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83
집밥을 너무 잘함 83화
“와인 다 나갔어? 스테이크 다 드시면 디저트는 미리 준비하고.”
짧은 휴가가 끝난 후, 서도현은 일터로 돌아왔다. 그의 발걸음은 전보다 훨씬 힘이 실려있었다.
“얼굴 좋아보이네. 훨씬 낫다, 인마.”
서도현을 본 팀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서도현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지나갔다.
‘……내가 그렇게 표정이 좋아졌나?’
서도현이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씩 웃어도 보았다.
확실히, 음식을 굶다시피 한 몇 주와는 달리, 얼굴 피부가 다시 살이 올라 뽀얗게 되어 있었다.
‘오늘도 힘내자.’
오늘은 실장과의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서도현이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살짝 두드리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도현 씨, 요즘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진 거 알아요?”
“예전에는 조금 딱딱했습니까?”
서도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학교 때부터 호텔 인턴을 다녔던 서도현이었기에, 흠잡을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나름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런 서도현의 물음에 실장이 말을 이어갔다.
“음, 예전이 이상했다는 게 아니라요. 옛날에는 정말 하나하나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지금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라고 해야하나요? 미소가 따뜻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어쨌든, 저는 더 마음에 드네요.”
실장의 말에 서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좀 달라졌나?’
사무실에서 나온 서도현은 얼떨떨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다.
그동안의 근무태도로 혼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칭찬만 잔뜩 받고 나왔다.
확실히 이번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기는 했다.
다른 5성급 호텔에도 자주 방문하는 서도현이었지만, 무언가 오늘밥집의 손님으로 갔을 때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마치 오랜만에 돌아간 집처럼 정겨운 느낌이었어. ……아, 혹시.’
서도현은 그동안 손님이 부족한 점을 무조건 채워주려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손꼽히는 호텔의 호텔리어였기에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했다.
하지만 규율에 맞춰 딱딱 지켜지는 완벽한 서비스와 따뜻한 배려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전 여자친구도 그러한 점에 대해 가끔 불평을 하고는 했었다. 혹시 이게 원인이었을까.
잠시 생각하던 서도현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니야. 더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끝난 인연은 이제 곧, 흘려보내 주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즈음 또다시 예식장에서 알렉스 정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저번과 다르게, 이번에 서도현은 리듬에 맞추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 알렉스 정의 노래가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 * *
“아빠아, 츄오?”
“조금 쌀쌀하네.”
봄이와 우빈은 주말농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봄이가 씩 웃더니 손으로부터 빛으로 된 나비가 하나둘 날아들었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은 반짝이는 빛을 뿌리며 봄이와 우변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봄이는 아침부터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구마를 수확할 날짜였기 때문이었다.
고구마의 잎과 줄기가 점점 갈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마 이번 주 정도면 고구마를 수확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일 터였다.
“밤보다 더 마시써?”
“밤보다라…….”
우빈이 생각하기에 밤보다는 고구마가 더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음식이기는 했다.
가을이나 겨울, 요즘에는 잘 사라져 보이지 않지만 쌀쌀한 날씨가 되면 군고구마 통을 가지고 돌아다니던 아저씨가 언제 나타날지를 기대하고는 했으니까.
신문지로 돌돌 둘러싼 갓 구운 고구마를 받아들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든든하기만 했다.
“응, 맛있어. 기대해도 좋아.”
“에헤헤.”
이전에 고구마 맛탕을 먹어본 봄이였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기른 고구마를 수확해서 먹을 수 있다는 건 남다른 기분인 것 같았다.
‘하긴, 설레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렇게 둘이 주말농장으로 향했을 때였다.
집에서 십오 분 정도 되는 거리였기에, 우빈과 봄이는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갔다.
고구마로 무슨 요리를 해먹을까?
지난번처럼 고구마 맛탕도 맛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스프나 샐러드도 괜찮고. 아, 그래. 고구마 스틱도 맛있겠다.”
“다 마싯을 거 가타……!”
아마 지난번 심은 양이면, 지금 말한 모든 걸 다 해먹고도 조금 남지 않을까, 우빈이 조심스럽게 예상하던 참이었다.
“……어? 어어어?!”
봄이가 사색이 되어서 텃밭으로 달려갔다.
“아빠아, 고구마, 고구마가……!”
봄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분명 팻말과 함께 고구마를 심어 놓았던 공간이었다.
힘없이 쓰러진 고구마 팻말과 줄기만 남고 고구마는 전부 사라졌다.
그걸 보는 봄이의 표정은 마치 전 재산을 빼앗긴 듯했다.
“업어져쏘…….”
엉엉 울 줄 알았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봄이는 얼굴만 새하얘져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 봄아. 괜찮아. 고구마는 다시 심으면 되니까.”
“……먹고 시포쏘.”
흙에서 캐온 고구마를 먹고 싶었는데.
“……안 되게써.”
순간, 봄이가 벌떡 일어났다.
쿠르르, 쿠르릉!
그리고 하늘에서 먹구름이 일어났다. 먹구름 가운데서 셀레스티아가 나타났다.
봄이가 셀레스티아를 불러냈다.
“부르셨습니-”
셀레스티아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봄이는 도도도 달려가 셀레스티아의 두 손을 잡았다.
“세레스티아! 범인, 찾아야 해! 남의 고구마를 훔쳐머군 나뿐 사라이야!”
우다다 내뱉는 봄이의 말에 셀레스티아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런 나쁜 사람이 있다니! 꼭 잡아서 벌을 주어야겠어요!”
“웅웅!”
“……잡아서 어떻게 하려고?”
셀레스티아와 함께 범인 찾기에 잔뜩 들떠있던 봄이는,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부면, 자부면, 움…… 호내주 꺼야!”
봄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니까 저 작은 손으로 어떻게 혼을 내겠다는 건지가 궁금했지만.
결연한 눈빛의 봄이를 보고는 우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
그렇게 잠시 후.
봄이는 셀레스티아와 함께 커다란 나무팻말 뒤에 숨어있었다.
“정말 이렇게 하면 안 보일까요?”
“웅! 절대 앙 보여.”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봄이를 보니 셀레스티아도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벌써 네 시간째 이렇게 잠복수사를 하고 있었다.
“……배고푸다.”
시간이 흘렀다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왔지만, 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섣부르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사람이 캐간 걸까?’
우빈이 다시 한번 파헤쳐진 땅을 훑어보았다.
사람보다는 오히려 산짐승이 파헤친 흔적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또, 짐승의 짓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다른 작물은 건드리지 않고 고구마만 잔뜩 캐간 것이 수상했다.
우두두두.
땅이 커다랗게 흔들리면서, 또다시 고구마 줄기가 흔들렸다.
“지굼이야!”
봄이의 손과 함께 셀레스티아의 몸이 푸른빛으로 빛났다.
촤아아악!
셀레스티아가 일으킨 소용돌이와 함께, 흔들리던 땅속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건, 작은 두더지였다.
“꺄아아아악! 쥐다, 쥐!”
셀레스티아는 기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봄이의 손에 꽉 붙들려 있는 두더지를 보고는 우빈의 눈이 커졌다.
‘두, 두더지는 처음 봐.’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초면인 두더지는 생각보다 귀여운 생김새였다.
까만색 털과 대비되는 연분홍색 코를 연신 찡긋거렸다.
우빈이 호감을 가지고 다가갈 때였다.
두더지가 입을 벙긋거렸다.
“에, 에구구구……. 어, 어지러워요!”
‘마, 말을 해?!’
당황한 우빈이 돌처럼 굳어있을 때였다.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봄이의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구마. 너야?”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던 두더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죄송합니다…….”
“두, 두더지가 말을 하고 있어.”
“두더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땅의 정령이에요. 땅을 돌보아야 할 녀석이 이렇게 남의 농작물을 훔쳐먹기나 하고…….”
쥐가 아니라는 사실에 진정한 셀레스티아가 곁으로 돌아왔다. 못마땅한 듯이 두더지를 살펴보았다.
시선을 느낀 두더지가 흠칫 놀랐다.
“죄, 죄, 죄송합니다! 고구마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만든 고구마를 훔쳐먹으면 안 되지.”
“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구마는…… 정말 불가항력이었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서요.”
두더지는 다시금 고구마를 떠올렸다.
* * *
‘흐흠, 오늘도 땅이 아주 신선하게 잘 관리되고 있군!’
땅의 정령, 몰이 뿌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두더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몰은 분홍빛 코를 연신 찡긋거렸다.
땅의 힘, 즉 지력이 있어야 비옥한 토양에서 좋은 작물이 자랄 수 있다.
예를 들어 옥수수나 인삼은 대표적으로 지력 소모가 심한 작물. 퇴비로 땅에 영양분을 주어야 다음 농사를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퇴비처럼 땅에 기운을 주는 것이 바로 몰의 역할이었다.
몰의 작은 손에서 빛이 나면서 땅이 반짝반짝, 윤기를 되찾았다.
아직은 중급 정령이었지만, 이대로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금방 상급 정령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두더지의 모습도 좋지만, 어서 상급 정령이 되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몰은 열심히 일했다.
‘물론 일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몰이 조그만 손으로 열심히 땅을 가꾸어 나가고 있을 때였다.
그나저나.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나는데……?’
아까부터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좋은 냄새가 풍겼다.
몰은 킁킁거리며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갔다.
그렇게 잠시 후.
‘……찾았다!’
냄새의 정체는 바로 고구마였다.
원래 두더지는 달콤한 고구마를 좋아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리고 정령이라 해도 모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이 고구마는 냄새부터 차원이 달랐다.
이른 아침에 풀잎에 모인 아침이슬처럼, 신선함만 가득 모아놓은 듯한 완벽함.
딱 한입만, 저 천상의 고구마를 먹어볼 수만 있다면…….
‘정말로 한입만 먹고는 되돌려놓는 거야.’
“어, 어떻게 이런 맛이!”
고구마를 집은 몰의 양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지금까지 먹었던 고구마는 대체 뭐였단 말인가?
한입 먹으면 먹을수록, 신선한 공기가 가득했다.
하나, 둘.
정신없이 고구마를 먹다보니 어느새 고구마를 다 먹어버렸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에 펑펑 눈물을 흘리는 몰을 보자 봄이는 마음이 조금 약해진 듯했다.
셀레스티아는 계속 양손을 허리춤에 두고 있었다.
“그래도 남이 기른 농작물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되죠!”
“……그 부분은 입이 두 개라도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싯어써?”
봄이가 조용히 물었다.
꿀꺽.
이거는 함정인 것일까?
하지만 정말로 먹어본 적도 없는 기적 같은 맛이었기에.
몰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푹 떨군 채로 대답했다.
“저,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가 평생 먹어본 것 중에서 제일로요…….”
몰의 말을 들은 봄이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돼쏘! 다움에는 나너줄 테니까, 훔쳐머구면 앙대. 알아찌?”
“가, 감사합니다!”
“이름이 모야?”
“모, 몰입니다.”
“모모르?”
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이요.”
그렇게 몰의 사과를 받고 대충 마무리가 된 듯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봄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우빈은 봄이를 위해 볶음밥을 해주었는데, 평소에는 숟가락으로 잘 먹던 봄이가 볶음밥을 테이블에 후두둑 떨어뜨렸다.
잠이 들기 전에도, 봄이는 영 기운이 없어보였다.
“괜찮아, 봄아?”
우빈의 물음에도 봄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잠이 든 봄이.
“……내 꼬구마.”
잠꼬대로 웅얼거리는 봄이를 보자 우빈은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봄이를 위해 뭐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즈음.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하던 우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이거야!’
“조금만 기다려, 봄아.”
우빈이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