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so good at home cooking RAW novel - Chapter 97
집밥을 너무 잘함 97화
“택배입니다!”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봄이가 도도도 달려 나갔다. 봄이를 본 택배 기사의 표정이 헤벌레 풀어졌다.
“아이고, 아가가 사인하게? 아빠는 어디 계셔?”
“자까마요. 아빠아!”
아빠라는 말을 들은 봄이가 우빈을 크게 불렀다.
“아휴우, 아빠 도우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아가가 기특하네, 기특해.”
그렇게 혀 짧은 목소리를 내던 택배 기사는 우빈을 보고는 다시 원래의 건조한 목소리로 패드를 슥 내밀었다.
“여기, 사인 부탁드립니다.”
“……저, 이게 뭔가요?”
택배는 두 개였다. 하나는 우빈이 주문한 물건이긴 한데 다른 하나는 시킨 적 없는 물건이었다.
거의 1M에 가까워 보이는 물건이었는데, 우빈은 이런 걸 시킨 기억이 도통 없었기 때문이었다.
“흠? 강우빈 씨 아닙니까?”
“맞아요.”
“그럼 맞네요. 어디 보자, 장희찬 고객님께서 강우빈 씨 이름으로 보내셨네요. 여기 싸인해 주세요.”
‘희찬이가?’
우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싸인을 했다.
“아죠씨, 빠빠.”
“으응, 아가 너도 빠이빠이.”
택배 기사의 등을 보고 손을 계속 흔드는 봄이었다.
“자, 이거 봄이 꺼.”
“웅?”
고개를 갸웃거리던 봄이는 목걸이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얇은 목걸이줄과 함께 몰이 준 호박이 걸려 있었다. 펜던트 고리와 함께 세공이 된 목걸이를 보자, 정말 보석 목걸이 같았다.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기대하고 있는 봄이에게 우빈이 목걸이를 조심스레 걸어주었다.
봄이는 마음이 드는지 한참이나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돌았다.
유채와 슬기가 있었더라면 또다시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을까 싶어 우빈이 픽 웃었다.
‘이제 잃어버릴 일은 없겠네.’
확실히 돌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어보였다.
“히히.”
입꼬리가 쫙 벌어져서 헤벌레 웃는 봄이를 보고는 우빈이 픽 웃었다.
봄이 선물을 건네주었으니 이제 수수께끼의 물건을 꺼내볼 차례였다.
희찬이가 뭘 보냈을까?
우빈은 의아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택배 박스를 뜯어냈다.
‘이건…….’
우빈은 장희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찬아. 네가 보낸 거 도착했는데.”
-어어, 잘 받았어? 아니, 율마라고 하는 건데! 이번에 인테리어했던 사장님이 추천해 주더라고.
그건 바로 율마라는 식물이 담긴 화분이었다.
텃밭을 가꿔본 경험이 있기에 이제 화분 정도는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율마는 시들시들해져 갔다.
물이 적은 것 같아 물도 줘 보고, 햇빛이 문젠가 싶어서 이수호와 낑낑거리며 옥상으로 옮겨보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옥상에 있던 율마를 보던 우빈이 한숨을 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 * *
“으, 춥다, 추워.”
이제 겨울이 다가오면 주말 농장도 한동안은 쉬어야 할 터였다.
그동안 여러 농작물을 맛있게 잘 먹었던 덕분에 아쉬움이 커졌다.
‘게다가.’
우빈의 머릿속에 몰이 떠올랐다.
텃밭을 일구는 두더지 정령, 몰. 이 추운 날씨에 몰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우빈은 몰과 더 친해지고 싶었다.
우빈이 다시 몰의 찡긋거리는 코를 생각하다가 봄이에게 물었다.
“봄아.”
“웅?”
“우리 텃밭에 다녀올래?”
“텃바앝~? 츄어.”
생각 보다도 봄이는 추위를 더 많이 타는 것 같았다. 요즘 봄이의 곁에는 붉은 노란색 나비 모양의 정령이 봄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나비들이 곁에 있으면 더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봄이가 그다지 갈 생각이 없어보이자, 우빈은 결국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몰한테 잠깐 주고 싶은 게 있어서.”
“모야. 아빠아 모루가 보고 시펐구나?”
“그, 그런 건 아니고.”
어째서인지 우빈이 말을 더듬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봄이가 킥킥 웃었다.
“지금 가쟈! 모루 만나러!”
하지만 텃밭으로 가도 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추워진 날씨를 보아 올해의 농사는 이번이 마지막일 터였다.
상추와 나머지 채소들은 가져온 바구니에다가 거의 다 담아가는데도, 몰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 보이네…….”
우빈이 텃밭에 있는 채소를 정리하면서 중얼거렸다.
이때즈음이면 코를 들이밀면서 반가워했을 타이밍이었다.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든 봄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 아빠아…… 호시, 모루가 마리야…….”
봄이의 눈이 글썽였다.
봄이는 몰을 찾기 위해 호미로 땅을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모루, 어디이쏘! 내가 꺼내주께.”
“보, 봄아! 그러다가 몰도 다쳐!”
그리고 꺼낸다기엔 몰은 원래 땅속에 사는 아이인데.
그 모습에 기겁한 우빈이 봄이의 양팔을 잡아 안아올렸다. 그렇지만 우빈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설마…… 더 빨리 왔어야 했나?’
혹시 얼어죽은 건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한참을 찾던 와중에 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 아흑!”
봄이가 들고 있던 플라스틱 호미가 떨어지면서 몰의 머리에 맞았다.
“끄으으으.”
몰이 머리를 부여잡고 뒹굴었다. 그리고 무언가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본 둘이 몰을 발견했다.
몰을 본 둘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모루!”
“몰, 살아 있었구나?”
“방금까지는요…….”
* * *
몰은 머리에 커다란 혹이 난 채로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요 며칠 추운 날씨에 자신이 혹시 얼어죽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했다는 말에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이래 봬도 땅의 정령은 겨울이 제일 바쁘답니다. 저쪽 반대끝을 살펴보느라고 미처 오신 줄도 몰랐네요.”
“그래? 겨울이 바쁘구나. 몰랐네.”
“잠도 일찍 자야 다음날 일찍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그런 것과 같은 원리인 거죠. 땅도 겨울에 푸욱 쉬면서 내년을 미리 준비하는 겁니다.”
묘하게 일리 있는 말에 우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추워졌다고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할 일이 많답니다. 이때 열심히 땅을 미리 가꾸어 놓아야 농작물이 힘을 얻거든요.”
몰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몰의 말대로 추워진 날씨와 함께 사람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제 올해 마지막 작물을 정리하러 오신 건가요?”
“그것도 그렇고.”
우빈이 몰을 보면서 웃었다.
“가게에 고구마가 좀 많거든. 괜찮으면 같이 먹을까 해서.”
“고, 고구마요?!”
오늘 아침에 장을 볼 때 가득 쌓여있는 고구마를 보니 몰 생각이 났다. 그리고 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고구마라는 단어를 들은 것만으로 몰은 잔뜩 설렌 표정으로 발을 파닥거렸다.
“얼른, 얼른 갑시다!”
오늘은 우빈이 몰을 위해 특별히 음료를 하나 만들 계획이었다.
바로 고구마라떼였다.
맛있는 고구마라떼를 마시려면 우선은 신선한 고구마가 필요하다.
잔뿌리가 많은 고구마는 속에도 섬유질이 많아 질길 수 있다. 최대한 잔뿌리가 없으면서도, 상처 없이 껍질이 반질반질한 고구마가 맛있는 고구마일 확률이 높다.
다행히 오늘 집어온 고구마는 상태가 퍽 싱싱했다. 우빈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고구마를 싱크대로 가져갔다.
흙이 묻어나지 않게 깨끗하게 씻은 고구마의 껍질을 필러로 벗겨낸다.
먼저 우빈이 고구마의 껍질을 깨끗하게 깎아냈다. 잘게 썬 고구마를 그릇에 넣었다.
찐 고구마는 샛노란 색을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이 먹음직스러워 보여 몰이 침을 꼴깍 삼켰다.
“…….”
“허, 헛! 죄송합니다! 너, 너무 맛있어 보여서요.”
몰이 입가에 침을 슥슥 닦아냈다. 그런 몰을 보던 우빈이 고구마를 하나 건넸다.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흐어억……!”
몰은 놀란 듯 양손을 버둥거리면서도 사양하지는 않았다. 달콤한 고구마에 몰의 표정 또한 사르르 녹아내렸다.
‘후아아. 정말 맛있어.’
그다음에는 잘게 채 썬 고구마를 믹서기에 집어넣는다.
찐 고구마를 잘게 썰어 믹서기에 우유와 함께 넣어주었다.
위이이잉!
고구마를 가는 소리가 들렸고 몰이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무, 무슨 일이죠?!”
놀라서 머리를 감싸고 버둥거리는 몰.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숨어들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바닥이 너무 딱딱했다.
우빈은 얼른 믹서기를 멈추고 몰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괘, 괜찮아요. 잠깐 놀란 것뿐입니다.”
몰은 양손을 모으고는 심호흡을 했다. 아무래도 몰 앞에서는 믹서기를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아 봄이에게 잠시 맡기기로 했다.
“잠깐 옥상에서 몰이랑 기다리고 있을래? 금방 올라갈게.”
“녜에. 가쟈, 모루!”
봄이 몰을 안고 바깥으로 나가려 하자, 몰이 눈을 크게 떴다.
“저, 저런 흉악한 물건과 함께 내버려 두어도 되는 겁니까?”
“우웅, 웅. 갠챠나. 아빠아는 세상에서 제이 쎄거든.”
봄이는 놀란 몰을 쓰다듬으면서 가게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우빈이 다시 믹서기를 가동했다.
‘저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 미안해라.’
대신 그만큼 맛있게 음료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우빈은 생각했다.
믹서기 안에는 우유와 고구마가 섞여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완전히 고구마가 갈린 것을 확인한 우빈은 믹서기의 음료를 냄비에 옮겨 담았다.
우유를 넣기 때문에 너무 센불을 사용하면 바로 우유가 굳어지고 저들끼리 뭉쳐 식감을 망칠 수 있다.
때문에 너무 세지 않은 중불로 냄비 안의 음료를 휘저었다. 우유의 고소한 향이 조금씩 올라왔다.
‘이건 봄이 꺼, 몰, ……그리고 내 꺼.’
우빈은 커피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하나 추출해서 자신의 컵에만 부었다.
그리고 봄이와 몰의 음료 위에는 시나몬 가루를 솔솔 뿌려서 완성했다.
봄이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정도였다.
“자, 고구마라떼 다 만들었으니까. 같이 마시자.”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술술 넘어가는 고구마라떼는 달콤하면서도 맛있었다.
“아빠아.”
봄이가 물끄러미 우빈을 쳐다보았다.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우빈은 봄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시써, 라고 말하려 했지?”
“마, 마쟈……!”
귀신이라도 본 듯이 커다랗게 눈을 뜬 봄이가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그럼 나도 어디…….’
몰이 천천히 고구마라떼로 다가갔다. 우빈은 몰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큰 접시에다가 고구마라떼를 부어주었다.
‘이게 아까 그 흉악한 놈이 만들어낸 거란 말이지.’
생전처음 들어보는 괴상하면서도 시끄러운 소리를 다시금 떠올리며 몰이 미간을 찌푸렸다.
할짝.
몰은 조심스럽게 그릇에 혀를 내밀었다.
‘……!’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고 달콤한 맛. 우유와 함께 더욱 부드럽고 풍미가 강해진 고구마라떼였다.
그리고 그 순간.
살에 파묻혀져 있는 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 맛있습니다!! 이건…… 천상의 맛 같아요. 정말 놀랍습니다!”
달콤한 고구마가 갈아져 부드러운 우유와 함께 섞이니 마치 하늘에서 내린 음료와도 같았다.
몰이 입가에 거품을 잔뜩 묻혀가면서 고구마라떼를 ??거리며 먹었다.
달콤하면서 포근한 맛.
그리고 든든함까지 주는 고구마라떼에 몰이 활짝 웃었다.
고구마라떼의 흔적이 몰의 입가에 잔뜩 묻었고, 그 모습을 본 봄이가 까르르 웃었다.
이후로 며칠간, 몰과 함께 고구마라떼를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퇴근 이후에 자기 전에 달큰한 고구마라떼를 마셨다.
한번은 자색 고구마로 라떼를 만들었는데, 보라색 고구마라떼를 본 몰이 의아해하면서도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자신의 혀가 보라색이 되지 않았는지 걱정하면서 혀를 내밀었는데, 그렇게 내민 혀가 너무 짧고 귀여워서 우빈은 애써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 * *
한편, 봄이는 오랜만에 같이 놀 친구가 생겨 무척 기쁜 듯했다.
“움직이며 앙대!”
“으, 으으…… 이제 조금 힘듭니다.”
뭘 하고 있나 보았더니 봄이가 몰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몰은 마치 무대를 마친 피겨스케이트 선수처럼 팔을 위로 쭉 뻗고 있었다. 팔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몰을 안아든 우빈이 말했다.
“봄아, 몰이 힘들대.”
“머싯게 그려주려고 한 곤데…….”
봄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하얀 도화지에는 나비넥타이 차림을 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몰을 그리려고 하는 것 같긴 했는데, 적어도 우빈은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떻습니까?”