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88
집밥을 너무 잘함 88화
“희찬! 어쩐 일이야? 미리 연락도 없이. 잘 지냈냐?”
씩 웃으면서 가게문을 들어온 건 장땡칼국수의 장희찬이었다.
안 그래도 서로 가게 운영을 하기에 바빠 요즘 연락이 뜸하던 참이었는데. 우빈이 반가움에 표정이 환해졌다.
“어쩐 일이긴, 밥집에 밥 먹으러 왔지. 오, 소세지 야채볶음이네? 나 이거 완전 좋아하는데. 나도 정식 하나 줘.”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
장희찬이 털썩 자리를 잡을 때였다. 옆에서 크레파스를 손에 쥔 봄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장희찬을 쳐다보았다.
“봄이도 안녕? 오랜만이네.”
“앙뇽하세요.”
봄이의 인사에 장희찬은 뒤로 펄쩍 뛸듯이 놀랐다.
“……봄이가 말을 하네?!”
“야, 원래도 말은 하고 있었거든.”
우빈이 팬을 꺼내는 동안 장희찬이 입을 열었다.
“엠플릭스에서 너 밥차 출연한 거 봤다. 자식, 말도 안 해주고 말이야.”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 너야말로, 인테리어 도와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밥 사겠다고 했는데. 계속 오지도 않고.”
“내가 돈을 낸 것도 아니고 훈수만 이것저것 둔 건데, 뭐. 그리고 내가 너한테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우빈이 다시 한번 가게를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장희찬이 인테리어를 도와줘서 가게는 아늑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넓지만 편안하면서도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우빈의 말에, 그게 무슨 화려하지만 심플하게 같은 소리냐고 머리를 감싸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장은 넓어지면서도 우드톤과 은은한 조명으로 아늑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오늘의 메뉴는 소세지야채볶음. 맥주 안주로도 인기가 좋은 품목이었다.
메인 재료인 소세지와 색감을 더해줄 초록색 피망과 양파. 그리고 알싸한 맛을 더해줄 마늘이 줄지어 조리대에 올라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양념이 안까지 잘 배이도록 우빈은 소세지에 칼집을 내었다.
다음으로는 설탕과 케첩, 그리고 진간장을 섞어 달달한 소스를 만들었다.
달궈진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자 매운 향이 점점 올라왔다.
양파와 후추의 궁합은 두 번 말할 것도 없다. 양파의 색이 변할 때즈음에 후추를 양껏 넣어주었다.
볶은 소세지와 함께 아까 만들었던 양념을 넣어 뒤섞어 소세지야채볶음을 완성했다.
“이야, 맛있겠다.”
장희찬이 밥과 소세지야채볶음을 보고는 군침을 흘렸다.
아무리 잘나가는 식당 주인이라고는 한들, 남이 해준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법이었다.
장희찬이 얼른 젓가락으로 소세지야채볶음을 입에 물었다. 입에 물자마자 소세지에서 힘차게 육즙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육즙과 함께 느껴지는 케첩의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케첩은 주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소스이지만, 그만큼 인기를 끄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
“와, 진짜 맛있다. 소세지야채볶음을 맨 처음에 만든 사람은 천재가 아닐까?”
우물우물 소세지야채볶음을 먹던 장희찬은 이번에는 부추계란국을 그릇째로 들이켰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이후에 장희찬이 입가를 닦으며 우빈에게 물었다.
“그래,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
우빈은 가벼운 마음으로 물었다.
다른 가게라면 조금은 민감한 주제일지도 모르겠지만, 장땡칼국수야 워낙 장사가 잘되는 걸 우빈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탓이었다.
사장이 바뀌거나 초심을 잃는 게 아닌 이상, 그렇게 장사가 잘되는 식당이 갑자기 망하는 경우는 보통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장희찬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글쎄, 물론 전보다야 훨씬 낫기는 하지만…… 솔직히 장사가 잘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왜, 무슨 일인데? 저번에 갔을 때는 사람이 많던데.”
“네가 방문했던 날, 주말 아니야?”
우빈은 잠시 기억을 돌이켰다. 그러고 보니 주말이었던 것 같기는 했다.
장희찬은 울적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네 말대로 주말은 사람이 많아. 오히려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걱정이 될 정도니까.”
“그런데, 왜? 무슨 걱정 있어?”
“문제는 평일이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꼴꼴꼴.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는 소리가 났다.
주말에는 웨이팅이 많고 장사는 잘된다. 남들이 들으면 배가 불렀다며 핀잔을 주기에 충분한 말이었기에 섣불리 누군가에게 고민 상담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평일에는 한적하다 못해 파리가 날리는 광경.
“그렇다고 해도 평일에 임대료가 안 나가는 건 아니니까. 휴우.”
장희찬은 답답한지 소주 한 잔을 더 들이켰다.
가게를 더 확장하기에는 지금 이미 이 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사람을 더 고용하거나, 그런 걸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흐음.”
우빈이 턱을 쓰다듬었다.
한 가지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했는데, 문제는 장희찬이 그걸 받아들일지 확신이 없어서였다.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우빈의 말에 장희찬이 화색했다.
“……일단, 가게에 한 번 가보자.”
* * *
그렇게 다시 찾아간 장땡칼국수는 장희찬의 말대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일 층부터 이 층까지 꽉 찬 손님들.
“손님 정말 많다.”
“다 네 덕분이지.”
우빈의 날카로운 시선에 한편 장희찬이 괜히 기가 죽어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서 더 뭘 하는 건 어려워 보이긴 한다.”
“그, 그건 그렇지. 나도 욕심인 건 아는데…….”
장희찬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간 장사가 안 되는 기간 동안 받아온 대출도 있을 거고, 가게의 규모가 커진 만큼 임대료도 더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고용한 직원들까지 챙기려면.
장희찬이 저렇게 조바심을 내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우빈이 입을 열었다.
“밀키트는 어때?”
“미, 밀키트?”
당황하여 되묻는 장희찬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한 번 휙 가게를 둘러보았다.
장희찬의 가게는 용인 주택가와는 먼, 차로 이동해서야 갈 수 있는 산속 깊은 곳.
근처의 주택가는 3km가 훨씬 넘었기에 배달 가능거리로 잡히지조차 않았다.
“퀵도 해보긴 했는데, 면이라서 그런지 잘 안 되더라고…….”
‘그야 그렇겠네. 나라도 면 요리를 굳이 퀵으로 받지는 않을 테니까.’
면이 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반 조리로 판매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배달의 편리함이란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는데, 장땡칼국수처럼 반 조리 음식이라면 시켜서 다시 한번 끓여먹어야 하니 여간 귀찮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주말에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만, 평일은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거리가 먼 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아, 아무래도 그렇지…….”
“오히려 그걸 이용하는 거야. 거리가 머니까, 선뜻 다시 찾아오기 힘든 손님들을 위해서 밀키트를 판매하는 거지.”
포장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이미 식사를 마쳐 배부른 손님들이 포장용 음식을 사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근처에 주택가가 있어 편하게 포장을 할 손님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빈이 생각하기에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밀키트였다.
음식의 맛은 보장되어 있는 만큼, 맛있게 음식을 먹은 손님들이라면 밀키트를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았다.
장희찬이 우물쭈물했다.
“좋은 기회라는 건 아는데 말이야,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지금은 장사가 엄청 잘되고 있지만, 솔직히 네가 도와주기 전까지는 우리 장땡칼국수, 거의 망하기 직전이었잖냐. 그래서…….”
“희찬아.”
“응?”
우빈의 심각한 목소리에 장희찬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너는 다 좋은데 생각이 너무 많아. 그냥 해보면 되지.”
“그, 그러다 또 망하면 어떻게 해.”
금방 시무룩해진 장희찬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냥 해본다라…….’
장희찬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우빈의 말대로 장희찬은 생각이 많았다.
‘내가 겁이 많기는 하지.’
장희찬은 떠올렸다.
그때, 장땡칼국수가 망하기 직전, 없는 용기를 쥐어짜서 오늘밥집에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
‘만약 그때, 내가 겁에 질려서 그대로 가게에 있었더라면. 가게가 지금처럼 잘될 수 있었을까?’
“……그래, 해볼게.”
“잘 생각했어.”
우빈이 씩 웃었다.
“그럼 바로 업체에 연락할까? 여기는 공장에서 위탁해서 만들어주고 온라인 판매랑 홍보까지 해준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장희찬의 얼굴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의욕으로 가득 찬 그를 꺾고 싶지는 않았기에 우빈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일단은 우리끼리 만들어서 판매해 보자.”
위탁으로 하면 단위가 커진다.
물론 만드는 족족 다 팔린다면야 상관이 없겠지만, 잘되지 않을 경우도 무조건 고려해야 했다.
매콤알칼국수는 해산물이 들어가 유통기한마저 짧으니 악성 재고조차 되지 못하고 금방 폐기 처분될 수도 있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으니까.”
우선은, 손님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이 먼저였다.
* * *
그렇게 며칠 후.
장희찬은 우빈의 조언을 받아 식당에서 밀키트를 만들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해 나갔다.
주방 한구석에 밀키트를 만들 공간을 분리하고, 구청에도 미리 허가를 받았다.
“택배 왔습니다! 어디에 놓을까요?”
“아, 예, 예. 이쪽으로 놔주시겠어요?”
그리고 오늘은 포장용기와 진열용 냉동고가 도착했다.
둥글게 모인 직원들 앞에 장희찬이 우빈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오늘은 여기, 강우빈 사장님과 함께 밀키트를 만들 겁니다.”
“안녕하세요, 강우빈이라고 합니다.”
우빈을 본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특히 위생모를 푹 눌러쓴 주방 조리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머, 텔레비전에서 나온 사람 아니에요? 그 뭐더라, 오늘의밥차. 맞죠?”
“……네, 맞습니다.”
“맞네! 실물이 더 환하네요. 아휴, 텔레비전에서 나온 사람 보니까 연예인 보는 것 같고 신기하네.”
손뼉까지 쳐가며 까르르 웃는 조리사를 보고 옆에 있던 동료가 입을 삐죽였다.
“하여간 말은 많아가지고. 입으로 만들 거야? 손을 움직여, 손을.”
“알았어, 알았어! 신기하니까 그렇지. 그럼 오늘 잘 부탁해요!”
그렇게 모두가 사이좋게 양념과 곤이, 그리고 대파와 청양고추를 썰어 하나씩 포장했다.
면, 곤이, 그리고 양념. 대파와 청양고추까지.
그렇게 소포장한 재료들은 밀키트 포장용기에 담은 이후.
“좋아, 완성이다!”
여럿이서 힘을 합치니 밀키트 사십 개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가보자.”
“그래.”
드디어 출발할 시간이었다.
* * *
“히히, 맛있겠다.”
주말을 찾아 장땡칼국수에 방문한 여자가 히죽 웃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 줄이 기네…….’
하지만 장땡칼국수는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으니까.
얌전히 삼십 분 정도를 앉아 기다리자 안쪽에 있는 자리에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 매콤알칼국수 두 개요. 하나는 곱빼기로요.”
주문을 마친 남자는 수저를 놓으면서 픽 웃었다. 그 웃음을 본 여자가 놓치지 않고 남자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웃어?”
“아니, 우리 처음 여기 왔을 때 생각나서. 한입만, 한입만 하면서 네가 내 꺼 다 먹어버렸잖아. 중간에 시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아아,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산다고 했잖아! 여기 올 때마다 그 얘기더라.”
뾰로통하게 입을 부풀리는 여자를 보고는 남자가 웃었다. 이렇게 놀리는 맛이 있다니까.
“매콤알칼국수 나왔습니다. 어느 분이 곱빼기세요?”
“저요!”
여자가 손을 들고는 씩씩한 목소리로 외쳤다.
“맛있게 드세요.”
‘이거지, 이거!’
알이 한가득 올려져 있는 매콤알칼국수를 보고 여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걸 먹기 위해서 이번 주 내내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후루룩, 후룩.
매콤하면서도 뜨끈한 국물과 함께 녹진하게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알.
역시나 오늘도 매콤알칼국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진짜 맛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 매콤알칼국수를 개발한 사람한테는 상 줘야돼. 모쪼록 적게 일하고, 많이많이 벌으셔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