시시 웃었다.
그러던 봄이는 아저씨가 먹고 있던 약밥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나도 머거도 대요?”
“봄이도 줄까? 잠시만.”
우빈은 어릴 적에 약밥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저 새하얀 쌀밥이 그에게는 최고였기에, 아이들은 약밥을 그닥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있어.”
“쟈 머겠숩니다!”
짭짤한 맛이 마음에 든 듯, 봄이가 약밥을 오물거렸다.
“우우움!”
봄이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양 볼에는 약밥으로 가득차서 마치 해바라기 씨앗을 잔뜩 볼 안에 넣은 햄스터 같았다.
조금 찔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가운데, 봄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징쨔 마시쏘.”
“그래? 봄이는 약밥을 좋아하는구나. 여기 많으니까 더 먹어.”
봄이는 언제 놀랐냐는 듯이 행복한 얼굴로 약밥을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약밥 하나만으로 명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사장니임, 저희 왔어요!”
반가운 목소리에 우빈이 고개를 돌렸다. 나상준과 김성훈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빈이 싱긋 웃으며 둘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 * *
“아빠아. 더 엄서요?”
추석 당일.
냉장고 앞에 선 봄이가 물끄러미 우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벌써 다 먹었네, 으음…….”
우빈이 곤란해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많던 송편이 바닥났다.
더 사오고 싶어도, 지금쯤 김씨 할머니는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주스를 마시고 있을 터였다.
마트도 추석 당일이라 쉬는 날이었다.
우빈은 직접 송편을 봄이와 함께 만들기로 했다.
“그럼 말나온 김에 바로 방앗간으로 가볼까, 봄아?”
“녜!!”
다행히 방앗간은 단축영업이지만 아직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응? 또 뭐가 필요해? 저번에 줬던 찹쌀로 줄까?”
얼마 전 약밥을 만들기 위해 찹쌀을 샀던지라 방앗간 아주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우빈을 쳐다보았다.
“멥쌀가루 좀 사려고요. 이번에는 송편을 만들려고요.”
“그건 저기 김씨 할머니네…… 참, 맞다. 여행 간다고 했지. 자, 이만큼이면 되려나? 참, 솔잎은 있어?”
확실히 송편을 찔 때 솔잎이 있으면 솔향이 배어들어서 더 좋기는 하겠지만.
“잉? 없다고? 이거 뜯어가, 그러면.”
아주머니가 가게 옆에 심어진 소나무로 고갯짓을 했다.
우빈이 잠시 머뭇거리자, 아주머니는 답답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개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소나무에서 솔잎을 잔뜩 뜯고는, 되돌아와서 우빈의 손바닥에 솔잎을 우수수 뿌렸다.
우빈이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써, 써도 되나요?”
“그럼. 솔잎 없으면 뭔 맛이야. 부족하면 더 뜯어줄까?”
“괘,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감쟈합니다!”
방앗간에서 사온 멥쌀가루를 끓는 물을 조금 부어가며 반죽해 주었다.
설탕과 계피가루를 섞어 송편 안에 넣어줄 소를 만들었다.
반죽을 동그랗게 펼친 다음에 숟가락으로 소를 넣어주고는, 오므려서 손으로 빚었다.
봄이는 이전에 만두를 만들어본 적이 있어서인지 꽤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 터졌네.’
“다, 다시 하면 갠챠나!”
황급히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봄이었다.
다음으로는 아까 받아온 솔잎이 활약을 할 차례였다.
찜통 위에 물로 한 번 깨끗하게 헹군 솔잎을 바닥에 뿌렸다. 찜기에 송편을 올려두고 이십 분가량을 쪄내자 송편에서 솔솔 김이 올라왔다.
‘와, 향기 진짜 좋다.’
뚜껑을 열자마자 올라오는 솔향과 함께, 푸른빛을 뽐내던 솔잎도 찜통에 넣어두자 옅은 갈색으로 색이 변했다.
우빈은 불을 끄고 송편이 완전히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완성된 송편은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맛있긴 한데…… 역시 할머니가 만들어준 것만큼은 안 되네.’
지금쯤 김씨 할머니는 재밌게 여행을 다니고 계실까?
바다가 있는 따뜻한 날씨의 동남아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김씨 할머니를 생각하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김씨 할머니가 돌아왔으면 할 때였다.
라디오 채널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별빛 아래 네 품에 안겨
우린 이 길을 같이 또 걸어가
“어, 이 노래 또 나오네.”
비욘드K스타에서 2등을 차지했던 알렉스 정의 노래였다.
안지희의 인기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로맨틱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도 제법 인기를 끌고 있었다.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호소력이 있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편안하게 듣기 좋은 곡이었다.
‘이 노래도 제법 괜찮네. 물론, 지희 씨 노래가 최고지만.’
우빈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꿀이 가득 들어간 달곰한 맛의 송편. 그리고 옆에서 재잘대는 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하루가,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추석도 나쁘지만은 않네.”
사람들이 이래서 명절을 좋아하는 걸까?
오랜만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루.
“웅? 아빠아 모라고 해쏘?”
“아무것도 아니야.”
* * *
한편, 같은 시각.
꽃으로 꾸며진 화려한 웨딩홀에서 알렉스 정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별빛 아래 네 품에 안겨
감미로운 노래에 많은 사람이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스피커로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노래에 누군가가 애써 미소를 쥐어짜고 있었다.
‘하아아…… 진짜 이 노래 너무 듣기 싫다.’
바로 예식장을 담당하고 있는 호텔리어, 서도현이었다.
요 일주일 동안 체감상 거의 모든 커플들이 이 노래를 신청한 것 같았다.
그런 그는 최근에 여자친구와 이별을 고했다.
설마 자신의 인생 중에서 ‘더 좋은 사람이 생겼어’라는 말을 들을 날이 올 줄이야.
일방적인 통보였다.
칠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서도현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끼니도 계속해서 거르기 일쑤였다.
더 잘해주었으면 떠나지 않았을까.
몇 번을 생각해 보았지만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입장과 함께 로맨틱한 노래와 함께 멋진 조명이 예식장 전체를 비추었다.
서도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안 돼.’
입술을 꾹 깨물던 서도현이 얼른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푸어푸!
서도현은 찬물로 몇 번이나 얼굴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하마터면 남의 소중한 행사에서 흉한 꼴을 보일 뻔했다.
‘정말 많이 좋아했는데.’
헤어진 여자친구를 생각하자 서도현의 어깨가 또다시 추욱 내려갔다.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한 순간을 담당하는 예식장인 만큼, 밝은 미소를 지어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로맨틱한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신랑신부의 추억 영상을 볼 때마다. 서도현은 자신과 여자친구의 행복한 일상이 기억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린 왜 저기까지 가지 못했던 걸까.’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심 공감하지 못했던 서도현이었다.
순간순간의 소중한 기억들은 분명히 남아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연애가 끝나자마자, 칠 년이라는 시간은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서도현. 괜찮냐?”
옆에서 말을 걸어온 사람은 평소에도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팀원들을 챙기는 팀장이었다.
“금방 가겠습니다.”
“오늘 알바들 많아서 너 하나 빠진다고 티 안 나. ……너 지금 일주일 넘게 이러고 있는 건 아냐?”
“죄송합니다.”
굳어진 표정의 서도현을 보고는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인마. ……어차피 너 올해 휴가도 많이 남았잖아. 여행이라도 갔다와 보는 거 어때?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여행?
서도현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차피 같이 갈 사람도 없는데 누구와 여행을 간단 말인가.
“정말 괜찮습니다. 일할 수 있어요.”
“괜찮다는 놈 얼굴이 그래?”
“……아.”
서도현은 얼른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아내었다.
이건 반사적인 거라고, 자기 감정이랑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목까지 메여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서도현을 보고 팀장이 어깨를 툭툭 쳤다.
“어차피 다음 주는 컨퍼런스 잡혀있어서 손도 많이 안 필요해. 생각 있으면 다녀와.”
“……감사합니다.”
* * *
서도현은 그렇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탔다.
타당, 타당.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서도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정차역인 서울역, 서울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진짜 나 혼자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덩그러니 있으니, 오히려 혼자라는 느낌만 더 강해졌다.
괜히 여행을 온 건가?
툭.
잠시 서 있는 서도현의 어깨를 누군가 밀치고 지나갔다.
“……아픈데.”
사과도 없이 휙 지나간 행인을 보고는 서도현이 자신의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체크한 베이글 맛집으로 이동한 서도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 줄이 뭐 이렇게 길어?!’
대기시간이 두 시간이라니.
아무리 맛집이어도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먹어봐야 할 것만 같았다.
“한 분 입장하실게요.”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서도현의 차례가 되었다.
서도현이 크림치즈가 든 쪽파 베이글을 입에 물었다.
바삭한 베이컨과 풍미가 가득한 크림치즈가 들어간 베이글이었다.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크림치즈를 쪽파가 잡아주어서 밸런스를 맞추고 있었다.
우물우물.
물론 빵도 쫄깃하고 쪽파도 향긋해서 먹는 맛은 있었다.
‘빵이 조금 더 쫄깃하기는 하지만, 맛 자체는 내가 만든 거랑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전 여자친구가 워낙 빵을 좋아해서, 종종 크림치즈 베이글을 만들어주던 그였다.
장장 두 시간을 기다리고 들어온 가게였기에 맛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가 들어온 이후로도 아직도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맛있기는 한데, 이 돈 주고 다시 사먹으라 하면 안 먹을지도.’
쪽파가 들어간 크림치즈 베이글, 그리고 연어가 든 베이글을 두 개 샀을 뿐인데.
평소에 먹는 국밥 한 그릇보다도 훨씬 가격이 비쌌다.
“여기, 진짜 맛있다. 그렇지?”
여자 목소리에 서도현이 흠칫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였는데, 목소리만 비슷할 뿐 생김새는 전혀 달랐다.
‘……다른 사람이야.’
높은 톤의 목소리는 착각할 만큼 정말 비슷했다.
사이좋게 앉은 커플을 보자 서도현의 마음 한구석이 또다시 아려왔다.
결국 서도현은 도망치듯이 가게를 빠져나왔다.
* * *
“안 불편해?”
“웅! 죠아.”
봄이는 지난번 한복과 같이 산 꽃신을 신고 있었다.
하얀색 배경에 옆에 연분홍색으로 꽃 자수가 놓여진 신발이었다.
이후로도 밤에 갑자기 자기 전에 한복을 입어보고 싶거나, 비 오는 날에 한복을 입고 외출하겠다는 봄이를 말리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옷 고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저 하하 웃었는데, 자신의 일이 되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됐다. 이제 다 같이 장 보러 가자.”
장을 보기도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우빈이었다.
이수호가 꽃신을 신은 봄이를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누나도 그랬습니다. 절대 못 말린다고요. 지난겨울에는 얇은 티셔츠 한 장만 입고 간다고 해서 집에서 몇 시간 동안 씨름을 했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하셨대?”
우빈이 귀를 쫑긋거렸다.
“누나가 옆에 패딩을 챙겨갔대요. 죽어도 안 입는다고 하더니, 날씨가 추우니까 바로 허겁지겁 껴입었다고……. 희승이 친구 중에는 매일 입는 공주옷 아니면 다른 건 절대 안 입어서 빨래도 숨어서 후다닥 해야한답니다. 안 그러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